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人] 작고 하찮은 것의 재발견, 사진가 강순태
[KBS 창원] [앵커]
찰나의 순간과 현장을 포착하는 사진은 시대의 기록이기도 한데요.
개발로 사라져가는 풍경과 무심코 지나친 작은 것들에 생명을 불어넣는 사진가를 경남인에서 만납니다.
[리포트]
도시의 오래된 뒷골목, 후미진 벽과 길바닥을 향해 작가는 셔터를 누릅니다.
[강순태/사진가 : "벽이 금이 가 있고 그 오래된 벽 밑에서 자라는 작은 생명들, 그냥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그 공간에 다시 한 번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보겠다..."]
강순태 작가는 작고 하찮은 것, 지난 삶의 따뜻한 흔적을 낮은 시선으로 포착합니다.
벽계저수지를 마당으로 둔 청금정.
강한 생명력과 신화성에 끌려 나무를 담는 작가의 렌즈는 위보다 아래에서 포커스를 맞춥니다.
[강순태/사진가 : "아래는 나를 낮추어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거잖아요. 낮아야만 세상은 안정적이니까 너무 위로 보고 있으면 사실은 위로는 끝이 없잖아요. 아래는 끝이 있고. 그래서 그 끝쯤에서 다시 시작하는..."]
사연이 담긴 오래된 나무를 비롯해 낡고 오래된 풍경을 작품에 담아온 지 35년.
주로 찍는 피사체들이 낮은 곳에 있다 보니 무채색 계열이 많은데요.
불필요한 색은 걷어내고 흑백으로 이미지를 강조합니다.
[강순태/사진가 : "무채색은 차라리 흑백으로 변환시키는 게 훨씬 더 강렬한 이미지를 주기 때문에..."]
의령예술촌 작품 전시 현장. 작가는 작품을 통해 그리운 지난 시절을 불러냅니다.
[강순태/사진가 : "가족의 손때들이 다 묻어있는 시대가 지금은 아니잖아요. 어떤 그리움. 엄마가 있고 아버지가 있고 동생이 있고 누나가 있고 형이 있는 그러한 세상을 한번 보여 드리고 싶었습니다."]
세상의 낮은 곳에서 발견한 일상의 흔적,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삶의 자국은 뜻밖의 울림을 전합니다.
[윤재환/의령군 유목면 : "쇠에 녹이 슨 부분을 담아냈는데 세계지도가 되고 또 타이어 자국을 이렇게 작품으로 만들어내기도 하고 낮은 곳에 있는 작은 부분을 만들어서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그런 훌륭한 작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작가가 틈만 나면 찾아오는 마산의 오래된 동네.
그에게 골목은 할아버지와 아버지, 이웃의 추억이 밴 공간인데요.
낮은 발치에서 건져 올린 지난 흔적과 소소한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강순태/사진가 : "신발이 한 짝만 있어요. 각기 다르게. 다 사연이 있겠죠. 그 사연에 의해서 만들어진 공간. 담쟁이가 붙었던 발이 이렇게 남아 있는 거죠. 결국 이건 생명을 다한 것들의 최후의 모습이죠. 내가 찾아봐야 보이는 그러한 울림이 되는 거죠."]
아래로 시선을 둔 그에게 맨홀 뚜껑은 도시의 역사를 간직한 유물이자 삶과 죽음의 경계를 상징하는 소재가 됐습니다.
[강순태/사진가 : "마산시가 있습니까. 지금 없죠. 역사가 있는 곳이죠. 그죠? 인간은 배설하지 못하면 죽는 거죠. 그럼 결국 이 사회도 배설하지 못하면 죽는 거잖아요. 그 배설이 지나간 공간이잖아요."]
맨홀 뚜껑을 찍다 보니 금이 간 낡은 아스팔트, 빛바랜 도로선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강순태/사진가 : "그냥 길바닥이 아니라 여기에는 실체가 보이지 않는 생명체의 모습. 나무를 지금 찾아서 찍고 있습니다."]
퇴색한 도로에서 발견한 나무와 숲은 생명이 다한 도시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으로 이어졌습니다.
설레는 걸음으로 찾던 동네는 낡은 집이 헐린 자리에 새 건물이 들어서는 중입니다.
[강순태/사진가 : "여기 오면 어떤 삶을 다시 발견할 수 있을까. 저한테는 굉장히 안타깝죠. 공간의 재구성이 다시 끝나고 난 뒤에 예전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을 비교하는 모습 그게 완성된다면 또 하나의 제 작업이 되겠죠."]
낮고 따뜻한 작가의 렌즈엔 또 어떤 풍경이 담길지 다음이 기다려집니다.
KBS 지역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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