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정에 두번 크게 울었지만 포기 안하면 인생은 챔피언
편파 판정에 올림픽 날리고
절치부심끝 WBC 타이틀 획득
2차 방어전도 판정에 무릎
미련없이 링 떠나 새 인생
"나는 풍운아 아닌 행운아"
1988년 9월 22일 서울올림픽 복싱 밴텀급 2차 예선. 한국 코치진이 자리에 일어나 거칠게 항의하기 시작했다. 주심 키스 워커(뉴질랜드)가 변정일(55·사진)에게 부당하게 파울과 감점을 주며 노골적인 편파 진행을 했기 때문이다. 경기 내내 상대 선수 알렉산다르 흐리스토프(불가리아)를 압도한 변정일은 판정패가 선언되자 링 바닥에 주저앉았다. 6차례의 선발전을 거치고 밤낮으로 훈련하며 준비한 올림픽 메달이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5년 뒤인 1993년 3월 28일 변정일은 경주에서 진행된 WBC 밴텀급 타이틀전에서 빅토르 라바날레스(멕시코)를 전원 일치 판정승으로 누르고 세계 챔피언에 오른다. 편파 판정과 선수 자격 정지, 은퇴를 생각할 만큼 심각했던 부상을 극복하고 이룬 성과였다. 올해는 변 전 챔피언이 세계 타이틀을 획득한 지 30주년이 되는 해다. 매일경제와 만난 변 전 챔피언은 "불행한 일도 있었지만 돌이켜보면 스스로 단단해질 수 있는 계기들이었다"고 말했다.
승리를 빼앗긴 변 전 챔피언은 서울올림픽 이후 오히려 국민적 비난을 받았다. 개최국의 선수가 67분여간 링 위에 주저앉아 과도하게 항의했다는 게 이유였다. 코치진의 지시로 링에서 내려오지 않았던 그에겐 억울한 비난이었다. 당시 한국 선수단은 경기 관계자와 몸싸움을 하는 등 거세게 항의했다. 변 전 챔피언은 "앞선 경기에서도 오광수 선수가 석연찮은 판정으로 졌기 때문에 남은 선수가 또다시 불이익을 받는 것을 막기 위해 한국 복싱팀이 강경 대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변 전 챔피언은 올림픽이 끝난 해 프로로 전향했지만 판정 불복 사건으로 나빠진 이미지 때문에 2년간 시합을 잡지 못했다. 수입이 끊긴 상태로 복서로서 가장 기량이 뛰어난 20대를 흘려보낸 것이다. 결정적 불행은 부상이었다. 변 전 챔피언은 싸움에 휘말린 친구를 말리다 회칼로 난자를 당했다. 칼날이 폐에 근접할 만큼 깊게 들어오고 왼팔 인대가 끊어진 큰 부상이었다.
의사가 '앞으로 선수 생활은 힘들 것'이라고 했지만 변 전 챔피언은 재활에 매진해 프로 전향 9전 만에 세계 챔피언에 올랐다. 이후 1년 뒤인 두 번째 방어전에서 또다시 석연찮은 판정으로 타이틀을 뺏기자 미련 없이 링을 떠났다.
변 전 챔피언은 아내가 있어 거듭되는 불행을 견뎌낼 수 있었다고 밝혔다. 1988년 태릉선수촌으로 보낸 팬레터를 계기로 변 전 챔피언과 인연을 맺은 아내는 고난이 생길 때마다 변 전 챔피언에게 힘이 돼줬다.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둔 이들 부부는 현재 경기도 평택에서 만두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깔끔한 맛과 친절한 서비스로 월 매출이 수천만 원에 달한다. 변 전 챔피언은 "살면서 실패한 일도 있었지만 성공한 일도 많았다"며 "과거 언론에서 저를 풍운아라고 했지만 저는 제가 행운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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