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한국인의 전례없는 친미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한겨레 2023. 5. 16.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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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한국의 진보는 진보의 이상인 환경친화적 복지국가 모델을 중국에서 발견해낼 수 없다. 중국의 당·국가 권위주의는 한국인들에게 한국의 1970~80년대를 연상시키는가 하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아예 일제의 대륙침략 등 가공할 만한 역사적 기억들을 불러일으킨다. “미국이 아무리 문제가 많아도, 그래도 중·러에 비하면 낫다”는 게 많은 한국인이 공유하는 정서다.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박노자 |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신자유주의 시대 한국에 붙는 ‘세계 최고’ 내지 ‘세계 최저’, ‘세계 최악’이 몇가지 있다. 대표적으로 부유한 나라 중에서 비정규직 근로자(전체 임금 근로자의 약 37%)가 가장 많은 나라가 한국이고, 노인빈곤율(37.6%)이 제일 높은 나라도 한국이다. 합계출산율(0.78)은 세계 최저이고, 자살률(10만명당 23.6명)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최악이다.

한국의 그 많은 ‘세계 최고’ 중에는 시민들의 대외관에 관한 통계도 하나 있다. 바로 미국에 대한 호감도다. ‘미국에 호감을 갖고 있다’고 답변한 응답자는 89%로 아시아에서 단연 최고이며, 세계에서는 폴란드(91%) 다음이다.(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 ‘2022 글로벌 애티튜드 서베이’) 미국의 오랜 동맹국인 이스라엘이나 일본도 미국 호감도는 각각 83%와 70%로 높은 편이지만, 한국의 폭발적 “아이 러브 아메리카”(“사랑해요 미국”)에는 미치지 못한다.

이런 ‘절대적인 미국 호감’은 역사적으로 매우 새로운 현상이다. 미국과의 관계란 지나치게 가까우면서도 비대칭적이었던 탓에 종종 ‘반미’로까지 번졌던 만큼, 관계 설정에 대한 부담감이야말로 ‘정상’에 가까웠다. 이명박 정권의 굴종·졸속 대미외교에 대한 거부감이 촛불 항쟁으로 번진 게 불과 15년 전 일이다. 대미·대일 맹종·졸속은 이번 정권에서 다반사가 됐지만, 이에 대한 국민적 저항은 당시만큼 뜨겁다고 하기 힘들다. 과거와 같은 ‘반미’는 사라진 지 오래고, 친미 일변도의 외교에 대한 합리적 비판마저도 쉽게 먹히지 않는 게 최근의 세태다. 도대체 한국인들을 세계 최고의 ‘모범적인 친미주의자’로 만든 것은 무엇인가? 그 요인으로 세가지를 꼽아본다.

첫째, 세계에서 ‘가진 자’로서 한국인들의 새로운 집단 자의식이다. 한국이 세계적으로 고소득 사회가 됐다는 통계는 고물가·고유가·고금리 ‘신3고’ 현상에 따른 서민들의 고통을 덜어주지 않는다. 한데 아무리 개개인의 삶이 힘들어져도 고통받는 서민들마저 세계적 먹이사슬에서 한국이 차지하게 된 절대 낮지 않은 지위를 곳곳에서 확인하게 된다. 구미권 고학력자들을 포함한 외국인 인구도 계속 늘어나지만, 코로나 이전 한해 국외 여행객 수는 3천만명에 근접했다. 유럽의 선진국들처럼, 한국도 서민들까지 절반 이상 국민이 국외 나들이를 종종 하는 나라가 됐다. ‘못 가진 나라’에서 세계사적으로 보기 드물게 ‘많이 가진 나라’가 된 만큼 그 위치를 보장해주는 기존의 세계질서를 긍정하고 이를 지키려는 집단의식이 절로 자라나게 된다. 미국의 패권이야말로 기존 질서를 상징하는 만큼, 미국의 패권에 대한 한국인의 태도 역시 과거와 같지 않을 수 있다.

