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방' 인맥이 준 '출소뽕'에 사라진 '20년', 언제까지 '처벌'만?[김용훈의 먹고사니즘]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올해 1~2월 마약사범은 26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964명보다 32.4% 늘었다. 역대 최다 수준이다. 경찰청 마약사범 현황‘ 자료를 보면, 2018년 8107명, 2019년 1만411명, 2020년 1만2209명, 2021년 1만626명, 2022년 1만2387명 등 5만3740명이 검거됐다. 이 중 재범으로 붙잡힌 마약사범은 2018년 4620명, 2019년 5678명, 2020년 6124명, 2021년 5357명, 2022년 6178명 등 2만7957명으로 2명 중 1명이 마약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 재범을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10~20대의 증가 폭이 눈에 띈다. 19세 이하(이하 10대로 통칭) 마약류 사범은 올해 들어 8월까지 372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12.7% 늘었다. 2017년 1∼8월엔 10대 마약류 사범이 87명에 불과했던 점을 보면 청소년 마약류 사범이 5년 사이 4배 이상(4.28배)으로 늘어난 셈이다.
마약 청정국이라고 자부했던 대한민국은 이제 더 이상 없습니다. 인터넷, 소셜미디어(SNS) 확산으로 마약류를 접할 기회가 많아지면서 범죄집단 같은 특정인의 문제가 아니라 평범한 이웃의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죠. 특히 마약류는 중독성이 강한 약리적 특성으로 관련 범죄의 재범률이 매우 높습니다. 법무부 교정시설 출소자 재복역 통계에 따르면 2020년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교정시설에 수용된 자로서 출소 후 3년 이내에 다시 교정시설에 수용된 비율은 마약류 범죄가 45.8%에 달합니다. 절도(50.0%)·폭력(31.3%)·강도(22.8%) 등과 비교하면 절도 다음으로 높죠. “교도소 출소했다고 주변에서 ‘출소뽕’하라며 주사기 던져준다”는 게 국내 최다 마약범 검거 기록을 세운 ‘베테랑 마약수사관’ 이영권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 마약1계 1팀장(경정)의 설명입니다.
전문가들은 마약사범에 대한 처벌의 방법을 ‘처벌적 접근’에서 ‘치료적 접근’으로 바꿔야 할 때가 됐다고 지적합니다. 처벌의 효과가 크지 않기 때문이죠. 처벌을 내리기 전 치료단계로 전환시킬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해 중독 위험을 낮추고, 사회로의 복귀를 도울 수 있도록 형사사법 체계를 확장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치료적 접근’의 필요성은 청소년 마약사범이었던 A씨의 말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동네 형들이 마약성분이 들어간 감기약을 권하는 것을 피하지 못해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한 그는 실형을 받았지만 같은 방엔 마약전과 3범, 4범 등 중범들을 만났습니다. A씨는 “처음 갔던 교도소에서 마약 인맥을 다 쌓았다”고합니다. 교도소에서 나오자 마자 ‘출소뽕’을 했고, 다시 7년 이상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A씨가 어렵게 마약을 끊은 것은 20년이 지난 후입니다.
만약 A씨에게 감옥 대신 치료 프로그램을 제공했어도 20년이란 오랜 시간을 마약에 빼앗겼을까요. 미국과 영국이 마약사범을 감옥에 가둬놓는 대신 재활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그런 이유로 보입니다. 미국은 마약을 소지한 비폭력적 중독자에게 재활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교정시설 내에서의 프로그램, 재판과정 및 지역사회에서의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교정시설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치료공동체(Therapeutic Community)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가장 큰 특징은 마약류 중독 수형자를 일반 수형자들과 분리해 독립된 사동에서 거주시키며 메타돈(Methadone) 유지 치료 프로그램과 같은 약물 치료법을 병행하는 형태로 운영합니다. 메타돈은 아편유사제 사용자를 지나치게 졸리거나 들뜨게 하지 않고 금단 증상과 아편유사제에 대한 갈망을 억제시키는 약물입니다.
