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미 부채 한도 위기 또 오나…강경한 공화당 변수
매카시 "바이든 진지하지 않다"…협상 타결 변수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미국은 이번달 안에 부채 한도를 상향할 수 있을까.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코 앞에 두고 부채 한도 위기가 커지는 가운데 조 바이든 대통령과 공화당 소속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이 다시 회동하기로 하면서 협상 결과에 이목이 집중된다. 특히 지난 2011년 당시 협상 불발 위기와 정치 지형이 흡사한 상황이어서 우려는 더 커지는 분위기다. 증시 폭락 등이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바이든-매카시, 16일 재회동
바이든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손녀의 펜실베이니아대 졸업식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나 매카시 의장과 오는 16일 회동하기로 했다고 밝혔다고 CNBC 등은 전했다. 두 인사는 지난 9일 백악관에서 직접 만나 부채 한도 문제를 논의했으나 입장 차만 확인한 채 ‘빈손 종료’를 했고, 당시 약속했던 12일 회동은 실무진 협의를 이유로 연기했다.
미국 부채 한도는 ‘마이너스통장’과 비슷하다. 법으로 정해놓은 한도를 넘길 때마다 의회가 협상을 통해 높이는 식이다. 연방정부 부채는 올해 1월 법정 한도(31조4000억달러·4경2000조원)에 도달했고, 국채 발행이 어려워진 재무부는 뉴욕 연방준비은행에 개설한 계좌인 일반계정(TGA)을 임시로 써 왔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이 천명한 이른바 ‘X-데이트’(6월 1일)는 TGA 잔액까지 바닥 나 채무불이행(디폴트)에 빠지는 시기를 말한다. 공무원 혹은 군인에게 월급을 주거나 건강보험 등을 운영할 돈이 없어진다는 뜻이다.
바이든 대통령과 매카시 의장이 16일 협상하기로 한 것은 이번달 안에 사태를 마무리 짓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G7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17일 일본 히로시마로 출국한다. 게다가 상·하원은 메모리얼데이 연휴(미국 현충일·29일)를 전후로 휴회한다. 이같은 일정을 감안하면 16일 회동이 사실상 분수령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실제 옐런 장관은 이날 의회에 보낸 서한에서 “의회가 잠정적으로 6월 1일까지 부채 한도를 올리거나 유예하지 못하면 재무부는 더이상 모든 정부의 의무 사항을 충족시키지 못할 것”이라며 “미국은 부채 한도 협상 타결 지연으로 이미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달 초 만기가 도래하는 국채에 대한 차입 비용이 급격히 증가했다는 것이다.
“2011년 위기 상황과 비슷해”
변수는 매카시 의장이 예상보다 강경하다는 점이다. 그는 이날 출근길에 NBC 등과 만나 “그들은 회담하는 것처럼 보이기를 원하지만 어떤 것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여전히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고 말했다. 매카시 의장은 이어 “그들은 디폴트를 원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비판했다.
백악관과 민주당은 한도 상향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인 만큼 협상 불가 사안이라는 입장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디폴트는 선택지가 아니다”고 강조해 왔다. 반면 하원 다수당인 공화당은 부채 한도 상향과 재정 지출 삭감을 연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부 지출 감축 여부가 협상의 관건인 셈이다.
매카시 의장이 이날 바이든 대통령 등을 두고 협상 태도를 비판한 것은 아직 실무진 협의에서 뚜렷한 진전이 없다는 점을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월가에서는 이번 협상이 2011년 8월 당시 위기와 흡사하다는 진단이 나온다. 오바마 정부와 하원 다수당이었던 공화당이 시한 이틀 전 합의점을 찾았을 때다. 당시 글로벌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70년 만에 처음 미국 국가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한 단계 강등했고, 미국을 포함한 세계 증시는 폭락했다. 실제 신용등급 강등이 이뤄진 직후인 2011년 8월 8일 뉴욕 증시에서 대형주 위주의 S&P 500 지수는 6.7% 폭락하면서 금융시장에 충격을 안겼다. 글로벌 장기시장금리 벤치마크인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24.1bp(1bp=0.01%포인트) 급락했다. 추후 경기 침체 우려가 커졌다는 의미다.
월가 한 고위인사는 “2011년 위기는 공화당 내 강경파로 불리는 ‘티파티’의 세력이 커지는 가운데 민주당 출신 대통령(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맞서는 가운데 발생했다”며 “이번에도 매카시 의장이 티파티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2011년 당시 티파티를 등에 업고 당선된 공화당 소속 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오바마 정부의) 흥청망청 지출을 끝장내겠다”며 부채 한도 협상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갔다. 이번에도 매카시 의장은 티파티의 반대를 뚫고 하원의장직에 선출된 만큼 이들의 영향력은 막강하다는 평가다. JP모건의 마르코 콜라노비치 시장전략가는 “협상의 교착 상태가 증시 전망을 위협하는 또 다른 역풍”이라며 2011년 위기 사례를 거론했다.
월가는 결국 부채 한도 합의가 이뤄질 것이라는 점은 의심하지 않고 있다. 1960년 이후 부채 한도 증액 사례는 총 78번이다. 2001년 이후에만 20번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시장에 미칠 악영향은 불확실하다. 코메리카 자산운용의 존 린치 최고투자책임자(CIO)는 “막판 합의는 결국 시장 변동성을 더욱 심화시킬 중대한 드라마 없이는 안 될 것”이라고 했다.
김정남 (jungkim@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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