북한·통일에 대한 의식이 크게 바뀐 점 역시 같은 ‘가진 자의 논리’로 설명될 수 있다. 북한이 현존 세계질서에서 당분간은 ‘가진 자’들의 대열에 합류할 수 없다는 게 다수 한국인에게는 자명한 만큼 20~30대 61%는 통일이 “필요 없다”고 응답한다. 그들에게 미국은 그들의 부와 지위를 지켜주는 경찰로, 반면에 북한은 부와 지위를 위협하거나 언젠가 돈을 구걸하게 될지 모를 귀찮고 부담스러운 ‘가난한 친척’으로 보일 것이다. 북한 매체들은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로 동포의식에 호소하려 하지만, 신자유주의 한국에서 ‘피’ 이상 중요한 건 ‘돈’일 것이다.

둘째, 미국과 지정학적 대립을 벌이는 글로벌 ‘도전세력’들에 한국인들이 별다른 매력 포인트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보수야 역사적으로 친미적이지만, 한국의 진보는 진보의 이상인 환경친화적 복지국가 모델을 중국에서 발견해낼 수 없다.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복지지출(약 10%)은 한국보다 더 낮다. 중국의 당·국가 권위주의는 한국인들에게 한국의 1970~80년대를 연상시키는가 하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아예 일제의 대륙침략 등 가공할 만한 역사적 기억들을 불러일으킨다. “미국이 아무리 문제가 많아도, 그래도 중·러에 비하면 낫다”는 게 많은 한국인이 공유하는 정서다.

셋째, 한국의 언론들이 경제대국 중국에 대한 경쟁의식을 열심히 부추기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과 중국은 지역적 분업구조를 이루면서도 많은 완제품 품목 세계시장에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반도체 이외에는 한국 기업들이 상대적인 기술 우위를 가진 주요 품목이 거의 남지 않는 상황에서 한국 언론들은 ‘분업’보다 ‘경쟁’을 편향적이고 드라마틱하게 강조한다. 그 결과 역시나 ‘세계 최고’에 가까운 80%에 이르는 중국에 대한 비호감과 함께 중국과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는 중인 미국에 대한 호감이 꾸준히 늘어난다.

이런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인 한국의 전례 없는 친미화는, 어떻게 보면 되돌리기 쉽지 않은 장기적 경향이다. 한국만큼은 아니지만, 기존 세계질서의 덕을 본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 다수 유럽 국가에서도 미국에 대한 호감도는 60% 정도는 된다. 중국 모델에 대한 거부감이나 중국에 대한 경쟁의식 역시 당분간은 변수가 아닌 상수로 작용할 것이다. 여기에 한국의 보수언론들은 노골적으로 편향되게 일방적 보도 태도로 혐중·반북·친미의 ‘버블’을 키우고 있다.

문제는 이런 장기적 친미화·보수화가 친미 일변도 대외정책이나 통일정책의 사실상 포기로 이어지고, 중-미 대립 상황에서 징병제의 영구적 유지 등 군사주의의 심화, 심지어는 중-미 무력갈등 때 미국의 개입 요구 압박 등으로 이어질 위험성이 크다는 점이다. 언론이라면 지정학적 갈등의 한편에 무조건적 충성을 바치며 ‘올인’하는 태도는 당연히 경계하고 문제를 제기해야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런 언론이 소수에 불과하다.

미국의 이웃이자 우방 중의 우방인 캐나다는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가담하지 않았다. 독일과 프랑스도 미국의 우방·동맹국이지만, 중-미 갈등의 첨예화에도 불구하고 과감히 베이징을 방문해 정상외교를 벌이는 등 미국과 사뭇 다른 대중국 태도를 보였다. 한국도 궁극적으로 ‘맹종’이 아닌, 한반도 평화와 국익에 바탕을 둔 대미외교를 벌여야 하지 않을까? 이를 위해서는 보수언론이 만들어낸 과도한 친미 거품을 걷어내는 게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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