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골목길에서 ‘천년고도’ 진짜 아름다움 봤죠”
“(지난해 11월) 우연히 한옥마을 주변 전주천 남천교를 지나다가 한복을 입은 아가씨들이 징검다리를 건너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찍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흐드러진 버드나무가 사라질 줄 몰랐어요.(전주시는 재해예방 등을 이유로 지난 3월 버드나무를 베었다.) 늘 볼 수 있는 풍경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됐어요. 안타까운 마음에 액자 둘레를 검은색으로 했죠.”
2013년 3월 전북 전주시 완산구 한옥마을 주변에 문을 연 서학동사진미술관이 개관 10주년 기념 ‘김지연 사진전-전주의 봄날’을 이달 28일까지 열고 있다.
이 미술관의 김지연(75) 관장은 자신의 사진집 <전주의 봄날> 출판기념전을 겸해 이 전시를 지난 6일 열었다. 사진집에는 사진 150여 장이 담겼고, 전시에는 그 중 22점이 걸렸다. 그는 사진 전시도 할 수 있는 사진관을 연 10년 전 즈음부터 ‘전주 사진’을 찍었단다. 애초 3월에 기념전을 열려고 했으나, 팔을 다쳤고 코로나19에 걸리는 등 준비가 덜 돼 두 달을 연기했다. 아직 완쾌되지 않아 지금도 사진을 찍거나 사인을 하려면 다친 오른손이 떨린다고 했다.
“전주는 평범해 보여서 처음에는 특징을 잡아내기가 어려웠어요. 그래서 한동안 중단하기도 했죠.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계속되면서 시간이 생겨 천년도시 전주의 구석구석을 다시 돌아다녔습니다. 그전에는 (피사체의) 특별한 것만 찾았는데, 지금은 편한 마음으로 사소하고 익숙한 것을 찾아 이 동네 저 동네를 살핍니다. 그러다 보니 유명한 곳보다 정다운 골목길이 보이기 시작했고 몰랐던 곳을 알게 됐습니다.”
사진집 제목에 ‘봄날’을 넣은 것은 “요즘 세상이 좀 우울한 데, 꽃피는 봄날처럼 좋은 시기가 왔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고, 광주 출신으로 전주가 타향인데 이곳 지인들이 따뜻하게 맞아주셔서 전주에 헌사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과거에는 아름다운 곳 중의 일부로 전주를 생각했다. 그런데 10년 동안 전주를 바라보니 지금은 전주가 제일 아름다운 고장임에 동감한다”고 말했다.
개관 10년 기념전 ‘전주의 봄날’ ‘전주 사진’ 150여 점 사진집도 35개 동을 10장으로 나눠 담아 “유명한 곳보다 정겨운 골목길”
늦게 사진 시작해 사진집 15권 역사나 민중의 삶 기록 작업도
사진집은 전주시 35개 동을 10장으로 분류했다. 첫 장은 한옥마을이 있는 교동·풍남동이다. 10년 전 한옥마을 주변 자만마을이 뜰 무렵의 산동네 좁은 길 등을 담았다. 벽화마을로 소문이 나서 지금은 카페가 많이 생겼다. 둘째 장은 콩나물국밥과 순대국밥 가게들이 성황을 이루고 새벽시장의 활기가 넘치는 전통시장인 남부시장의 모습이다. 다섯째 장에서는 전주 신시가지로 백화점과 아파트 등이 있는 서신동과 재건축이 진행 중인 서신동 안의 감나무골을 비교했다.
강산이 한 차례 변하는 시기를 거치며 문을 닫을 위기가 있었다. 2~3년 전에 몸도 아프고 지쳐서 그만 내려놓으려던 참에 이일순 화가가 나섰다. 대표를 맡아 서학동사진관을 다시 살린 것이다. 사진관을 사진미술관으로 바꾸고 그림전시 등이 가능하도록 영역을 넓혔다. 실질적 운영을 맡은 이 대표는 “관장님이 저를 믿어주셨다. 사진관이 사라진다면 너무 아쉬워서 제안을 수락했다. 많은 사람이 즐겁고 질 좋은 예술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춘 예술 공간으로 향후 10년 꾸미고 싶다”고 말했다.
지역 문화운동에도 관심을 가진 김 관장은 2006년 전북 진안군 마령면 계남마을의 낡은 정미소를 고쳐 공동체박물관 계남정미소를 개관했다. 정미소가 자꾸 사라지는 게 아쉬웠기 때문으로 근대유산의 문화 재생산 사례를 만들었다. 역사의 발자취나 민중의 삶을 기록하려는 작업도 병행했다. 늦은 나이에 사진을 시작해 <정미소>, <나는 이발소에 간다>, <근대화상회>, <삼천원의 식사>, <영산강> 등 사진집 15권을 냈다. 또 <감자꽃>, <전라선> 등 3권의 사진산문집도 있다.
“사진은 현장을 기록합니다. 대상이 없어지면 다시 소환할 수 없습니다. 대상이 사라지기 전에 그것을 붙잡아둠으로써 소홀히 지나가는 것들을 다시 이야기해 낼 수 있게 됩니다. 과거에는 정미소와 이발소 등 유형적인 분야에 주제를 갖고 찍으려 했다면 지금은 주변의 일상에서 지나쳐버리는 대상을 사진을 통해서 보여주고 싶어요.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 사진집일 수도 있겠지만 힘이 닿는 데까지 사진을 찍겠습니다.”
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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