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창 열어야 손님 끌어”… 에너지 낭비 ‘무감각’ [밀착취재]

김나현 2023. 5. 16.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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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더위에 에어컨 켠 채 영업
전기요금 인상에도 변화 없어

“날씨가 화창할 때는 통창을 열어 둬야 손님들이 좋아해서 어쩔 수가 없어요.”

16일 오후 1시쯤 서울 성동구 성수역 일대. 성수역 3·4번 출구부터 시작되는 카페 거리에는 에어컨을 켠 채 문을 열고 있는 카페들이 줄을 이었다. 이날 서울 낮 최고기온이 30도를 넘어서며, 성수동 ‘핫플레이스’를 찾은 시민과 인근 회사 직장인들이 무더위를 피해 점심식사 후 카페로 직행했다. 대부분 카페는 매장 내부에 모두 에어컨을 켜 놓은 채 대문과 통유리 창을 활짝 열고 손님을 맞이했다. 카페 입구 근처만 가도 서늘한 바람이 느껴졌다. 카페 주인들은 냉방 기기를 켜 두고 문을 열면 에너지 효율이 크게 떨어지지만, 손님맞이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개문냉방 여전 정부가 전기요금을 ㎾h당 8원 인상하기로 결정한 16일 서울 중구 명동의 한 상가가 에어컨을 틀고 문을 연 채 영업하고 있다.  최상수 기자
전날 정부가 전기·가스 요금 인상을 발표하면서 이날부터 달라진 요금 체계가 적용됐다. 전기 요금은 5.3% 올라 월평균 332㎾h(킬로와트시)를 사용하는 4인 가구의 경우 3000원가량의 전기요금을 더 내야 한다. 정부는 ‘전기를 팔수록 손해’인 한국전력의 역마진 구조 탓에 전기·가스 요금 인상을 더는 미루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한전의 지난 1분기 ㎾h당 전력 구입단가(174.0원)는 판매단가(146.6원)보다 높아 역마진이 27.4원에 달했다. 차제에 전력 낭비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러나 전기요금 부담과 전력 낭비 지적에도 때 이른 무더위에 에어컨을 켠 채 문을 열고 영업하는, 이른바 ‘개문 냉방’ 점포가 늘고 있다.

취재진이 이날 성수역 인근 카페거리, 서울 광진구 건대입구역 인근 먹자골목, 관악구 신림역 4번 출구 일대, 영등포구 타임스퀘어 인근 점포 10곳씩 총 40곳을 확인한 결과 23곳이 개문 냉방 상태였다. 자동문의 개폐 전원을 아예 꺼 둔 채 영업하는 상점은 물론 미닫이로 된 수동문을 내내 열어 둔 음식점과 카페도 있었다. 액세서리 상점에서는 더 많은 손님의 이목을 끌기 위해 시원한 바람이 나오는 출입문 근처에 상품을 배치해 두기도 했다.

개문 냉방 상태를 유지하는 상점 주인들은 손님의 이목을 끌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토로했다. 영등포역 인근에서 개문 냉방 상태로 액세서리를 판매하는 상점의 주인은 “가게 안에 노래를 틀어 놨는데 문을 열어 놓으면 지나가던 사람들 눈길도 한 번 끌 수 있다”며 “여름에는 시원한 공기가 밖에서 느껴지니까 손님 끄는 데 확실히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 근방에서 빵 가게를 운영하는 사장 김모씨도 “전기세가 훨씬 더 나가지만 빵집은 빵 굽는 냄새로도 손님을 붙잡을 수 있어 그만큼 장사에 도움이 된다”며 “에너지 낭비라는 말도 있지만 구청에서 단속하는 것도 아니고 장사에 도움이 되니 계속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오후 낮 최고기온이 33도까지 오른 대구 중구 동성로에서도 ‘개문 냉방’ 점포가 속속 등장했다. 한 의류 판매장에서 손님이 매장을 나서며 문을 닫자 직원이 곧바로 나와 문을 다시 활짝 열어젖혔다. 에어컨을 켜 시원해진 실내 공기가 문밖으로 새어 나갔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직원 이모(26)씨는 “문을 닫으면 (사장에게) 혼난다”며 “진열대 물품을 구경하다 물건을 사는 경우가 많은데 전기요금이 걱정돼 문을 닫으라고 하면 장사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고 했다. 의류 판매장을 기점으로 동성로 50여m 구간 상가 40여곳 중 60%(24곳)는 문을 열어 둔 채로 냉방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나마 문을 닫은 채 냉방하는 매장은 편의점이나 휴대전화 대리점 등이고, 의류·화장품 판매장 10여곳 중 문을 닫은 곳은 3곳에 불과했다.
전남 목포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층에 있는 한 미용실 안에는 40대 여성으로 보이는 손님 한 명이 비닐 캡을 쓰고 머리를 하고 있었지만 미용실 앞을 지나자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그대로 흘러나왔다. 미용실 바로 옆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문모(49)씨는 “어제와 오늘 때아닌 여름 날씨를 보이면서 온도를 낮춰 에어컨을 틀고 있다”며 “전기 요금이 걱정되기는 하지만 낮 시간 손님이 많을 때는 이렇게라도 틀어 놔야 다들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개문 냉방은 전력 낭비의 주범이다. 에너지 효율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개문 냉방은 문을 닫고 냉방기를 틀 때보다 최대 3배 이상 전기요금이 더 나온다. 에너지 효율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또 개문 냉방 상태는 도심의 열섬 현상으로 이어진다. 우진규 기상청 통보관은 “개문 냉방 시, 냉기가 밖으로 나간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에어컨 실외기가 더 많이 돌아서 (더 많은) 열이 배출된다”며 “특히 도심지는 인구가 많고 냉방 시설도 많아서, 실외기에서 배출되는 열기가 심화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경보가 ‘심각’ 단계였던 지난 3년여간 환기 필요성 때문에 개문 냉방 단속·계도는 멈춘 상태다. 산업부에서는 2020년 1월을 마지막으로 개문 냉난방 단속을 하지 않고 있다. 산업부의 에너지 사용 제한 조치 공고 이후에 개문 냉방 상태가 발견될 시, 최초 경고를 거쳐 150만∼3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현재는 별도 공고가 없어 지방자치단체도 단속하지 않는 상황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전력 피크 상황에서만 에너지이용 합리화법에 따라, 에너지 사용 제한 조치가 가능하다”며 “코로나19 이후로는 지자체와 시민단체와 협업해 개문 냉방 상점을 대상으로 현장에서 에너지 절약 팸플릿을 나눠주는 등 캠페인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에너지 서울 동행단’을 모집해 오는 6∼8월 명동 등 주요 상권에서 개문 냉방 자제 등 에너지 절약 캠페인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김나현·윤준호, 대구·목포=김덕용·김선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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