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픽처] 칸영화제, 거장의 각축전…韓 영화는 풍요 속 빈곤
[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제76회 칸영화제가 16일(현지시간) 오후 프랑스 남부의 휴양도시 칸 크로와제트 거리에 위치한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개막한다.
칸은 베를린, 베니스와 함께 세계 3대 영화제로 꼽힌다. 셋 중에서도 영향력이 가장 큰 영화제인 만큼 매년 5월이 되면 전 세계 영화인들의 시선이 칸으로 향한다.
칸영화제는 코로나19 여파로 오프라인(2020)으로 영화제를 열지 못하거나 축소(2021)해 개최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지만 지난해부터 정상 개최 됐다. 필름 마켓의 활기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올해는 예년보다 활발한 움직임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한국 영화는 장편과 단편을 포함해 총 7편의 영화가 초청됐다. 그러나 칸영화제의 핵심 부문이자 그랑프리인 황금종려상을 두고 경합하는 경쟁 부문에는 단 한 편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지난해 감독상(박찬욱 감독)과 남우주연상(송강호)까지 거머쥐며 한국 영화의 위상을 높였기에 수상 기대감이 없는 올해 영화제는 다소 긴장감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 한국 영화 7편, 6개 섹션에 초청...영화제 후반부에 공개
올해 칸영화제에는 총 7편의 한국 영화가 초대됐다. 경쟁 부문 초청작은 없지만 장르, 규모에 따라 총 6개의 섹션에 골고루 포진돼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김지운 감독과 송강호가 다시 한번 의기투합한 '거미집'은 비경쟁 부문에 초청받았다. '거미집'은 1970년대 다 찍은 영화 '거미집'의 결말만 다시 찍으면 걸작이 될 거라 믿는 김감독이 검열, 바뀐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배우와 제작자 등 미치기 일보 직전의 악조건 속에서 촬영을 밀어붙이며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컬러와 흑백을 오가는 영화의 구성과 형식이 인상적인 작품으로 송강호와 연기와 김지운 감독의 연출력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거미집'은 25일(이하 현지시간) 오후 10시 30분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공식 상영이 진행되며 영화의 주역인 송강호, 임수정, 오정세, 전여빈, 정수정, 김지운 감독 등이 레드카펫 행사에 참석한다. 또한 상영 다음날에는 기자회견도 열린다.
홍사빈, 송중기 주연의 영화 '화란'은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됐다. '화란'은 지옥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소년 연규가 조직의 중간 보스 치건을 만나 위태로운 세계에 함께 하게 되며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린 누아르 드라마다. 신예 김창훈 감독은 첫 장편 연출작으로 칸의 초청을 받았으며 홍사빈과 송중기 역시 생애 처음으로 칸 영화제에 참석한다.
'화란'은 24일 오전 11시 드뷔시 극장에서 열리는 공식 상영을 통해 베일을 벗는다. 또한 오후 9시 30분 레드카펫이 열리고, 25일 오전 11시에는 공식 포토콜을 진행한다.
주지훈과 이선균 주연의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는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서 상영된다.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는 짙은 안갯 속 붕괴 직전의 공항대교에 고립된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이 작품은 21일 밤 12시 30분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전 세계 최초로 공개된다. 제작을 맡은 김용화 감독, 연출을 맡은 김태곤 감독, 배우 이선균, 주지훈, 김희원이 이 자리에 참석할 예정이다.
또한 홍상수 감독의 30번째 장편 영화 '우리의 하루'가 감독 주간에, 이선균·정유미 주연의 '잠'이 비평가 주간에 초청됐다. 여기에 '이씨 가문의 형제들'(감독 서정미), '홀'(감독 황혜인)이 단편 영화 경쟁 부문인 '라 시네프'(舊 시네파운데이션) 섹션에 초청됐다.
◆ 황금종려상→감독상·남우주연상…올해는 본상 기대감 無
한국 영화는 올해 경쟁 부문에 단 한 편도 초대받지 못했다. 지난해 '헤어질 결심'(감독 박찬욱)과 '브로커'(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경쟁 부문에 초청돼 모두 수상에 성공했고, 코로나19 이전이었던 2019년 영화제에서 '기생충'(감독 봉준호)이 한국 영화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받았던 것을 생각하면 이 공백은 더욱 아쉽게 다가온다.
거장의 신작이 없었던 탓이 크다. 칸은 전관예우가 확실한 영화제고, 경쟁 부문은 웬만한 신예 감독이 발을 딛기엔 다소 문턱이 높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올해처럼 한국 영화가 다양한 섹션에서 소개되고 영화제와 평단의 주목을 받는다면 향후 제2의 박찬욱과 봉준호의 등장을 기대할 만하다.