약물치료법원도 운영 중입니다. 이 법원은 약물범죄자를 대상으로 통상적인 재판절차를 대신해 법원의 감독 하에 치료를 받도록 합니다. 리드(Law Enforcement Assisted Diversion·LEAD)는 기존 형사사법시스템에서 지역사회 내의 재활프로그램으로 대상자를 전환시키는 프로그램입니다. 경찰의 재량에 의해 이들을 체포 즉시 주택, 치료 및 기타 재활서비스 프로그램으로 연결해주는 사전 체포전환 프로그램으로 참가자가 형사사법시스템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체포기록 없이 치료로 전환되는 프로그램이기도 하죠. A씨 같은 청소년 마약사범이 한번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기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참 부러운 프로그램입니다.
우리나라는 마약 중독의 예방과 재활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위탁을 받은 민간기관인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가 담당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치료보호 및 재활 프로그램은 보건복지부에서 운영하는 ‘마약률중독자 치료보호사업’으로 마약 중독자에게 치료비를 지원하는 것입니다. 2021년 기준 전국 19개 치료보호기관이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고 하지만, 사실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실제 2017년부터 치료 실적이 한 건도 없는 기관은 8곳(42.1%)에 달합니다. 국립부곡병원과 인천참사랑병원 두 곳이 치료보호실적 전체의 97%를 차지할 만큼 쏠림 현상도 심각합니다. 왜 이런 걸까요.
마약 중독은 치료가 까다롭고 관리도 어렵기 때문에 병원에서 꺼릴 수밖에 없고, 또 이를 치료할 수 있는 전문 인력 또한 매우 부족하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입니다. 마약류 중독환자가 정부 지원 치료를 받기 위해선 보건복지부 장관과 전국 시·도지사 등이 지정한 ‘마약류 중독자 치료보호 지정병원’을 방문해야 하고, 마약류 중독자 본인이나 가족이 치료 보호를 의뢰하면 각 지자체별 심의위윈회 승인을 거쳐 지정 기관은 최대 1년까지 무상 치료(입원치료·외래진료)를 해야합니다. 이때 치료를 끝낸 병원이 병원비를 청구하면 지자체와 복지부가 병원비를 반씩 부담하도록 돼 있습니다. 이렇게 ‘매칭 펀드’ 제도로 운영되는 탓에 쉽게 증액하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지자체 재정 상황에 따라 마약류 치료보호 지정 병원들이 정부를 상대로 병원비를 ‘떼이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마약사범이 급증하면서 정부는 ‘마약범죄 특별수사본부’를 구성하고, 처벌기준도 강화했죠. 예컨대 청소년에 마약을 공급한 사범, 청소년을 마약 유통에 가담시킨 사범, 청소년과 함께 마약을 투약한 사범에 대해 구속기소를 원칙으로 하고 현행법의 가중처벌 조항을 적용해 최고 사형·무기징역까지 구형하겠다고 한 발표가 그것입니다. 하지만 마약 치료·재활에 대한 대책은 여전히 기존 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2018년 6월 마약류사범에 대한 치료명령제도가 도입됐지만, 2021년에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마약사범 중 치료명령을 함께 부과받은 수는 23건 뿐이었습니다. 그해 마약사범 1만6153명의 약 0.14%만이 치료를 받고 있는 셈입니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10월 치료보호 지원 예산 확충,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 추가 설치, 마약류 중독자의 치료 및 재활서비스 접근성 강화, 마약류 중독자 치료 및 치료재활 시설 연계, 교정시설 내 마약류 중독자 교육 이수명령 집행 체계 강화 등을 담은 ‘마약류 관리 종합대책’을 발표했습니다. 다만 이 가운데 구체적인 목표가 제시된 사업은 치료보호 지원 예산을 2억1000만원에서 4억1000만원으로 늘리는 것과 중독관리통합 지원센터를 50개에서 60개로 늘리는 것이 전부입니다. 게다가 치료보호 지원 예산은 4억1000만원으로 늘렸지만, 이는 마약류 중독자 1명이 한 달 간 입원 치료를 받을 때 최소 500만원이 드는 걸 감안하면 턱 없이 부족한 돈입니다.
※[김용훈의 먹고사니즘]은 김용훈 기자가 정책 수용자의 입장에서 고용노동·보건복지·환경정책에 대해 논하는 연재물입니다. 정부 정책에 대한 아쉬움이나 부족함이 느껴질 때면 언제든 제보(fact0514@heraldcorp.com) 주세요.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기사로 보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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