“(이명박! 이명박!) 고마워요. 이렇게 나와줘서. 그래도 내 이름을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 15일 서울 청계천을 찾은 이명박(MB) 전 대통령은 시민 환호를 들은 뒤 이렇게 말했다. 이 전 대통령은 “나는 총선에 대해 관심이 없고 나라가 잘됐으면 좋겠다”며 정치행보에 선을 그었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이 전 대통령의 정치인생에서 주요 치적이라 평가받는 청계천을 그가 간 것을 두고 친이계 부활 신호탄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MB뿐만 아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내년 총선을 1년 앞둔 시점에 팔공산 동화사를 찾아 공식 행보를 시작했다.
또 최근 각종 사법리스크로 비명계를 중심으로 한 세력 대체 요구가 거세지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에선 문재인 전 대통령이 평산책방을 열자 평산정당이 나올 수도 있다는 이야기마저 들리고 있다. 바야흐로 전직 대통령의 전성시대가 열릴 수도 있을까.
◆정치적 행보 아니다...MB계 총출동한 청계천 방문
16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 전 대통령의 청계천 방문은 서울시장 재임 당시 청계천 복원사업에 함께했던 서울시 공무원 모임인 ‘청계천을 사랑하는 모임’(청사모) 초청으로 이뤄졌다. 지난해 12월 사면·복권 후 천안함 묘역 참배,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주연의 연극 ‘파우스트’ 관람에 이은 세 번째 공개 행보다.
이 전 대통령측은 정치적 행보가 아니라며 선을 긋곤 있지만 이날 모임에 참석한 인사들 면면을 보면 사실상 MB계 전·현직 고위관료와 의원이 총출동했다. 이재오 전 특임장관, 류우익·정정길·하금열 전 대통령 비서실장, 윤한홍·조해진·정운천·박정하 국민의힘 의원 등이 함께했다.
이 전 대통령은 총선과는 상관없는 방문이라고 말했지만, 이번 청계천행을 두고 여당 내부에선 MB계 부활의 신호탄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청계천은 이 전 대통령의 서울 시장 재임시절 대표적 치적 중 하나로 MB계 정치인에겐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특히 이 전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매년 청계천을 찾았을 정도로 청계천에 대해 큰 애착을 드러냈다. 하지만 2018년부터는 다스 횡령, 삼성 뇌물수수 등 연이은 사건으로 구속과 석방을 반복하면서 청계천을 찾지 못했다.
친윤계인 국민의힘 한 의원은 “이 전 대통령은 이번 청계천 방문 과정에서 윤석열 정부와 원로급 정치인으로서 정국에 대한 평가를 내놨다”며 “이를 정치적인 행보로 보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실제 이 대통령은 이번 청계천 방문에서 “한·일 관계는 역사적으로 (봤을 때) 윤 대통령이 잘 하는 것이다”, “어려울 때니깐 대통령이 일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등 정치적 발언을 뱉어냈다.
◆각종 리스크에 고개드는 文등판론...평산정당 나오나
최근 평산책방을 열면서 지지자들과 스킨쉽을 강화하고 있는 문재인 전 대통령도 민주당 측 인사들과 잇따라 만나며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일각에선 현재 검찰의 대대적인 수사에 위기에 놓인 친명계 대체세력으로 “평산정당이 나오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마저 들린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 10일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경남 양산 평산마을에서 넉 달 만에 다시 만났다. 이곳에서 문 전 대통령은 영수회담을 거부 중인 대통령실을 의식한듯, 현직 대통령과 야당의 소통을 강조했다. 민주당 권칠승 수석대변인은 간담회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문재인 전 대통령은 대통령 직무를 수행할 때 여야정협의체를 구성했던 이야기를 했다”고 전했다.
각종 불법에 대한 사법부 판단으로 여전히 정치복귀에 부담을 느끼는 박 전 대통령과 이 전 대통령과 달리 문 전 대통령의 경우 직전 대통령이었던 만큼 총선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고 보는 이가 많다. 현재 민주당은 대장동 특혜 비리 의혹으로 사법리스크에 놓인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비롯해 60억원대 코인논란으로 검찰의 수사가 시작된 최측근 김남국 의원,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 의혹을 받는 송영길 전 대표와 이성만, 윤관석 의원 등 전방위적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이에 비명계를 중심으로 대체세력의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한 민주당의 비명계 의원은 “지금 (각종 사법리스크에 놓인) 상황에서 내년 총선 승리를 장담하긴 어렵지 않겠느냐”며 “문 전 대통령측은 당의 화합을 강조하곤 있지만, 총선이 다가올수록 문 전 대통령 역할이 중요하게 부상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만 총선에서 문 전 대통령과 친문계 인사들의 등장이 과연 민주당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다. 국민의힘이 문재인 정부 책임론을 들고나올 경우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