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대낮에도 털어가요"…범죄자들의 표적 된 뉴욕

김정기 기자 2023. 5. 16.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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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점털이 극성

▲ 미국의 한 편의점에 침입한 도둑 무리

요즘 미국 로컬 뉴스를 보면 유독 '상점털이' 소식이 많습니다. 30년 전 미국에 있었을 때는 [상점털이]란 말을 들어본 기억이 없는데, 요즘 미국에서는 상점털이범 범죄 뉴스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들이 몰래 물건을 가방에 넣고 상점을 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당당하게 물건을 들고 상점을 빠져나갑니다. 그것도 대낮에. 이들은 또 단순 좀도둑이 아니라 상점털이범입니다. 훔치는 물건을 보면 단순 과자나 음료수 하나가 아닙니다. 각종 음식, 도구, 라디오 심지어 TV까지.

뉴욕 번화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잭슨 하이츠라는 곳에 각종 야채와 고기, 음료수를 판매하는 작은 마트가 있습니다. 이 마트 주인은 최근 수차례 들어오는 털이범들 때문에 많은 피해를 보았습니다. 한 남성이 진열된 고기를 들고 출입문을 통해 나가 버린 것이 모두 감시 카메라에 찍혔습니다. 주위를 살피지도 않고 그냥 고기를 들고 달아나는 모습이 확인됐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피해를 막을 방법도 없습니다. 경찰에 신고를 해도 이런 상점 털이범이 많기 때문에 바로 출동하는 경찰도 없고, 직원이 이런 털이범을 매장에서 붙잡다가 더 큰 범죄로 이어질 수 있어 이들을 잡는 것은 어쩔 수 없이 포기한다고 말했습니다. 털이범들은 또 범행이 발각되면 각종 흉기를 이용하기 직원들을 위험하기도 합니다.

이런 대담한 털이범도 있습니다. 한두 개가 아니라 수많은 물건을 한 번에 훔치기 위해 아예 보따리 가방까지 들고 대낮에 매장 안으로 들어와 당당하게 물건을 담아 가는 털이범도 카메라에 잡혔습니다.


뉴욕은 미국에서 가장 많은 상점 털이 피해를 본 도시로 벌써 2년 연속 기록됐습니다. 지난해(2022년) 뉴욕에서 신고된 상점털이범 신고는 모두 6만 3천여 건. 신고되지 않은 범죄까지 합치면 더 많을 것입니다. 2021년엔 4만 5천여 건. 1년 사이 45% 늘었습니다. 2019년에는 3만 7천여 건이 신고됐습니다. 뉴욕시는 지난 2006년부터 이런 상점 털이 범죄 피해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했는데, 최근 들어 그 숫자가 무서운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고 뉴욕 경찰이 설명했습니다.

뉴욕 맨해튼 그리니치 거리에 있는 'T…'이란 매장은 미국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확인된 범죄 건수만 이곳에서 지난 1년간 646건. 하루 평균 2건의 상점 털이 범죄가 이곳에서 발생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뉴욕 경찰은 지난 1년 사이 상점털이범 체포가 68% 증가했다고 발표까지 했지만 상점 주인들의 마음은 편하지 않습니다. 범죄를 확인하고 경찰에 신고를 해도 출동이 늦어지기 때문에 털이범들은 달아나고 또 매장 내 안전요원이 털이범을 잡다가 고객에게 피해가 갈 수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특히 뉴욕에는 고가 물건을 판매하는 매장도 많아 뉴욕이 상점 털이범들에게 최고의 표적이 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훔친 물건은 어디로 가나?


이런 도난 제품들은 털이범들이 직접 사용하기보다는 재판매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가장 흔하게 온라인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됩니다. 온라인에 등장한 도난 제품들을 자세히 보면 꼬리표(제품 가격, 제품 생산지 등이 담겨있는 정보표)가 남아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꼬리표가 붙어 있는 물건을 90% 도난 제품이라고 전문가들은 충고합니다.
 

더 똑똑해진 상점 주인들


상점 주인들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자구책을 마련해 상점털이범들과 싸우고 있습니다. 이젠 상점 진열장에 전시된 상품을 보기 어렵습니다. 물건은 모두 창고나 계산대 뒤에 숨겨져 있고 진열대에는 [이 제품 구입을 원할 경우 직원에게 이야기 해주세요]라는 안내문 한 장 뿐.  또는 유리 상자 안에 제품을 넣어두고 직원에게 구입 의사를 밝히면 직원이 열쇠를 이용해 유리 상자를 열어준다는 안내문을 걸어두는 곳이 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카메라, 시계 등 고가품에만 이런 장치를 설치해 두었지만 최근에는 세탁비누, 면도칼 등 저렴한 제품에도 안전장치를 설치하는 매장이 늘고 있습니다.

이런 상점도 있습니다. 진열된 상품을 골라 쇼핑 카트에 넣으려면 진열대 옆에 있는 디지털 단말기에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를 입력해야 합니다. 그러면 휴대전화에 4자리 숫자가 전송되고 이 번호를 다시 디지털 단말기에 입력해야만 진열대 유리문이 열리도록 만들었습니다. 털이범들이 자신의 전화번호를 남기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해 만든 제품입니다.

상품 가격을 지불하지 않고 상품이 담겨 있는 쇼핑 카트를 밀고 출입문을 통과해 밖으로 나가면 카트의 바퀴가 잠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많은 털이범들이 다량의 물건을 카트에 담고 주차장으로 달아나는 경우를 많이 본 대형 매장들은 이런 스마트 카트까지 만들어 설치해두고 있습니다.

김정기 기자kimmy123@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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