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만큼 설렜던 기대감… 빈약한 세계관에 흡인력 ‘뚝’

이복진 2023. 5. 16.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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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드라마 ‘택배기사’ 리뷰
종말 이후 2071년 서울 배경
산소 공급 체계 만든 거대그룹
일부 배송기사와 대립 등 그려
볼거리에 생각할 거리 많지만
선악 대결로만 이끌어 아쉬움

암울한 미래가 보여주는 다양한 볼거리. 익숙하면서도 생소한 장소. 주인공을 비롯한 배우들의 총격전과 카레이싱 등 화려한 액션. 6부작의 부담되지 않는 분량. 주인공과 악당의 대결이라는 간결한 선악 구도. 하지만 빈약한 세계관을 비롯한 배경 설정. 급격한 이야기 전개. 집중을 방해하는 빈약한 컴퓨터그래픽(CG)과 어설픈 악당들의 행동….

지난 12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택배기사’는 250억원이라는 대규모 제작비, 포스트 아포칼립스(종말 이후 세계)라는 한국 드라마로는 흔치 않은 설정, 김우빈과 송승헌을 비롯한 이름있는 배우들의 출연, 그리고 동명의 원작 웹툰 ‘택배기사’가 가지고 있던 인지도 등으로 인해 공개되기도 전에 많은 관심을 받았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택배기사’는 250억원이라는 대규모 제작비, 포스트 아포칼립스라는 한국 드라마로는 흔치 않은 설정, 인기가 증명된 동명 웹툰 ‘택배기사’를 원작으로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지만, 빈약한 세계관과 급격한 이야기 전개 등으로 아쉬움을 남겼다. 넷플릭스 제공
그 인기는 드라마가 공개된 이후에도 이어졌다. 글로벌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집계 플랫폼 플랙스 패트롤에 따르면, 공개 직후인 13일과 14일 글로벌 TV Shows(드라마) 부문에서 전 세계 2위를 차지했다.
택배기사는 2071년의 서울을 배경으로 한다. 혜성 충돌로 99%의 사람이 숨지고 사막으로 변해 버린 뒤 40년이 지났다. 지상은 사막화가 진행된 온통 모래뿐이다. 수시로 모래바람도 불어온다. 이런 극한 환경에 나무 한 그루는 물론이고 풀 한 포기 보이지 않는다. 강남, 광화문, 압구정, 여의도 등도 나오지만 우리가 알던 모습이 아니다. 무너진 건물과 모래만 화면에 잡힌다. 심지어 서울을 상징하는 건물 중 하나인 N서울타워도 나오지만, 이 또한 두 동강이 나 상층부가 바닥에 쓰러져 있다.
낯설고 황폐한 그곳에도 사람들은 살고 있다. 천명그룹이 산소 공급 체계를 만들고 지하부터 지상까지 코어, 특별, 일반 지역으로 나눴다. 이러한 지역에 들어서지 못한 사람들은 ‘난민’으로 힘겹게 생계를 이어간다. 난민을 제외한 사람들은 천명그룹으로부터 산소와 생필품 등을 받고 살고 있다. 사는 장소와 산소, 생필품 등으로 계급화된 것이다. 더불어 사람들에게 산소 등을 배송하기 위해 ‘택배기사’가 등장한다. 이들은 ‘헌터’라는 난민 무력 집단으로부터 산소 등을 지켜 안전하게 전달하는 임무를 하기 때문에 무력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설정을 깔고 드라마는 일반구역 거주민이나 난민을 납치하는 괴한들에게 습격을 당한 윤사월(강유석)을 통해 본격적인 이야기가 진행된다. 택배기사 중 가장 장한 5-8(김우빈)이 그를 구하고 그러한 납치사건 뒤에는 천명그룹이 있다는 전개다.
하지만 드라마는 방대하면서도 독특한, 특히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택배’라는 소재를 더한 설정을 무색하게 이야기가 너무 빈약하다는 지적이다.

천명그룹 후계자 류석(송승헌)이 자신의 불치병을 치료하기 위해 돌연변이를 찾아내려고 사람들을 납치, 생체 실험을 한 것이다. 그로 인해 윤사월과 5-8, 그리고 다른 택배기사들까지 류석을 비롯한 천명그룹과 싸운다. 이게 드라마의 이야기다. 아니 전부다.

대통령과 천명그룹 회장이 사람들에게 보다 좋은 곳에서 살 수 있도록 하고, ‘남쪽’부터 식물이 자랄 환경이 조성된다는 등의 내용은 곁가지다. 심하게 말하면 택배기사와 류석의 대결만 다루기에 분량이 부족해 추가한 느낌마저 든다.
이런 신랄한 비판을 받는 이유는 이들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천명그룹 회장과 류석이 반목하는 이유에 대해 다루지 않는다. 더불어 천명그룹에 의해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정부보다 높은 위치, 마치 왕과 같은 위치에 있음에도 천명그룹 회장과 류석은 정부의 눈치를 본다. 소수의 택배기사들이 류석을 무너트리는 것도 천명그룹의 위치와 힘을 생각하면 불가능하다.

류석이 자신의 불치병을 고치려고 무리하게 사람들을 납치하는 장면도 개연성이 부족하다. 드라마 중반 천명그룹이 사람들에게 백신을 맞히는데, 그때 혈액을 채취해 실험만 해봐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5-8을 포함한 소수의 택배기사들이 천명그룹이 만들려고 하는 ‘에어로드’를 설립을 막는 이유도 납득이 안 된다. 좋은 공기를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시설인데, 택배기사들이 이를 방해해 그들이 악인으로 느껴진다.

드라마는 많은 것들을 포함하고 있다. 볼거리도 많고 생각할 거리도 많다. 하지만 제작진은 이러한 생각할 거리를 삭제, 시청자들을 윤사월·5-8과 류석이라는 선악의 대결로 강제로 이끈다. 그러다 보니 12첩반상(밥과 국 등 12가지 음식이 포함된 반상), 아니 24첩반상이라고 할 만큼 많지만, 오직 밥과 국만 먹은 느낌이 들어 아쉽다.

조의석 감독은 이에 대해 지난 15일 진행된 인터뷰에서 “디스토피아 세계에서 유토피아를 꿈꾸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5-8 같은 난민 출신 택배기사들이 세상을 바꾸려 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원작을 각색했다”고 설명했다.

이복진 기자 b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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