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업자에 돈 빌려준 경찰들…전세사기 피해자 두 번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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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부동산 개발업자가 부산경찰청 고위 간부 여러 명에게서 돈을 빌렸다.
이 업자는 자신과 경찰의 인연은 "내가 사회생활을 잘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번 안면을 튼 경찰과 업자가 '형과 동생'으로 바뀌고, 업자의 순탄한 사업을 위해 큰돈을 주고받는 사이로 발전하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수사 현장 최일선에 있는 고위급 경찰 간부가 부동산 업자와 가까워야 할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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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해만 봤다” 억울하단 서장님
- 진짜 피해자인 2030 청년들은
- 권력과 친한 업자 고발도 못해
한 부동산 개발업자가 부산경찰청 고위 간부 여러 명에게서 돈을 빌렸다. 해운대구에 오피스텔을 지으려는데 자금이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분양에 성공하면 이자를 ‘세게’ 쳐주겠다고 했다. 자금을 댄 경찰은 서장급인 총경 4명과 계장급인 경감 1명으로, 각 1억5000만 원 수준(국제신문 지난 12일 자 8면 보도)이었다. 당시 민간인이었던 현 최고위급 인사도 돈을 건넸다. 말이 좋아 돈을 빌려준 것이지, 사실상 투자였다.
그런데 오피스텔이 생각했던 만큼 잘 팔리지 않았다. 돈을 잃게 된 이들은 현금 대신 오피스텔을 받았다. 이곳은 센텀2지구라는 대형 부동산 개발 호재가 예고된 지역이어서, 수년 내 상당한 땅값 상승을 기대해 봄 직했다. 최고위급 인사는 (민간인 시절) 업자가 건넨 법인 카드를 쓰는 것으로 일부 이자 몫을 챙겼다. 반면 그저 이곳에 살았을 뿐인 청년층 25세대는 전세보증금 50억 원을 돌려받지 못해 몇 년째 마음고생과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간부 한 명은 업자에 대해 “밥 먹다 알게 된 사이”라고 했다. 누군가의 초대로 저녁 자리에 갔다가 만났고, 이후 자연스럽게 술·밥을 함께하는 사이가 됐다 한다. 이 업자는 자신과 경찰의 인연은 “내가 사회생활을 잘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자는 오피스텔 세입자나 공인중개사들에게 수시로 이들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모르긴 해도, ‘느그 서장 남천동 살제’로 시작하는 영화 대사 비슷한 말을 읊지 않았을까.
총경급인 이들이 ‘밥 먹는 사이’의 의미를 모를 리 없다. 한 번 안면을 튼 경찰과 업자가 ‘형과 동생’으로 바뀌고, 업자의 순탄한 사업을 위해 큰돈을 주고받는 사이로 발전하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인맥이 곧 힘인 대한민국에서 업자가 총경 여럿과 밥 먹고, 술 마시고, 사업 자금을 빌렸다는 사실은 아무리 곱씹어봐도 곱게 바라봐지지 않는다. 수사 현장 최일선에 있는 고위급 경찰 간부가 부동산 업자와 가까워야 할 이유는 없다. 경찰들이 즐겨 쓰는 ‘불가근불가원’이라는 표현이 있다. 하지만 이번 경우에서는 적당한 거리두기조차 버려야 했다고 생각한다. 인맥을 쌓아 어떤 식으로든 이득을 누리려던 게 아니라면 공직자의 신분에서는 그럴 이유가 없다. 그러니 “이득은커녕 손해만 봤다”며 억울해 할 것도 없다. 현장의 젊은 경찰들은 혹시 모를 구설이 두려워 망원(외부 정보원)을 만나는 것조차 꺼려한다.
이 오피스텔에 자금이 묶여 3년째 발만 구르고 있는 30대 피해자는 “건축주가 평소에도 총경들과 친하다고 자주 말해온 데다, 실제 그들이 오피스텔을 소유하고 있어 피해자 대부분은 형사고발을 해도 실익이 없을 거라며 지레 포기했다. 전국적으로 전세사기가 대대적으로 터지지 않았다면 당하고만 있었을 것이다”고 말했다. 일반인이 느끼는 이들의 존재감은 이토록 막대하다. 이번 일이 빙산의 일각이 아닌, 그저 ‘오비이락’에 그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신심범 메가시티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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