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철우의 과학풍경] 다시 보는 ‘우드와이드웹’

한겨레 2023. 5. 16.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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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네이처> 에 실린 산림과학 논문 한편이 숲과 나무를 보는 아주 새로운 관점을 던져줬다.

캐나다 산림과학자 수잰 시마드 연구진이 쓴 이 논문은 나무들이 햇빛과 영양분을 차지하려고 경쟁하기보다 서로 소통하며 돕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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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우의 과학풍경]

숲의 땅속에는 나무뿌리와 곰팡이 균사가 얽혀 나무뿌리들을 이어주는 균근 연결망이 깔려 있다. 균근 연결망이 나무와 숲 생태계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산림과학에서 중요한 연구주제 중 하나이다. 사진은 오스트레일리아 래밍턴 국립공원의 나무들. 위키미디어 코먼스

오철우 | 한밭대 강사(과학기술학)

1997년 <네이처>에 실린 산림과학 논문 한편이 숲과 나무를 보는 아주 새로운 관점을 던져줬다. 캐나다 산림과학자 수잰 시마드 연구진이 쓴 이 논문은 나무들이 햇빛과 영양분을 차지하려고 경쟁하기보다 서로 소통하며 돕는다고 밝혔다. 그 핵심엔 나무뿌리들과 곰팡이 균류가 엉켜 이어진 균근 연결망이 있었다. 식물 뿌리에 터를 잡은 곰팡이 균류는 식물에 질소, 인 같은 영양분을 주고, 식물은 광합성으로 만든 탄수화물을 균류에 준다. 균근 연결망은 더 나아가 나무들이 서로 소통하며 영양분을 주고받는 통로 구실을 한다는 것이 논문의 새로운 발견이었다.

곧바로 숲 지하의 균근 연결망에는 인터넷 월드와이드웹(WWW)에 빗댄 우드와이드웹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서로 돕는 나무들의 소통은 종종 나무들의 사회관계망(SNS)으로도 불리며 흥미로운 후속 연구를 불러냈다. 큰 나무가 땅속 연결망을 통해 어린나무의 성장을 돕는다는 가설과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들이 발표됐다. 근래에는 어머니 나무가 자식 나무를 보살핀다는 ‘어머니 나무 가설’도 나와 관심과 논란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실제로 나무들은 서로 대화하며 돕는 협력 공동체일까? 어머니 나무는 같은 종의 자손 나무를 식별해 보살필까? 이런 가설과 서사가 대중문화뿐 아니라 과학논문에서도 늘어나자, 일부 산림과학자들은 우려와 의심을 나타내며 확장된 가설과 서사의 근거를 재검토하고 나섰다. 최근에는 지난 2월 캐나다 앨버타대학 연구진이 지금까지 나온 연구 논문들을 검토해보니 가설의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분석 결과를 <네이처 생태와 진화>에 발표했으며, 이달에도 스웨덴 연구진이 비슷한 견해를 <신식물학자>에 발표했다.

2월 논문을 간추리면, 균근 연결망이 서로 돕는 나무들의 소통 통로라고 일반화하기에는 연구 사례가 아직 너무 적은 것으로 조사됐다. 나무들이 균근 연결망을 통해 이웃 나무의 성장을 돕기도 하지만 방해하는 반대 사례도 있었다. 특히 어머니 나무 가설을 입증하는 과학논문은 정식 발표된 적이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과학논문들에서는 이전 연구를 인용할 때 서로 돕는 나무 가설을 우호적으로 해석하는 편향 사례도 나타났다. 결국에 균근 연결망이라는 자연의 복잡성을 충분히 살피지 못한 채 나무들은 서로 돕는다는 서사로 단순화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균근 연결망은 나무와 균류와 다른 생명이 공생, 의존, 경쟁으로 얽혀 복잡하게 생동하는 또 다른 숲 생태계를 보여준다. 우리 눈앞에 드러나기 시작한 우드와이드웹은 서로 돕고 보살피는 초유기체나 나무 공동체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서사가 없더라도 그 자체로 이미 경이로운 세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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