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터진 뇌관, 간호법 해법 학계·정치권·의료계에 물었다

정심교 기자, 박미주 기자, 이창섭 기자 2023. 5. 16.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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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역별로 업무 범위를 정하는 위원회를 둬야 합니다. 의료인들이 주도적으로 자신의 직역별 업무 범위를 구체적으로 정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김윤 서울대 의료관리학 교수)

"초고령사회가 오면 새로운 의료시스템은 꼭 필요합니다. 정부와 여당, 간호협회에서 새로운 법을 만드는 것도 방법입니다." (이주열 남서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

"의료-요양-돌봄이 통합적으로 규정이 되는 통합 법안이 하나 만들어졌으면 좋겠다."(임인택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 실장)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간호법 제정안에 대해 거부권(재의 요구권)을 행사하면서 사실상 입법이 무산됐다. 과연 간호법 사태를 진화할 대안은 없을까. 학계·정치권·의료계 등에서 내놓는 간호법 사태의 해법을 들었다.

(서울=뉴스1) 구윤성 기자 = 대한간호협회 회원이 16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의 간호법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 관련 기자회견을 마친 뒤 눈물을 닦고 있다. 2023.5.16/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학계 "TF 협의체 구성해 새 법 만드는 것도 방법"
당초 간호법은 곧 다가올 초고령 사회를 대비해 '의료·요양·돌봄'을 하나로 연결하는 법으로 고안됐다. 학계에선 초고령 사회에서 의료·요양·돌봄을 한데 엮을 새로운 시스템은 꼭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 수단이 '간호법'이 아니라도 말이다. 이주열 남서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정부와 여당, 간호협회에서 새로운 법을 만들지 않을까 싶다"고 조심스레 점쳤다. '간호법'이라는 이름은 아니겠지만 다른 형태의 법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이주열 교수는 "간호법이 담으려 했던 미래 지향성을 새로운 법에 담고, 시행령과 시행 규칙에서 구체화하는 방식으로 풀리지 않을까"라고 예상했다. 예컨대 초고령·저출산 시대에서 간병제도, 보건 의료 서비스 관련 조항을 담아내는 새로운 법을 만들고, 그 안에서 의사·간호사·임상병리사·간호조무사·방사선사 등 각 직역의 업무 범위를 좀 더 구체화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현행 의료법엔 의료인(의사·한의사·치과의사·간호사·조산사)만, 의료기사법엔 의료기사(임상병리사·방사선사·치과위생사·물리치료사·작업치료사·치과기공사)만 저촉받지만 보건복지의료 종사자 모두를 아우르는 새 법을 만들면 각 직역의 처우를 개선하고, 업무 범위를 합의 하에 나눌 수 있을 거란 견해다.

(서울=뉴스1) 김도우 기자 = 민주노총 의료연대본부 조합원들이 국제 간호사의 날을 하루 앞둔 11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간호인력인권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코로나19로 간호인력 부족 문제는 사회적인 쟁점이 되었지만 현장에는 간호인력기준조차 마련되지 않았다며 정부와 국회에 간호사 1인당 담당 환자수 법제화를 골자로 한 '간호인력인권법' 제정을 촉구했다. 2023.5.11/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주열 교수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주관하는 TF 협의체를 만들 것을 건의했다. 이 교수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법 제정'이라는 막강한 권한을 쥐고 있으므로 보건복지위원장이 리더십을 발휘해 각 직역이 논의해 주장하는 내용을 법으로 담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단, 이때 TF 협의체를 복지부가 주관하는 건 피해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이 교수는 "만약 복지부가 TF 협의체를 주관하면 직역들이 아무리 논의해도 법으로 제정되는 것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단, 국민을 중심에 두고 논의하기 위해 환자·소비자 대표 단체를 제3의 기관으로 TF 협의체에 엮어야 한다는 건의도 그는 내놨다.

간호법의 출발점 중 하나는 업무 범위 명확화였다. 이에 각 의료인이 주도적으로 자신의 직역별 업무 범위를 구체적으로 정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김윤 서울대 의료관리학 교수는 "보건의료인력지원법을 고쳐 모든 직역별로 업무 범위를 정하는 위원회를 둬야 한다"며 "자기 직역에만 유리한 결정을 하지 않도록 국민과 전문가를 위원회에 참가시켜야 한다. 선진국에서는 다 이렇게 한다"고 조언했다.

대신 진료환경에 따라 의료인 간 업무 범위가 중복될 수 있다는 점을 유연하게 허용해야 한다는 지적도 그는 내놨다. 김윤 교수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의 집을 찾은 간호사가 의사 처방이 없다는 이유로 혈압·혈당도 못 재거나, 병원 밖에서는 응급환자에게 주사도 놓고 심폐소생술도 실시하는 응급구조사가 병원 응급실에서는 채혈도, 심전도 측정도 못 하게 하는 건 비합리적"이라고 덧붙였다.

'간호법 이슈와 정쟁은 분리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간호대 교수 A씨는 "간호사가 지역사회에서 의사의 업무를 대신하겠다는 게 아니라, 요양원 등 병원 밖 지역사회에서 돌봄 등 간호 보조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인데 대통령이나 정부에서 왜곡된 주장을 그대로 읊고 있다"며 "정쟁이 갈등을 심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 "의료·요양·돌봄 통합하는 법안 만들어야"
간호사들은 이번 간호법 제정을 통해 '간호사 처우 개선'과 '노인 돌봄 수요 부응' 등 두 마리 토끼를 원했다. 임인택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의료-요양-돌봄이 통합적으로 규정이 되는 통합 법안이 하나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이미 국회에 3건가량이 '지역사회돌봄법'이라는 이름으로 제안된 상태"라고 부연했다. 이어 임 실장은 "간호사의 업무 영역은 사회적 논의를 거쳐 합의된 부분을 법안에 최대한 담도록 노력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의사들의 단체인 대한의사협회는 '간호사들의 처우 개선'에는 공감하고 있다. 다만 간호법을 별도로 제정할 게 아니라, 현행 의료법을 개정하는 방식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16일 이필수 대한의사협회장은 "간호사뿐 아니라 모든 보건복지의료 직역 종사자를 위한 처우 개선, 전문성 향상을 위한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사·치과의사·간호사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약소한 직역인 간호조무사·임상병리사·방사선사 등 관련 직역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연대를 통한 단체 행동에 나서자는 것이다.

대학병원 B 교수는 "간호사의 처우 개선 항목은 '보건의료인력지원법'의 시행규칙에 담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언했다. 이 법은 보건의료기관의 원활한 보건의료인력 수급을 지원하고, 보건의료인력의 근무환경 개선, 복지 향상, 우수 인력 양성 등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해 보건의료서비스의 질을 제고하고 국민건강 증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2020년 공포된 바 있다.

무엇보다 간호협회가 대화의 테이블에 나와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앞서 간호협회 임원진은 지난 4월 국민의힘이 마련한 '의료현안 민당정 간담회'에서 회의 도중 자리를 박차고 나간 바 있다. 이 같은 대화 단절에 대한 원로의 충고도 나왔다. 전(前) 순천향의대 예방의학교실 박윤형 교수는 "사실 병원 현장에선 의사와 간호사의 협력에 문제가 없지만 간호법 등 정책적 이슈가 확산하면서 두 직역 간 갈등·투쟁 구도가 프레임화하고 있어 안타깝다"면서도 "국민 건강이 우선인 만큼 의사와 간호사 단체가 대화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박미주 기자 beyond@mt.co.kr 이창섭 기자 thrivingfire2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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