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뜬 처녀부터 父子 희생까지...통곡의 제주법정
남편·아들 잃은 母 “시집 가서 제주 떠라”
가족 살해 목격한 부자는 동반 희생돼
판사 “당시 재판 적법성 심히 의심된다”
고향을 등질 수밖에 없었던 10대 처녀부터 부자(父子)가 숨어 있다 함께 희생된 사연까지 4·3의 아픔이 법정에서 다시금 꺼내졌다.
제주지방법원 제4형사부(재판장 강건 부장판사)는 16일 군법회의 수형인 30명에 대한 29차 직권재심에서 전원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해 3월 29일 40명을 시작으로 이날까지 직권재심으로 총 821명이 억울함을 푼 것이다.
앞선 재판과 마찬가지로 이날 재판을 받은 30명 모두 사망 혹은 행방불명돼 유족이 대신 재판에 참석했다.
제주4·3 당시인 1948년에서 1949년 사이 군·경에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 군사재판을 받은 뒤 육지교도소에서 소식이 끊긴 것이다.
이날 재판에서 아버지 고 김시협씨를 잃은 김정렬씨(75·여)는 “4·3으로 남편과 아들을 잃은 어머니는 두통으로 인해 뇌선(두통약)을 달고 살았다”며 “어릴 적 내가 말을 듣지 않으면 ‘아버지도, 오빠도 가버렸는데, 너까지 말을 듣지 않냐. 빨리 육지로 시집가서 절대 제주도로 오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씨는 “고향을 잊고 부산에서 살았는데, 별안간 검찰에서 재심 관련 전화를 받았다.
그 순간 70여년 숨겨둔 어머니와 아버지, 오빠가 떠올라 가슴이 아려왔다”며 “오늘 무죄가 선고된다면, 절에 가서 ‘아버지 좋은 판사, 좋은 검사, 좋은 변호사 얻어서 억울함 풀었다’고 고하겠다”고 말했다.
부자가 함께 희생당한 안타까운 사연도 나왔다.
1948년 군법회의를 받은 고경옥씨(당시 19세)의 조카 고운봉씨는 “고경옥 숙부와 그의 아버지 고신길은 서귀포시 중문 회수리에서 가족이 희생 당하는 장면을 목격한 뒤 숲속에 숨어지냈다”며 “부자가 가슴을 졸이며 숨어 있었는데, 경찰의 급습으로 체포됐다.
이후 고신길 어르신은 곧장 살해당했고, 고경옥 숙부는 대구형무소로 끌려간 뒤 행방불명 됐다. 부디 무죄를 선고해 부자의 한을 풀어달라”고 호소했다.
선고에 나선 강건 부장판사는 “군법회의가 과연 적법한 재판이었는지 심히 의문이 든다. 심지어 재판에서 가장 기본적인 공소장이나 증거 기록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뒤늦게나마 적법지 않은 군법회의 재판을 뒤집겠다. 피고인들은 무죄”라고 판결했고, 유족들은 일제히 박수를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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