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장으로 변한 현대미술관, 나를 돌아보게 한다

이한나 기자(azure@mk.co.kr) 2023. 5. 1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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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서울 ‘게임사회’
현대미술작품과 게임 등 총 40여점
팬데믹 이후 국내외서 게임 주목 전시 잇따라
다니엘 브레이스웨이트 셜리, ‘젠장, 그 여자 떄문에 산다’(2021) 비디오 설치 전경 <사진제공= arbyte Gallery, 사진 Dan Weil>
거대한 장총 모양 기기가 게임 컨트롤러다. 어둠 속 거대한 화면에서는 나보고 ‘쏘라’고 지시를 내린다. 멈칫했지만 일단 쏘기 시작하자 일인칭 슈팅게임처럼 박진감 넘치는 화면이 계속 이어진다. 뒤에 있는 사람을 의식하고 총을 내려놓고 다음 방으로 넘어가니 흑백 모니터 속에는 불과 몇 분 전 미친 듯이 총질하는 내가 있다. 잔인한 내가 낯설어진다.

영국 작가 다니엘 브레이스웨이트 셜리의 ‘젠장, 그 여자 때문에 산다’(2021)는 우리가 선택하고 행동하는 결정들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해 비디오 게임의 상호작용 형식으로 엮어낸 작품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이 거대한 비디오 게임장으로 변신했다. ‘게임사회’란 기획전이 열리고 있는 현장이다.

현대문명의 주요한 요소가 된 게임은 지난 2010년 초반 뉴욕현대미술관(MoMA)과 스미소니언미술관이 비디오게임을 소장하면서 현대미술계에서도 논쟁이 붙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국내 게임 등 9점과 비디오 게임의 문법과 미학에 영향을 주고받은 현대미술 작가 8명의 작품 30여 점 등 총 40여 점을 만나게 된다.

코로나19 확산이후 온라인과 가상 세계 체험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게임을 소재로 한 미술관 전시도 국내외에서 늘어나고 있다. 영국 서펜타인갤러리에서 기획한 단체전 ‘Worldbuilding’이 독일과 프랑스 등 곳곳에서 순회전을 열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는 비디오 게임의 역사, 문법과 동시대 예술과 사회에 미친 영향을 조망할 기회다. ‘예술게임, 게임예술’, ‘세계 너머의 세계’, ‘정체성 게임’ 등 3개의 주제로 구성된다.

정체성 게임 섹션의 람한 작가는 가상현실(VR) 게임을 활용한 영상 작품을 안락한 의자에 누워 헤드셋으로 체험하게 했다. 그는 “쌍둥이 자매의 애증을 스토리에 담았는데, 실제 쌍둥이인 내 경험을 녹였다”고 했다.

루 양, ‘물질 세계의 기사’(2018) , 3채널 HD 비디오, 22분 14초. 작가 소장. © 2018, 루 양
서울박스에서 펼쳐진 유망 미디어 작가 김희천의 대형 신작 ‘커터 3’(2023)도 빈백에 편안히 기대서 40분가량 보면 된다. 일부러 해상도가 떨어지는 조악한 화면이지만, 층간소음 갈등 등 익숙한 상황과 자연스러운 목소리 때문에 영상 속 캐릭터에 쉽게 동화되는 느낌이다. 하지만 곳곳에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들 정보를 수집하는 카메라가 숨겨져 있어서 작품 후반부 새로운 장면도 만나게 된다.

전시를 기획한 홍이지 학예사는 “집에서 자기 휴대전화로 게임을 하는 것과 미술관에서 전시품으로 인식하며 게임을 할 때의 느낌이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는 게 흥미로울 듯싶다”면서 “이번 전시에서는 장애인이 사용할 수 있도록 게임 조이스틱 크기를 키우거나 방향키 버튼 등의 위치를 바꿀 수 있는 게임 컨트롤러를 함께 비치해 일반 관람객들이 체험해서 새로운 인식을 열어보게끔 했다”고 밝혔다.

김희천, ‘커터 3’(2023), 비디오, 가변 비율, 컬러, 사운드, 40분. 국립현대미술관 제작 지원. © 김희천
실제로 게임을 해볼 수 있는 전시이기에 과몰입을 막기 위해서 게임기 근처에 백미러 거울을 설치해 대기자들을 의식하게 했고, 10분 내 사용을 권고하는 문구도 두었다.

전시는 9월 10일까지 이어진다. 서울박스 전시만 8월 13일까지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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