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운동 30년…환희와 분노 끝에 “세상은 변할 수 있다”
박한희 ‘성소수자차별연대 무지개행동(무지개행동)’ 집행위원은 “세상은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체감한다고 했다. 10년 가까이 성소수자 인권 운동을 해온 그는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법(희망법) 소속 변호사다. 경향신문은 17일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날(IDAHOBIT·아이다호)을 맞아 서울 은평구 희망법 사무실에서 박 집행위원을 만났다. 그는 지난 1년을 “환희와 분노가 교차하는 한 해”였다고 평가했다.
지난 2월 서울고등법원은 동성배우자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차별이라고 판단했다. 박 집행위원은 동성부부인 소성욱·김용민 부부가 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의 법률 대리인이었다. 판사가 승소 판결을 내린 그 순간에도 박 집행위원은 차오르는 기쁨을 잠시 미뤘다. 판결의 의미를 설명하는 기자회견을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날 하루 끝에서야 박 집행위원은 비로소 기쁨을 체감했다고 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온 시민들의 축하와 응원이 마음에 새겨졌다. 박 집행위원은 “세상이 바뀌긴 하는구나, 하는 반응이 많았다”며 “성소수자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을 준 것 같아 더 좋았다”고 말했다.
동성혼 법제화 등 무지개행동이 요구해온 제도적 변화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박 집행위원은 “이성 간의 혼인 제도나 전통적인 가부장 제도가 바뀌지 않는 한 차별은 남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최근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최초로 생활동반자법을 대표 발의했다. 혈연·혼인 관계가 아닌 동거 가구도 기존 가족처럼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게 하는 법이다. 박 집행의원은 “발의에만 10년 가까이 걸렸다”며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했다.
차별이 공고하다고 느끼는 순간도 많다. 최근 서울시는 서울퀴어퍼레이드(퀴퍼) 주최 측의 7월1일 서울광장 사용을 불허했다. 앞서 춘천시도 춘천퀴퍼의 춘천의암공원 사용을 불허했다. 주최 측은 집회신고를 내고 지난 14일 축제를 진행했지만, 성소수자들은 만나고, 모이고, 외칠 자유마저 쉽게 빼앗긴다는 씁쓸함은 지워지지 않았다.
박 집행위원은 “가족에게도 정체성을 쉽게 말할 수 없는 성소수자들은 고립되기 쉽다”며 “축제는 이들이 모여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힘이 되어주는 장소”라고 했다. 2017년 갤럽 조사에서 ‘동성애자도 일반인과 동등한 취업 기회를 가져야 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90%가 ‘그렇다’고 답했다. 박 집행위원은 시민들의 인식은 성큼 나아가고 있지만, 정치는 그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박 집행위원에게는 다음 목표가 있다. 성소수자에게 구체적인 얼굴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는 “성소수자가 같은 취업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대답하면서도, 내 직장 동료로는 싫다는 분들도 많다”고 했다. 나의 동료, 나의 가족, 길을 가다가 만날 수 있는 누구든 성소수자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것. 그것이 그의 숙제라고 했다.
무지개행동은 17~20일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 투쟁대회를 연다. 올해는 1993년 한국 최초의 성소수자 운동단체인 ‘초동회’가 설립된 지 30년 되는 해이자, 2008년 무지개행동이 발족한지 15년 되는 해다. 올해 표어는 ‘열정을 잇는 우리들, 변화는 멈추지 않는다’이다.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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