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파견 인정되면 정직원과 임금 차액 10년치 줘야 [김진성의 판례 읽기]

2023. 5. 16.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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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삼표시멘트 하청 노동자들 손 들어줘
기업들 ‘인건비 폭탄’ 우려

[법알못 판례 읽기]

삼표시멘트 삼척공장 전경. 사진=삼표시멘트 제공



불법 파견 상태임을 인정받은 하청 업체 노동자가 최대 10년 치의 임금 차액을 원청에 청구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처음 나왔다. 하청이 아닌 원청 정직원으로 일했으면 더 받을 수 있었던 임금을 산정하는 기간을 10년까지 잡을 수 있다는 얘기다.

원청이 소송에서 패소하면 하청 노동자 직접 고용뿐만 아니라 대규모 손해 배상 부담까지 떠안게 될 것으로 보인다. 손해 배상 산정 기간이 10년까지 허용되면서 불법 파견을 둘러싼 소송이 더욱 빗발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직접 고용에 대규모 배상 부담도…‘설상가상’

대법원 3부(재판장 이흥구 대법관)는 4월 27일 삼표시멘트의 하청 업체 노동자들이 원청을 상대로 낸 근로에 관한 소송에서 원고 측의 손을 들어줬다.

하청 업체 노동자들을 파견 상태로 인정하면서 이들을 삼표시멘트가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노동자들의 주장대로 차별적 처우에 따른 손해 배상의 소멸 시효를 10년으로 잡아야 한다고 봤다. 파견법은 2년 이상 파견 노동자로 근무한 직원은 사업주가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대법원은 “사업주는 합리적인 이유 없이 임금 차별을 받는 파견 노동자에게 차별이 없었더라면 받을 수 있는 적정한 임금과 실제 지급 받은 임금의 차액에 상당하는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며 “원고들의 손해는 (삼표시멘트의) 새로운 불법 행위로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민법 제766조에 따라 손해 배상의 소멸 시효를 10년으로 봐야 한다는 원심엔 잘못이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정년이 지난 하청 노동자의 손해 배상액은 삼표시멘트에서 정년을 넘긴 상태로 해당 하청 노동자와 같거나 비슷한 일을 하는 정규직 노동자 또는 촉탁직 기간제 노동자의 임금을 기준으로 계산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정년이 지나지 않은 삼표시멘트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봤던 원심과는 다른 결론을 내렸다.

하청 업체 노동자들은 삼표시멘트 삼척공장에서 컴프레서·펌프·보일러 등을 운전하고 점검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들은 2018년 “삼표시멘트 측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지휘·명령을 받고 있다”며 원청의 직접 고용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원청 노동자였다면 받을 수 있었던 임금에서 하청 노동자로서 실제로 받은 임금의 차액 10년 치를 손해 배상 명목으로 지급해 달라고도 요구했다. 삼표시멘트의 불법 행위로 손해를 봤기 때문에 배상액도 임금 채권 소멸 시효(3년)가 아니라 불법 행위 손해배상청구권 소멸 시효(10년)를 적용해 계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삼표시멘트 측은 “불법 파견으로 인정되더라도 손해 배상액은 3년 치 임금 차액으로 봐야 한다”고 맞섰지만 재판에선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심과 2심을 맡았던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은 연이어 노동자들의 주장이 합당하다고 판단했다. 이 판단은 대법원에서도 그대로 유지됐다.

이번 소송에서 원고 측을 대리한 류재율 법무법인 중심 변호사는 “그동안 불법 파견 소송에선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 시효를 어떻게 봐야 할지를 두고 의견이 엇갈렸는데 이번 대법원 판결로 논란이 잠재워질 것”이라며 “정년이 지난 파견 노동자들도 차별 금지 위반을 이유로 사업주에게 손해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도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 ‘초비상’…비슷한 소송 줄 이을 듯

이번 판결로 불법 파견 소송에 휘말린 기업들의 부담이 한층 커질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앞으로 진행될 소송에서 하청 노동자들이 10년 치의 임금 차액을 손해 배상액으로 요구할 가능성이 높아져서다.

