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경력 레미콘 노동자는 왜 ‘상경투쟁’에 동참했나···건설노조, 서울 도심서 1박2일 집회
민주노총 건설노조의 총파업 결의대회가 열린 16일 오후, 서울 중구 세종대로에 ‘단결 투쟁’ ‘열사정신 계승’ 등이 쓰인 빨간 띠를 두른 건설 노동자들이 삼삼오오 모였다. 기온이 30도까지 오른 무더운 날씨에 연신 부채질을 하고 땀을 닦는 이들이 보였다. 노숙 농성을 위해 준비한 침낭을 짊어진 이도 눈에 띄었다. 30년 경력의 레미콘 노동자 강종식씨(53)를 시청역 8번 출구 인근에서 만났다. 강씨는 ‘상경투쟁’을 위해 경기 파주시에서 서울을 찾았다.
강씨는 3년 전 건설노조에 가입했다. 이전에는 “안전에 대해 누구도,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았다”고 했다. 노조에 가입하면서 산업안전보건법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게 됐다. 근무 환경이 달라졌다. 강씨는 “30년 일하면서 오른 임금은 1만원이 전부인데, 노조에 가입한 3년 동안 1만8000원이 올랐다”고 했다. 사측과도 크게 얼굴 붉힐 일은 없었다. “법 지키라는 건데 서로 얼굴 붉힐 게 뭡니까. 근데 요즘은 대화가 어려워졌어요.”
강씨가 말한 ‘요즘’은 윤석열 정부의 이른바 ‘건폭몰이’가 시작된 이후다. 그는 “건설사 사무소에 자유롭게 출입하며 대화를 나눴었는데, 지금은 잡상인 취급을 한다”며 “건폭몰이가 대화에 가림막을 친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전에는 현장에서 대우해주고, 노동법에 저촉되는 부분은 못 하게 했다”며 “지금은 불법을 자행하게 만든다. (사측이) 원하는 걸 안 하거나 손해를 끼치면 ‘건폭’이라는 말이 돌아온다”고 했다.
강씨는 ‘건폭’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더럽다”고 했다. 특히 건축학을 전공하는 대학생 아들이 눈에 밟힌다. 그는 “수년이 지나 아들이 건설사에 취업하면 현장에서 마주칠 수도 있지 않겠냐”며 “노사는 대화를 해야하는데, 지금처럼 대화가 안 되는 방향으로 가면 어쩌나 걱정이 된다”고 했다.
20년 경력의 목수 최모씨(47)도 경기 양주시에서 팀원들과 상경했다. 건설사 소속이던 최씨는 지난해 초 회사가 망한 뒤 노조에 가입했다. ‘노조팀’ 소속이 된 그는 비록 2년차 노조원이지만, 윤석열 정부의 ‘건폭몰이’ 이후 달라진 사회 분위기를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다고 했다. 최씨는“원청이나 단종사(전문 건설회사)가 노조 조합원은 안 받는다고 으름장을 놓거나 노조원 일당은 4분의 1정도 덜 주겠다고 압력을 놨다. 다 정부가 뒤에 있다고 생각하니 그런 것”이라고 말했다.
강씨, 최씨와 같은 건설 노동자 3만5000명(주최 측 추산)이 이날 세종대로 일대를 가득 메웠다. 건설노조는 오후 2시부터 ‘양회동 열사 정신 계승, 민주노총 건설노조 총파업 결의대회’를 열었다. 노동자들은 ‘노조탄압 강압수사 책임자를 처벌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집회 무대에 오른 장옥기 전국건설노동조합 위원장은 “건설현장은 건설자본 이익을 위해 과거로 회귀하고 있으며 (수사기관은) 건설현장에서 15차례나 압수수색을 벌였다”며 “건설노동자의 투쟁은 인간 존엄을 파괴하려는 저들과 맞서는 싸움”이라고 했다.
노동절인 지난 1일 분신해 숨진 노조 간부 양회동씨에 대한 추모와 책임자 처벌 요구도 이어졌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윤석열 정부가 우리를 거리로, 죽음으로 내몰았기에 이 자리에 (우리가) 있다”며 “양회동 열사가 염원한 세상은 건설노동자가 어깨 펴고 당당하게 사는 세상”이라고 했다. 이양섭 건설노조 강원지역본부장은 “양회동 열사가 해왔던 일은 단결하고, 행동하고, 교섭하는 노동 3권이었다”며 “그런데 법을 공부했다는 대통령은 깡패니, 건폭이니 하는 말로 자존심밖에 남지 않은 우리의 동지를 죽게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양 열사는 편지에서 항상 동지들과 같이하겠다고 했다. 분열하지 않는 하나의 행동으로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을 위해 함께 투쟁하자”고 했다.
건설노조는 이날 탄압 중단 및 강압수사 책임자 처벌, 범정부 ‘건설현장 불법행위 근절 TF’ 해체, 고용개선 사회적 대화 기구 구성 등을 요구했다. 앞서 경찰은 주최 측이 신고한 용산 대통령실 인근 방향 행진을 금지한다고 통고했지만, 이날 오후 서울행정법원이 노조가 제기한 집행정지 신청을 일부 인용해 오후 8시30분부터 오후 11시까지 용산 전쟁기념관까지 행진할 수 있게 됐다. 참가자 일부는 도심에서 노숙을 하고, 17일 오후 2시 세종대로에서 열리는 민주노총 결의대회에 참석한다.
건설노조 조합원 2000여명은 오후 8시30분부터 용산 대통령실 방향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이들은 9시30분쯤 삼각지역에서 마무리집회를 하고 세종대로로 복귀해 농성을 이어갔다.
경찰은 이날 110개 경찰부대를 집회 인근 현장에 배치했다. 세종교차로에서 숭례문교차로 사이 세종대로 상에는 수도권 광역 버스 등 통행을 위해 비상차로를 확보했다.
김송이 기자 songyi@kyunghyang.com,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명태균 “윤 대통령 지방 가면 (나는) 지 마누라(김건희)에게 간다”
- 윤 대통령 장모 최은순씨, 성남 땅 ‘차명투자’ 27억원 과징금 대법서 확정
- [단독] 허정무, 대한축구협회장 선거 출마 선언한다
- 최민희 “비명계 움직이면 당원들과 함께 죽일 것”
- [단독] 명태균씨 지인 가족 창원산단 부지 ‘사전 매입’
- “김치도 못먹겠네”… 4인 가족 김장비용 지난해보다 10%↑
- 4000명 들어간 광산 봉쇄하고, 식량 끊었다…남아공 불법 채굴 소탕책 논란
- 순식간에 LA 고속도로가 눈앞에···499만원짜리 애플 ‘비전 프로’ 써보니
- 체중·혈압 갑자기 오르내린다면··· 호르몬 조절하는 ‘이곳’ 문제일 수도
- “한강 프러포즈는 여기서”…입소문 타고 3년 만에 방문객 10배 뛴 이곳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