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구학 칼럼] 전경련의 역주행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부활의 시동을 걸었다. 김병준 회장 직무대행이 지난 2월 운전석에 앉고 나서다. 윤석열 정부와 가까운 '6개월 임시 운전자'의 정치적 배경은 든든하다. 윤 대통령이 일본과 미국을 찾았을 때 전경련은 거물급 기업 회장들을 초청하는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 행사를 주관했다.
전경련은 지난 2016년 '최순실(최서원의 개명 전 이름) 국정농단'의 공범으로 낙인찍혔다. 문재인 정권내내 차고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폐차 직전'의 경제단체였다.
외국과의 재계회의 주관엔 경제단체 불문율이 있다. 미국과 일본은 전경련이, 중국과 유럽 등 다른 나라는 대한상의가 맡는다. 이게 문재인 정권에선 깨졌었다. 대한상의가 모든 외국과의 재계회의를 도맡았던 것. 대통령의 청와대 행사는 물론 외국 순방 때도 전경련은 '패싱' 당했다.
이런 악몽을 떨친 전경련이 삼성과 SK 현대차 LG 등 4대 그룹의 재가입을 추진하고 있다. 이들 그룹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하야를 부른 미르재단 설립에 돈을 댔다는 이유로, 회장들이 청문회에서 면박을 당한 뒤 전경련에서 탈퇴했다. 출세욕이 앞선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은 최순실과 재계의 창구 역할로 전경련을 추락시킨 장본인이었다.
오욕의 역사를 지우려는 전경련은 4대 그룹을 재가입시켜 자유시장경제 파수꾼이란 깃발을 휘날리려고 한다. 1961년 박정희 정권과 함께 출범,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정통성을 이어가기 위해서다.
문제는 전경련이 윤석열 정부의 '자유' 가치에 역주행을 한다는 점이다. 이익을 도모하는 경제단체엔 회원이 자발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김병준 회장 대행은 "(4대 그룹이) 돌아올 수 있도록, 돌아오지 않으면 안 되는 명분과 실질적인 조건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일본 게이단렌(經團連·일본경제단체연합회)과 함께 연 도쿄 기자회견에선 한·일 미래파트너십 기금 출연에 국내 4대 그룹의 동참을 사실상 촉구했다. 윤 대통령과 기시다 일본 총리의 약속을 명분으로 4대 그룹을 끌어들이려는 속셈이다.
김 회장 대행이 4대 그룹의 전경련 재가입에 직을 거는 이유가 있다. 전경련 사무국으로부터 자리를 맡는 조건으로 정치역량을 발휘, △한미·한일재계회의 주도권 회복 △4대 그룹의 재가입을 성사시켜달라는 미션을 부여받아서다.
4대 그룹은 불편하다. 모 그룹 임원은 "전경련이 주관한 국가 행사엔 얼마든지 참석할 수 있지만, 한일미래기금 참여는 난감하다"고 털어놨다. 최순실 딸 정유라에게 말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이재용 회장이 옥고까지 치른 삼성. 전경련과 엮이는데 경기(驚氣) 를 일으킨다.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이 상의 회장을 맡고 있다. 경쟁 경제단체인 전경련을 키우는 걸 주저한다. 현대차도 괜히 나서고 싶지 않다. LG는 외환위기때 전경련 주도 '빅딜' 에서 반도체 사업을 빼앗겼다. 전경련에 대한 섭섭한 기억을 지우지 못한다.
예전에 전경련은 4대 그룹에 전적으로 의존했다. 전경련 600여개 회원사의 회비 500억원 가운데 400억원 가까이를 4대 그룹이 냈다. 지금은 다르다. 10년전 여의도에 지은 지상 50층 전경련 회관에서 연간 400억원의 임대료를 챙길 수 있다. 공사대금을 다 갚으면 돈이 쌓이는 구조다.
꿀벌통에 꿀이 차면, 여기저기서 꿀을 빨아먹으려고 빨대를 꽂는다. 전경련에선 관료출신 권태신 전임 부회장이 연봉과 퇴직금을 포함해 두둑이 챙겼다는 후문이다. 김병준 회장대행은 상당한 판공비를 법인카드와 현금으로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원래 대한상의 전경련 무역협회 경총 중기중앙회 등 5대 경제단체장은 월급을 받지 않는다. 자신이 속한 회사에서 월급을 받기 때문. 고(故) 김상하 삼양사 회장은 12년간 대한상의 회장을 하면서 상의에서 회장 월급은 커녕 판공비를 한 푼도 받지 않고, 자신의 돈을 쓴 일화는 유명하다.
지금 전경련은 정치인 출신 회장대행과 꿀벌통을 지키는 사무국으로 전락했다. 전경련(全經聯)이 환골탈태하려면 '정경련(政經聯)'으로 회귀하지 말아야 한다.
정구학 이사 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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