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헬기 위협하는 송전선로, 이대로 괜찮을까[산불 진화 ‘사각지대’①]

강한들 기자 2023. 5. 16.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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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로 ‘봄철 산불 조심 기간’이 끝났다. 올해 산불 피해 면적은 지난해보다 적었지만, ‘충격’은 더 컸다. 지난달 2일 서울 인왕산에서 불기둥이 솟구쳤고 하루 동안 전국 30여곳에서 산불이 발생하기도 했다.
산불 진화에는 난관이 많다. 송전선이 있으면 헬기가 진화에 나서기 어렵다. 산불 현장 인근에 담수지가 없으면 헬기가 많아도 효율이 낮다. 비무장지대와 민통선 이북, 군 사격장 등은 산불이 나도 대응이 쉽지 않다.
환경단체들은 기후위기로 인해 앞으로 산불이 더 자주, 크게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경향신문은 녹색연합과 함께 산불 대응의 ‘사각지대’를 찾아 그 실태를 점검했다.

지난 4일 찾아간 강원 삼척시 원덕읍 일대는 아직도 검게 물들어 있었다. 지난해 3월 발생한 울진·삼척 산불의 흔적이 여전했다. 특히 송전선이 지나가는 능선부 밑은 유독 더 시커멨다. 능선부에서는 주로 불에 잘 타는 소나무가 자랄 뿐 아니라 송전선으로 소방헬기 등이 접근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환경단체가 송전선 지역을 대표적인 산불 대응 사각지대로 꼽는 이유다. 송전선은 산불 진화만 방해하는 것은 아니다. 불이 붙으면 주변 지역 전기 공급에도 당연히 영향을 미친다. 지난해 산불로 영향을 받은 송전선로 노선은 30개, 선로 정지 시간은 500여 시간에 달한다.

같은 날 경향신문은 녹색연합과 함께 향후 경북 봉화군 소천면 고선리 일대를 둘러봤다. 녹색연합은 한국전력이 계획대로 이 지역에 송전선로를 건설하면 앞으로 가장 큰 산불 사각지대가 될 것이라 주장했다.

강원 삼척시 원덕읍 일대 죽은 나무를 베어낸 산에 높이 수십m에 달하는 송전탑이 지난 4일 우두커니 서 있었다. 강한들 기자
송전선이라는 ‘덫’

동해안에 있는 강릉안인화력발전소 2호기, 삼척화력 1·2호기 등이 가동을 시작하면 새로운 송전선로가 필요하다. 기존 송전선로로는 발전량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전력은 수도권으로 전기를 보내기 위해 고선리 등이 포함된 동해안-신가평 송전선로 허가절차를 밟고 있다.

산불 진화 최일선에서 일하는 산불 진화 헬기 기장들은 송전선이 있는 산지를 진화하는데 ‘최소 2배’의 시간이 걸린다고 입을 모은다. 통상 헬기 진화를 할 때 나무에서 15~20m 정도 상공에서 물을 뿌리는 게 가장 효율적이라고 본다. 방수 지점이 더 높아지면, 물이 화선을 정확히 타격하지 못하고 주변 지역으로 ‘스프레이’처럼 퍼진다. 그런데 초고압송전선은 보통 50~70m 정도 높이다.

송전선 바로 밑에 있는 숲만 문제가 아니다. 송전선 인근도 영향을 받는다. 박봉식 산림청 강릉산림항공관리소 기장은 “안전사고 우려가 있어서 헬기가 송전선 옆까지 들어가지는 못한다”며 “송전선과 비슷한 고도에서 옆으로 갈 때도 있지만, 바람 때문에 항공기가 밀리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산림청 산림항공본부 소속 한 기장은 “삼척 지역은 특히 송전선로 규모가 커서 진화가 어려웠다”라며 “경북 봉화 지역에도 큰 송전선이 생긴다고 하는데, 부담이 된다”라고 말했다.

박봉식 산림청 강릉산림항공관리소 기장이 지난 4일 강릉산림항공관리소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강한들 기자
초록‘이색’의 산에서, 녹색으로 물든 고선리

송전선 인근 나무가 ‘소나무’라면 설상가상이다. 진화 헬기가 현장에 도착해 산림청 본부로 가장 먼저 보고하는 것 중 하나가 해당 산불 현장 숲의 ‘수종’이다. 그만큼 불이 산의 수종이 진화에 큰 영향을 미친다.

녹색연합과 찾은 봉화군 소천면 고선리 일대로 가까워져 오자 숲은 ‘짙은 녹색’ 도화지처럼 보였다. 소나무 비율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연두색은 점처럼 드물게 찍혀 있었을 뿐이다. 지난 2월 말 환경영향평가를 통과한 ‘500kV 동해안~신가평 송전선로 건설사업 동부 2~3구간’은 봉화군 소천면 고선리 일대의 소나무 밀집지를 관통한다. 해당 사업 환경영향평가서의 노선 아래 식생 평가를 보면, 봉화군 구간에는 소나무를 뜻하는 ‘Pd’로 표시된 영역이 넓다.

경북 봉화군 고선리 구마동 일대의 산지가 소나무로 뒤덮여 있다. 녹색연합 제공
지난 2월 말 환경영향평가를 통과한 ‘500kV 동해안~신가평 송전선로 건설사업 동부 2~3구간’은 봉화군 소천면 고선리 일대의 소나무 밀집지를 관통한다. 해당 사업 환경영향평가서의 노선 아래 식생 평가를 보면, 특히 봉화군 구간에는 소나무를 뜻하는 ‘Pd’로 표시된 영역이 넓다. 환경영향평가서 갈무리

특히 능선부 대부분에서는 소나무가 자라고 있다. 1년 내내 잎을 틔우고 햇빛을 받아야 하는 상록침엽수는 햇빛을 잘 받을 수 있는 능선부에 자리 잡는 사례가 많다.

봉화군은 이미 산불 안전 지대가 아니다. 지난 5년간 평균적으로 한 해 7건, 약 30㏊가 탔다. 특히 지난해에는 산불 10건이 발생해, 피해 면적이 138.06㏊에 달했다.

행여나 산불이 시작하면 소나무 비율이 높은 고선리 일대의 위험은 예상을 뛰어넘을 수 있다. 산 밑바닥을 따라 번지던 불도 소나무 숲을 만나면 송진을 연료 삼아 수관화가 되기 쉽다. 주요 산불이 발생할 때마다 산불 현장에서 현장을 모니터링해온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능선 소나무에 불이 붙으면 불이 능선에서 다른 능선으로 수백미터 이상 넘어가는 ‘비산화’가 나타난다”라고 말했다.

봉화군 석포면 한 야산에 지난 2017년 있었던 산불로 탄 나무가 능선을 따라 남아있다. 강한들 기자

산불은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상 ‘자연재난’이 아닌 ‘사회재난’으로 분류돼있다. 그런데 자연재해대책법 상 ‘재해영향평가’ 대상 재난은 자연재난 뿐이다. 재해영향평가는 자연재해에 영향을 미치는 개발사업으로 인한 재해 유발 요인을 조사, 예측, 평가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제도다.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기후위기 재난인 산불에 대해서도 재해영향평가가 필요하다”라며 “송전선로 등에 대한 재해영향평가를 하는 게 시설도 지키고, 산불 위험도 줄일 방안”이라고 주장했다.

강한들 기자 hand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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