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하의 '그런데'] 내가 갚을 돈 아니라고

2023. 5. 16.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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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나라가 아니다'는 의미의 '국비기국'은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결기 있는 선비들이 상소문에 쓴 표현입니다.

율곡 이이가 선조에게 올린 상소문에도 이 말이 나옵니다. 그는 '나라에 2년 먹을 양식도 없다, 빗물이 새고 서까래는 썩은 모양새'라며 나라 꼴이 말이 아니라고 호소, 부국이 강병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강조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10년 뒤인 1592년 임진왜란을 겪게 되죠.

어느 가정에나 고정된 수입과 지출이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아이가 원한다고 부모가 계속 뭔가를 사주기만 하면 그 집안 살림은 어떻게 될까요.

나라 살림의 중요성을 모르지 않을 우리 국회에서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국가채무는 이미 천조 원을 돌파했고, 이대로 가다간 2040년 생산가능 인구 1인당 국가채무가 1억 원까지 치솟을 것이라는 데도 선심성 행정이나 마구잡이식 재정집행을 제어할 재정준칙은 이미 31개월째 국회에 발목이 잡혀 있거든요.

12년 전 정부부채가 GDP 대비 79.4%였던 독일이 재정 준칙을 도입하고 5년 뒤 부채가 69%로 줄었을 정도라, 이미 세계 105개 나라에서 이를 운용하고 있고 그래서 우리 여야 국회의원들도 이를 배운다며 독일, 프랑스, 스페인 등을 국민 세금으로 9일간 돌아보고 왔는데도, 어제 귀국 후 처음 개최한 법안 심사 회의에서 재정 준칙은 논의의 논 자도 못 했거든요.

하지만 지역구 선심성 사업의 예비타당성 조사 문턱을 낮추는 국가재정법 개정안은 지난달 이미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상태입니다.

돈이 없다, 적자라고 사방에서 외치는데도 돈을 아끼긴커녕 돈을 펑펑 쓰는 데 만장일치라뇨.

이런 걸 바로 직무 유기라고 하는 겁니다. 아이야 엄마가, 아빠가 원하는 걸 다 사주면 그 당시는 좋아라 하겠지요. 하지만 그래서 집이 망하면 그래도 아이들이 좋아할까요.

생각 없는 부모를 원망하는 건 불 보듯 뻔하지 않겠습니까. 아이는 부모를 바꾸지 못합니다. 하지만 국민은 국회의원들 바꿀 수 있습니다. 1년도 안 남았네요.

김주하의 그런데 오늘은 '내가 갚을 돈 아니라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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