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묵은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도입 초읽기···진료비 보험청구 서류, 실손보험사에 바로 간다
14년간 논의된 실손의료보험 청구 간소화 제도가 도입 초읽기에 들어갔다. 금융당국은 제도가 도입되면 실손보험 가입자의 보험금 청구가 편리해지고 연간 최대 3000억원이 소비자에게 돌아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보험사도 행정비용을 줄일 수 있다며 찬성하고 있다.
반면 의료계는 의사에게 통제권이 있는 비급여 진료 정보가 공적기관에 쌓이고 정부가 이에 개입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일부 환자단체도 보험사의 고액 보험금 지급 거절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16일 법안심사제1소위원회를 열고 실손보험 청구 절차를 간소화하는 내용을 담은 보험업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정무위 전체회의, 법제사법위원회, 국회 본회의 절차가 남았다.
개정안은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가 요청하면 병원 등 요양기관은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 진료비 계산서 등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서류를 전자적인 방식으로 전문중계기관(전송대행기관)을 통해 보험사에 전달하도록 했다. 전산시스템 구축과 운영 비용은 보험사가 부담하고, 전문중계기관은 공공성·보안성·전문성 등을 고려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했는데 보험개발원이 유력하다. 시행 시기는 공포 후 1년(의원급은 2년)이다.
실손보험은 상해와 질병으로 발생하는 의료비 중 건강보험이 부담하는 급여 항목을 제외한 본인부담금과 비급여의료비를 보장하는 상품이다. 지난해 말 기준 가입자(계약건수)는 3997만명(3565만건)에 달해 제2의 국민건강보험으로 불린다. 건강보험 가입자는 5141만명이다.
실손보험 가입자는 보험금을 받으려면 직접 요양기관에 요청해 필요 서류를 받아 보험사에 제출해야 한다. 일부 대형병원에서 환자의 진료비 계산서 등을 보험사에 직접 보내주고 있지만 전체 의료기관 약 10만곳 중 1%에 그치고 있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국민권익위원회가 2009년 공론화한 후 관련 법안이 계속 발의됐지만 법 개정은 되지 않았다.
신진창 금융위 금융산업국장은 지난달 25일 열린 정무위 법안소위에서 “실손보험 가입자가 불편한 절차 때문에 청구하지 않는 보험금이 연간 2000억~3000억원으로 추정된다”면서 “청구 절차가 간소화되면 국민들의 가처분 소득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험사도 단기적으로는 시스템 구축과 보험금 청구 건수가 증가해 비용이 늘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가입자가 제출한 서류를 수기로 입력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반면 의료계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에 반대하고 있다. 환자의 민간정보 유출이 우려되고 보험사가 진료 정보를 축적해 보험금 지급 외의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실손보험은 민간 보험사와 가입자간 사적 계약일뿐 건강보험이나 자동차보험과 같은 공적제도가 아닌데 제3자인 요양기관에 법적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점도 내세운다.
반면 보험업계는 보험금 청구 전산화로 보험사가 받는 증명서류 범위가 줄어들어 오히려 정보 유출 위험이 낮아지고, 병원의 진료비 계산서 전송은 환자 요청을 받은 요양기관의 업무라고 반박한다.
의사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비급여 의료 행위가 제한될 가능성이다. 당초 중계기관으로 거론됐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급여 항목뿐 아니라 비급여 항목까지 들여다보고 통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지낸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법안소위에서 “심평원을 전문중계기관으로 해 의료비를 통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험업계도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계기로 정부가 비급여 항목을 통제하기를 내심 바라고 있다. 보험사는 병원의 과도한 비급여 진료가 실손보험 손실의 핵심 원인이라고 본다.
금융당국과 정무위는 대한의사협회의 반대를 고려해 중계기관을 보험개발원으로 하기로 했다. 금융위는 보험개발원이 단순 자료 전송 기관의 역할만 하는 만큼 용어도 전송대행기관으로 변경하자는 의견을 냈다.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 등은 전날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가 의료민영화로 이어질 수 있고 고액 보험금은 받지 못하게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보험사는 지금도 고액 보험금 청구는 소액보다 엄격히 심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희곤 기자 hul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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