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와 대비는 빠진 윤 대통령의 ‘엔데믹 선언’ [한겨레 프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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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프리즘] 박현정 |인구·복지팀장
감염병 재난이 엄습한 첫해인 2020년 성탄절, 수도권 곳곳은 봉쇄된 섬이었다. 경기도 부천시 번화가 한복판에 우뚝 선 상가건물 안 요양병원 역시 그랬다. 쥐 죽은 듯 조용한 건물 뒷문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우주복처럼 생긴 레벨디(D) 방호복을 입은 구급대원들이 환자를 구급차로 옮기고 있었다. 투명한 음압이송카트 너머로 앙상하게 마른 몸으로 가쁘게 숨을 몰아쉬는 어르신이 보였다. 집단감염이 발생한 요양병원에 2주 동안 격리돼 있다, 가까스로 병상을 배정받은 환자였다. “할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구급대원이 허리를 굽혀 환자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한명 한명의 정성만으로 그해 겨울 죽음의 행렬을 막을 수는 없었다. 성탄절 하루에만 이 병원에서 코로나 환자 6명이 목숨을 잃었다. 닷새 뒤 사망자가 39명으로 불었단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2년5개월이 흘렀다.
윤석열 대통령이 11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며 “팬데믹을 지나 일상으로 왔다”고 선언했다. 국내 첫 코로나 환자가 발생한 지 3년4개월 만이다. 윤 대통령은 회의에 참석한 의료진에게 기립박수를 보내는 한편, 보건산업 종사자와 공무원, 방역조치에 협조한 국민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전임 문재인 정부가 ‘정치방역’을 했다는 비판도 빠뜨리지 않았다. 다만, 슬픔과 애도는 없었다. 이날까지 코로나로 세상을 떠난 사람은 3만4583명. 고인의 얼굴 한번 어루만지지 못하고 떠나보낸 유족은 그보다 많을 터이다.
애도를 잊은 사회는, 코로나로 달라진 구성원들의 운명을 낱낱이 기억하지 못한다. 감염병 재난 피해가 누구에게 얼마나 집중됐는지 아직 명확히 알 길이 없다. 정부가 발표한 사망자 수엔 의료체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아 제때 적정한 치료를 받지 못한 다른 질병 환자들, 가족을 잃거나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스스로 생을 마감한 이들이 포함돼 있지 않다.
코로나로 인해 우리가 잃은 생명이 얼마나 되는지 가늠할 단서는 ‘초과 사망’이다. 코로나 유행 기간 사망자 수와 코로나 유행이 없는 상황에서의 예측 사망자 수 차이를 의미하는데, 그 차이가 클수록 코로나로 인한 인명피해가 컸다고 볼 수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올해 1월 발간한 ‘코로나19 발생 이후 사망률 변화 심층 분석’을 보면, 연구자는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2021년 사망자는 평년 대비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증가(초과 사망)가 있었다”며 “이상기온·인플루엔자 초과 사망 연구가 진행됐고 예측 모형이 개발된 것과 같이 코로나19에 대한 초과 사망 여부를 파악하기 위한 전문가 간 합의된 모형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동안 진행한 연구를 검토한 결과 분석 대상과 기간, 예측 기법이 달라 초과 사망이 있었는지마저 차이가 난다는 설명이었다.
정부는 과학방역을 강조하지만 그동안의 희생은 머지않아 닥칠 또 다른 감염병 재난에 대비할 근거로 전환되지 못했다. 해를 거듭하며 자연스럽게 체득한 공포도 있다. 밀집한 환경, 부족한 환기시설, 충분하지 않은 인력으로 인해 요양병원·요양원에서 대규모 희생이 있었다. 부지불식간에 드러난 저비용 돌봄정책의 민낯은 초고속 고령화에도 방치돼 있다. 감염에 취약한 환경은 다른 재난에도 취약하다. 일터를 오가는 승객들에게 ‘골병라인’인 김포도시철도(김포골드라인) 등에선 애초 거리두기가 불가능하다.
2020년 성탄절에 목격한 죽음이 그다음 해에도 이어질 것임을 그땐 알지 못했다. <한겨레>가 올해 초 코로나 사망자 통계를 분석한 결과, 3차 유행기(2020년 10월∼2021년 1월) 당시 코로나에 걸려 숨진 60살 이상은 10만명당 7.9명이었으나 1년 뒤 델타 변이 유행기(2021년 11∼12월)엔 22.8명, 오미크론 변이 유행기(2022년 1∼6월)엔 137.4명으로 급증했다. 올해는 무사히 넘긴다 해도, 다음 해는, 그리고 그다음 해는, 감염병으로부터 우리를 지킬 수 있을까.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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