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 둘러싼 의료계 눈치 싸움…“의사, 간호사 업무 재설계해야”
“보건의료 20개 업종 업무 모호한 점 있어”
“정종 분석으로 업무 재설계”
“조금씩 양보한 중재안 만들어 내야”
“의사 충분하지 않은 것도 문제”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간호법 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의사와 간호사를 포함해 의료계 내의 직역 간의 갈등을 키워 국민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우려가 크다고 판단한 결과로 풀이된다. 간호법은 결과적으로 폐기 수순을 밟게 됐지만, 간호사 단체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서 또 다른 사회적 갈등이 시작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료계는 이 같은 갈등 상황을 봉합하기 위해 간호사를 포함한 보건의료단체 직역의 목소리를 반영한 ‘보건 의료 직역 법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정부는 지난달 간호사 처우를 개선하는 중장기 대책을 발표했는데, 이와 별개로 보건 의료 직역의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중재안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주열 남서울대학교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이날 조선비즈와 통화에서 “초고령화사회에 대응하기 위해서 돌봄의 개념이 확대되는 작업은 반드시 필요하다”라며 “간호사의 업무 영역에 지역사회 돌봄 등을 추가하는 것은 기존 법으로는 불가능하다”라며 간호법 제정안 취지에는 동의했다.
이 교수는 다만 “간호법에는 간호사가 아닌 다른 보건의료 직역의 업무가 아무 협의 없이 얽혀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됐다”라고 설명했다. 간호법 제정 과정에서 그동안 한데 뭉쳐져 있던 각 의료인의 업무 범위가 드러나면서 직역간의 갈등이 수면위로 드러났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이 교수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보건의료기본법에 포함된 20개 직종의 업무 재분석을 통한 직무 재설계가 필요하다”라며 “간호사와 의사 간 업무가 충돌되는 PA분야,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요양보호사 간에 업무에 조정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간호법으로 분출된 의료계 갈등을 해결할 방안을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대중 아주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간호법 갈등 원인은 “(현재 의료법에서) 보건의료 직능별 역할이 애매한 부분이 많고, 각 직역의 업무범위가 비현실적으로 배타적이라는 데 있다”라고 설명했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문자메시지를 통해 “1960년대 만들어진 현행 의료법은 의사 중심 의료 제공 체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서 인구고령화 사회의 포괄적인 보건 의료 돌봄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는 한계가 있다”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현재 의사가 충분하지 않은 것도 직역 간의 갈등을 촉발시키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김윤 서울대 의료관리학과 교수는 “어떻게 하면 국민들에게 더 나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라며 “보건의료인력지원법을 통해 모든 보건의료인력의 업무 범위를 정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라고 말했다.
보건의료법은 상위법인 보건의료기본법을 상위법으로 두고 의료법 약사법 의료기사법 등으로 구분돼 있다. 기본법으로 인력 직무 범위를 구분하는 것은 맞지 않고, 현행 의료법에는 약사와 의료기사 응급구조사 등이 빠져있어 모든 인력을 포괄할 수 없다.
김 교수는 “현행 의료법이 문제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의료법을 고쳐서 문제를 해결하려면 재건축하는 수준으로 전면 개정해야 하는데, 이는 불가능하다”라며 “보건의료인력지원법에서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구조를 활용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법을 통해 간호사들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범위를 정하면, 현행 의료법으로 간호사 업무가 제한받는 근본적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새로운 법을 만든다고 해도 의료 행위를 각 직무별로 딱 부러지게 구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혈압을 잰 간호사가 환자에게 ‘이 정도면 혈압약을 복용할 정도는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의사의 영역인지 간호의 영역인지 구분하기 힘들다. 의료 현장에서는 초음파 검사 등을 누가 할 것인가를 두고도 의사와 간호사,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간호사와 방사선사, 입성병리사 등이 눈치 싸움을 하고 있다.
김대중 교수는 “양측이 서로 조금씩 양보해야 한다”라며 “각 의료 직역의 업무가 겹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협조하는 모형을 찾아 법에 이런 부분을 기술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간호법으로 이렇게 각을 세우게 되면 종합병원의 가장 큰 현안인 PA(진료보조 간호사) 문제를 풀기 어려워진다”며 “이렇게 되면 병원의사와 개원의사, 전공의 등 의사 직군 간에도 갈등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법안을 만들고, 시행규칙 등을 통해 직역간의 업무 분장을 디테일하게 정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며 “정부가 아닌 국회가 전문가를 포함한 제3의 협의체를 만들어 논의하고 그 내용을 법안에 담고 시행규칙부터 정부가 관여하면 좋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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