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덕칼럼] 신데렐라의 추락
에코프로 창업자 법정구속
개인은 벌 받아야 하지만
기업은 성장 지속해야
충격적이고 어처구니가 없다. 폭풍처럼 성장하는 기업의 창업자가 그런 터무니없는 일탈 행위를 했는지 상식적으론 이해가 안 된다. 반도체와 함께 국가전략산업의 하나인 배터리 소재기업인 에코프로. 해당 분야에선 국내 1등이다. 이 회사 오너인 이동채 전 회장이 주식시장에서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부당 이득을 취한 혐의로 형사 고발됐다. 지난주 항소심이 있었다. 1심에선 집행유예였으나 2심에선 2년 실형을 받았다. 법정구속. 많은 관련자들이 이런 상황을 예상치 못했다. 법정에선 한숨 소리가 나왔다. 당사자로선 청천벽력이었을 게다.
확실히 해둘 게 있다. 죄를 지은 기업인을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판결문에 나온 것처럼 '죄질이 좋지 않다'. 평소 잘 알던 단골 자영업자의 차용계좌를 사용했고 자식들에게 자금을 제공해 주식거래를 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냈다. 이런 식이다. 배터리를 제조하는 국내 대기업과 몇 년간 수조 원대의 양극재 장기공급계약을 맺었다. 고정적으로 수입이 들어온다. 투자자들에게 당연히 알려야 할 호재다. 이 사실은 3일 후 금융감독원 전자시스템에 공시됐다. 바로 그 틈에 본인은 차명계좌로 주식을 매입하고 아들과 딸에게 각각 수억 원을 주고 그 돈으로 주식을 사들였다. 1년6개월 후에도 비슷한 유형의 범죄를 저질렀다.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수억 원의 시세차익. 전형적인 내부자거래다.
은행원으로 일하다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따고 회계법인에 근무하던 이동채 회장은 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창업을 결심한다. 그래서 만든 회사가 지금의 에코프로. 회계 전문가가 엔지니어링 분야의 기술기업을 만들었다는 자체가 위대한 도전이며 더더욱 그 회사를 1등 기업으로 성장시켰다는 건 그야말로 신화다.
전기차나 휴대폰에 들어가는 배터리를 구성하는 소재는 크게 4가지다. 양극재, 음극재, 전해질, 분리막. 이 중 가장 돈이 되고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건 양극재다. 양극재는 다시 니켈, 코발트, 망간 등의 소재로 구성되는데(NCM의 경우) 이 중 핵심은 니켈이다. 이 비중을 높여야 배터리 용량이 커진다. 그런데 니켈 비중이 높아질수록 제조에 어려움이 발생하고 양산이 힘들어진다. 이걸 해소하는 기술이 소위 물로 씻어내는 수세 공정인데 일본이 원천기술을 갖고 있었다. 국내 대기업이 이 기술을 도입했는데 원하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걸 해낸 게 에코프로란 중소기업이다. 신데렐라처럼 등장한 에코프로는 그 후 양극재와 관련해서는 세계 최고의 제조기술력 보유 회사로 우뚝 서게 된다.
25년 전 서울 서초동에서 약 10평 남짓한 사무실로 시작한 회사가 경북 포항에 15만평 규모의 공장을 세우고 청주엔 R&D센터까지 짓는다. 해외에선 귀한 몸이다. 지난달 헝가리 데브레첸에서 착공식을 거행했다. 전기차 135만대 생산물량이며 내년에 양산에 들어간다. 캐나다에도 공장을 짓는다는 계획이다. 양극재 생산을 시작한 2006년 15억원에 불과했던 매출이 작년엔 무려 5조6000억원. 3733배나 증가한 수치이며 1년 전과 비교해서도 4배 가까운 성장세다. 핵심 사업회사(에코프로비엠)의 시가총액은 22조원을 넘어(16일 기준) 코스닥 1위. 이 사건으로 주가가 폭락한 게 이 정도다.
가만있어도 돈방석에 앉는데 (그에게는) 푼돈 챙기려고 터무니없는 짓을 했을까 의구심이 든다. 순간의 실수인지 개인적 일탈인지는 본인만이 알겠지만 배터리 강국에 기대를 걸었던 투자자들, 더 나아가 일반 국민들 입장에선 기가 찰 노릇이다. 그동안 도전정신으로 과감한 투자를 단행해 기업을 이렇게 키운 창업자였는데 말이다. 그가 영어의 몸이 된 건 불행이다. 그러나 기업만은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성장세를 이어가야 한다. 에코프로가 멈추면 이 회장은 더 큰 죄를 짓게 된다.
[손현덕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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