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협회 “간호법 거부한 윤 대통령에 정치적 책임 묻겠다”
[윤석열 정부]
“간호법 제정 약속을 파기한 윤석열 대통령에게 반드시 정치적 책임을 묻겠다.”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간호법 제정안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자,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 집결한 대한간호협회(간협) 소속 간부와 간호사들은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김영경 간호협회장은 윤 대통령이 이날 오전 국무회의에서 재의요구권을 행사한 직후 열린 ‘간호법 거부권 행사 관련 기자회견’에서 “(간호법 제정) 약속을 파기한 윤석열 대통령에게 정치적 책임을 물을 것”이라며 “(국회는) 간호법을 즉각 재의하라”고 요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김영경 회장 등 간협 집행부 50여명 뿐 아니라 300여명의 간호사들이 참여했다. 현장에 나온 서울 지역 대학병원의 30대 간호사는 <한겨레>에 “2020년 의사 파업 때 병동을 지키며 전공의들 공백을 메웠는데, (정부·정치권이) 공약한 간호법조차 의사 등의 반발을 이유로 좌초시키는 것을 보고 무기력함을 느낀다”며 “간호사의 적법하고 안정적인 업무 환경을 위해 간호법이 꼭 제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간협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대통령 공약을 파기한 것’이라며 날 선 태도를 보였다. 지난해 대선 당시 원희룡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 정책본부장이 간협과 만난 자리에서 “간호법, 우리 국민의힘은 누구 못지 않게 앞장서서 조속히 입법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이걸 후보께서 직접 약속을 하셨다”고 말한 것 등을 근거로 대통령이 공약을 깼다는 것이다.
간협은 국민의힘과 정부가 이 법을 ‘국민생명 볼모로 한 입법독주법’ 등으로 평가하며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부추긴 데 대해서도 비판했다. 김영경 회장은 “미국은 100년 전 간호법을 제정했고 일본은 75년 전 제정했지만, 이들 나라의 의료체계가 간호법 때문에 붕괴됐냐”고 반문했다. 또 그는 “윤 대통령은 당정이 주장하는 허위사실을 분별하지 못하고, 남용되어서는 안될 대통령 거부권을 행사했다”고 반발했다. 앞서 당정이 지난 14일 한덕수 국무총리,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등이 참여한 당정협의회 뒤 보도자료를 내어 “간호법안은 어느 나라에도 없는 ‘의료체계 붕괴법’”이라고 주장한 데 대한 반박이다.
간협은 국회가 간호법을 재의결할 것을 요구하며 단체행동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간협 관계자는 <한겨레>에 "파업처럼 환자 건강에 해가 가는 방식은 배제하는 선에서 현장 간호사들이 참여하는 단체행동을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간협은 향후 진행된 구체적인 투쟁 방식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의료현장 업무는 지속하되, 의료법에 규정된 간호사 업무범위 내의 진료 보조 활동만 수행하는 ‘준법 투쟁’ 방식이 될 것이란 목소리가 나온다. 복지부에 따르면 전국 의료기관에서 1만여명의 피에이 간호사(PA·진료보조 인력)가 의료법상 의사 업무인 시술·수술 보조 등을 하고 있는데, 이들이 사실상 불법이지만 관행처럼 해오던 업무를 곧바로 중단할 경우 의료 현장에 차질이 예상된다.
한편 이날 대한의사협회와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등 13개 단체로 이뤄진 보건복지의료연대(이하 의료연대)는 입장문을 내어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환영한다”며 “거부권 행사가 직역 간 갈등과 혼란을 봉합하는 발판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초 의료연대는 간호법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17일 연대 총파업을 예고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깊은 고뇌 끝에 국회 재의결시까지 유보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아울러 의료연대 쪽은 간호법과 함께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의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이 행사되지 않은 것에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개정안은 의료인의 결격·면허 취소 사유를 ‘범죄 구분 없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는 경우(선고유예 포함)’까지 확대하는 내용을 담았는데, 의료연대는 "관련 법 재개정 절차에 국회와 정부가 나서줄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말했다.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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