한국 영화가 초청된 섹션 중 본상은 아니지만 상을 수여하는 섹션도 있기는 하다. '화란'이 초청된 주목할만한 시선과 단편 경쟁인 라 시네프의 경우 각각 대상과 심사위원상, 1~3등 상을 수여한다. 한국 영화 역시 수상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또한 신인 감독에게 수여하는 황금카메라상도 있다. 첫 영화로 칸영화제에 초청받은 '화란'의 김창훈 감독과 '잠'의 유재선 감독도 후보다.
경쟁 부문 영화가 한 편도 없다 보니 국내 언론의 취재 열기도 예년 같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브로커'와 '헤어질 결심' 두 편의 한국 영화가 경쟁 부문에 초청되고, 이정재의 감독 데뷔작 '헌트'가 초청됐던 지난해 영화제에는 약 30여 개의 국내 매체가 칸 현지 취재에 나섰다. 그러나 올해의 경우 15개 내외의 매체가 현지 취재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송중기·제니·임수정 등 칸영화제 첫 참석…떨리는 레드카펫
칸영화제 레드카펫을 빛낼 한국 스타들의 모습도 기대감을 높인다. 단골손님인 송강호와 여러 차례 경험이 있는 이선균과 주지훈, 데뷔를 앞둔 송중기와 제니, 임수정 등에 대한 관심이 높다.
송강호는 출연작 7편이 칸영화제 초청을 받은 만큼 레드카펫 경험이 누구보다 풍부하다. 영화제에 처음 참석하는 임수정, 오정세, 전여빈, 정수정, 장영남, 박정수 등 '거미집' 출연진을 리드하며 베테랑의 면모를 보여줄 것으로 예상된다.
'화란'의 송중기는 첫 참석이다. 드라마 '빈센조', '재벌집 막내아들' 등이 해외에서도 큰 사랑을 받으며 국제적 인기를 얻은 만큼 그의 칸 입성도 큰 화제를 모을 것으로 보인다.
걸그룹 블랙핑크의 제니도 칸영화제 레드카펫에 오른다. 비경쟁 부문에 초청된 HBO 시리즈물 '더 아이돌'(The Idol)의 출연 배우 자격으로 칸의 초청을 받았다. 제니는 드라마에 함께 출연한 릴리 로즈 뎁 등과 레드카펫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 거장들의 각축전…황금종려상은 누구 품에?
한국 영화와는 상관없는 일이 됐지만 영화제 그랑프리인 황금종려상의 향방에도 관심이 쏠린다. 칸영화제는 매년 거장의 신작을 가장 먼저 선보이기 위해 공을 들여왔고, 자신들이 발굴하고 성장시킨 젊은 유망주의 신작도 적극적으로 경쟁 부문에 초청해 왔다. 올해도 그 경향이 두드러진다.
경쟁부문에 초청된 21편의 영화 중 황금종려상 수상 이력이 있는 감독의 신작만 5편이다. '어느 가족'(2018)으로 황금종려상을 받은 바 있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 '괴물'과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2006),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로 황금종려상을 두 차례나 수상한 바 있는 켄 로치 감독의 신작 '디 올드 오크'가 칸에서 최초로 공개된다.
'아들의 방'(2001년)으로 황금종려상을 받은 이탈리아 난니 모레티 감독의 '어 브라이터 투모로우', '윈터 슬립'으로 황금종려상을 받았던 터키의 누리 빌게 제일란 감독의 '어바웃 드라이 그래시스', '파리, 텍사스'로 황금종려상을 받은 바 있는 독일의 빔 벤더스 감독이 신작 '퍼펙트 데이즈'도 경쟁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2018년 영화제에서 '행복한 라짜로'로 각본상을 받으며 작가주의 거장으로 떠올랐던 이탈리아 알리체 로르와커 감독의 '라 키메라', '언더 더 스킨'으로 평단에 충격을 불러일으켰던 미국 조나단 글레이저의 '존 오브 인터레스트', '철서구'와 '세자매'로 다큐멘터리 미학을 세계에 알린 중국 왕빙의 '청춘'도 주목할만하다. 여기에 핀란드의 거장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도 신작 '낙엽'으로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받았다.
올해 경쟁 부문 심사위원장은 지난해 '슬픔의 삼각형'으로 황금종려상을 받은 스웨덴 감독 루벤 외스틀룬드가 맡았다. 심사위원으로는 '티탄'(2021)으로 황금종려상을 받은 프랑스 여성 감독 쥘리아 뒤쿠르노를 비롯해 미국 배우 브리 라슨, 폴 다노, 프랑스 배우 드니 메노셰, 아르헨티나 감독 겸 각본가 데미안 스지프론, 모로코 출신 배우 겸 감독 마리엄 투자니 등이 활약할 예정이다.
칸영화제는 5월 16일부터 27일까지 열리며 개막작은 조니뎁 주연의 '잔 뒤 바리'가, 폐막작은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 '엘리멘탈'이 선정됐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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