그동안 진행됐던 불법 파견 소송에선 노동자들이 임금 채권 소멸 시효(3년)를 적용해 손해 배상을 청구한 게 대부분이었다. 당초 예상보다 배상 규모가 3.3배까지 뛸 수 있게 됐다.

이광선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노동자들을 불법 파견 소송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게 한 주요인 중 하나가 손해 배상금이었다”며 “이전보다 훨씬 많은 배상금을 받을 수 있게 되면서 불법 파견 소송을 제기하는 하청 노동자가 대거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법원에선 하청 노동자를 파견 노동자로 인정하는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대법원은 2022년 7월 포스코에 “광양제철소 협력 업체 직원 59명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판결한 데 이어 2023년 4월 신대구부산고속도로 협력 업체 노동자 124명을 파견 노동자로 인정했다.

현대제철·한국GM·삼성전자서비스도 2심에서 패소한 뒤 상고심을 진행 중이다. 김동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아직 하급심 단계에 있는 노동자들이 손해 배상 청구액 규모를 더 키울 것으로 예상된다”며 “기업들에 상당한 파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돋보기]
 

 업무 지시 입증 안 되면 ‘원청 승리’

하청 노동자가 불법 파견 소송에서 이기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지만 원청이 승소하는 경우도 있다.

1심에서 패소한 뒤 2심과 3심에서 연이어 승소해 도급 관계임을 인정받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대표적이다. 원청이 구체적으로 업무를 지시한 정황이 입증되지 않는다면 파견이 아닌 하도급 계약을 맺은 노동자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다.

대법원 1부(재판장 노태악 대법관)는 1월 12일 광주근로자건강센터 사무국장으로 일하다 퇴직한 A 씨가 자신을 파견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은 2심 판결에 불복해 제기한 상고를 최근 심리불속행으로 기각했다.

심리불속행은 원심에 중대한 법령 위반 등 특별한 이유가 없을 때 본안 심리 없이 상고를 기각하는 것을 말한다. 재판부는 “사건 기록과 원심 판결, 상고 이유를 모두 살펴봤지만 원고의 주장엔 이유 없음이 명백하다”고 판단했다.

근로자건강센터는 50명 미만이 일하는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의 직업성 질환 예방과 상담 등을 하는 기관으로 전국 23곳에서 운영되고 있다. 광주근로자건강센터는 2012년 4월 문을 연 뒤 2019년까지 조선대 산학협력단이 위탁 운영해 오다가 2020년 근로복지공단 순천병원으로 위탁 운영 기관이 바뀌었다. 새 위탁 운영 기관이 고용을 승계하지 않으면서 A 씨는 그해 퇴직했다.

A 씨는 센터를 떠난 뒤 “광주근로자건강센터 직원들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으로부터 업무 수행에 관한 지휘·명령을 받는다”며 원청의 직접 고용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A 씨는 광주근로자건강센터에 대한 운영 실태 평가가 공단의 성과 관리 지표에 맞춰 이뤄지고 공단이 통합 전산 시스템을 통해 센터의 주간·월간 실적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 등을 불법 파견 근거로 내세웠다. 산업안전보건공단은 “위탁 운영 계약의 실질은 도급 계약”이라고 맞섰다.

산업안전보건공단은 1심에서 패소했지만 2심에서 판결을 뒤집었다. 광주를 비롯해 지역별 센터가 노동자 인사 관리를 자체적으로 해왔다는 점이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 1심에서 A 씨 승소의 주요 근거였던 운영 실태 평가 방식도 지휘·명령 근거로 인정하지 않았다.

2심 재판부는 “개별적인 업무 수행 방식과 관련한 점검 항목이 없기 때문에 (공단이) 이를 활용해 A 씨에게 간접적으로나마 업무를 지시하거나 구체적인 업무 과정과 방법을 감독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에서도 이 같은 판단이 그대로 유지됐다.

김진성 한국경제 기자 jskim102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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