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밟아버리겠다" 학과장은 왜 새내기에 그런 말을 했나

홍승연 기자 2023. 5. 16.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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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과장실에서 벌어진 "잊을 수 없는 30분"

지난 3월, A 군은 부산의 한 사립대학교 태권도선교학과에 입학했습니다. 다른 대학도 합격했지만, 그 대학을 선택한 건 교수진이 좋고, 해외 진출 기회가 많다는 주변의 권유 때문이었습니다. 부모는 당장 차를 사주겠다 할 정도로 입학 소식에 기뻐했고, A 군도 꿈꾸던 대학생이 됐다는 사실에 가슴 벅차하며 수업 열심히 듣던, 평범한 새내기였습니다. 그런데 개강한 지 채 2주가 갓 지난 3월 17일. A 군은 학과장이 찾고 있다는 호출을 받게 됩니다. 학과 예배에 2번 불참했기 때문에 면담하자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교수실에 들어가자, 학과장의 폭언이 시작됐습니다. 그로부터 30여 분간 이어진 폭언과 협박. A 군이 중간부터 녹음한 녹취 파일에는 그날의 음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사람 XX처럼 행동해야 할 거 아니야, 이 XX야"
"짐승 XX처럼 행동을 하면 짐승처럼 대해야 할 거 아니야? 이 돌대가리 같은 XX야."
"겁대가리가 없어가 이 XX가 확 마, 진짜 XX을 밟아뿔라.
너 학교 와서 이런 행동 하면 밟는다. "

단둘만 있는 방. "밟겠다"는 태권도 8단의 학과장. A 군은 큰 충격과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학과장은 A 군의 집과 1시간 거리인 해운대 장산의 한 교회를 지정해 매주 예배에 참석한 뒤 목사님과 사진을 찍어 보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녹취 파일에서 이 말은 몇 번이고 반복됩니다.
 
"주일 딱 11시 예배 늦지 말고. 예배 마치고 목사님 딱 사진 찍어서 나한테 보내. 알았어?"

"11시. 거기 가서 딱 담임 목사 인사드리고. 목사님 사진 찍은 거 교수님한테 딱 보여줘."

"내가 (A 군) 엄마한테 전화를 딱 해갖고 (교회 가도록) 헛소리 딱 안 하도록 전화해야 하겠나?
(안 가면) 너는 교수님한테 박살 난다."

A 군은 만 18세입니다. 대학생이라고 해도, 새내기. 아직은 어린 학생입니다. 말대꾸 한번 못하던 A 군은 울면서 학과장 방을 나왔습니다.

"교수님이 욕설은 안 했다고 하던데요"

부모는 이 사실을 알게 된 직후 학과장에 면담을 신청했지만, 학과장은 그런 말을 한 적도 없다며 부인했습니다. 도리어 부모와 함께 온 A 군에게 "내가 진짜 그런 말을 했냐. 그 말 안 했으면 어떻게 할 거냐?"며 다그쳤다고 합니다. A 군을 더 실망스럽게 했던 건 학교 측의 태도였습니다. 총장실에 이런 상황을 알렸지만 움직이지 않은 겁니다.

해당 교수를 학과장 자리에서 내려오도록 했지만, 그뿐이었습니다. 피해자가 원했던 전수조사도, 징계위원회 소집도 없었습니다. 학과장은 여전히 대외협력처장 직함까지 맡고 있습니다. 학교는 A 군이 가지고 있는 녹취 파일도 들어보지 않았고 가족에 사실 확인을 위한 연락을 취하지도 않았습니다. "교수가 욕설은 하지 않았고, 사과했다고 하더라." 가족들이 학교에서 들은 건 이 말이 전부였습니다. 매주 학과장 수업을 들어야 하는 상황에서, A 군은 결국 학교를 자퇴했습니다.

"아이 태도를 바로잡기 위해 그랬다"는 교수

SBS는 교수에게 해당 사건과 관련된 이야기를 물었습니다. 교수는 진심이 곡해되어 슬프다고 했습니다. 목소리를 높인 것은 맞지만 아이가 평소 아프다는 등 핑계를 대고 학과 행사에 자주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지도 차원에서 그랬다는 겁니다. 관심이 없었더라면 하지 않았을 행동이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교회에 나갈 것을 강요한 것은 '태권도선교학과'라는 특성상 기독교를 믿어야 하므로 계기를 마련해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태권도를 포기한 A 군

A 군은 6살 때부터 태권도를 했습니다. A 군의 집에는 어렸을 때부터 모아온 상장과 메달이 가득합니다. 하지만 A 군은 이번 일로 태권도를 접었습니다. 해당 교수가 태권도계에서 여러 요직을 맡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수 소개란에 나와 있는 체육 관련 직함만 9개에 달합니다. 태권도라는 좁은 세계에서 그 교수의 입김을 피할 수 없을 거라며 A 군은 낙담합니다.
 
"제가 해본 게 태권도밖에 없으니까. 태권도를 너무 좋아했고 태권도밖에 길이 없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되니까… 저는 이때까지 해왔던 거를 모두 버리고 새롭게 시작해야 하니까 뭐부터 시작해야 할지를 모르겠고…."

학교를 떠난 뒤 A 군은 대부분의 시간을 집 안에서 보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누구를 만나는 것도 무섭다고 합니다. A 군의 세상이었던 태권도. 더 잘하고 싶어 찾았던 대학은, 그렇게 A 군의 마음을 무너뜨렸습니다.

본격적인 수사 시작…전수조사 이뤄져야

A 군 가족은 스포츠윤리센터에 해당 내용을 진정했고, 현재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영도경찰서에서도 조만간 관련 내용에 대한 수사가 시작될 예정입니다.
 
"녹음이 없었더라면 아무도 내 말을 믿어주지 않았을 것 같아요."

교육기관에서 벌어진 일을 학교가 방관하는 사이, 어쩌면 피해는 더 커졌을지도 모릅니다. 교육자라는 이름 아래 학생에게 욕설과 협박을 하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명확한 전수조사가 필요합니다.

홍승연 기자redcarro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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