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잘 치면 찬스에도 강할까? [김양희의 맛있는 야구]
[김양희 기자의 맛있는 야구]
‘클러치’(clutch)는 영어로 ‘단단히 움켜잡다’라는 뜻이 있다. ‘클러치 히터’는 그래서 득점 상황, 혹은 주요 상황을 놓치지 않고 꽉 움켜쥐어서 안타를 터뜨리는 선수, 즉 해결사를 일컫는다. 혹자는 말한다. ‘클러치 히터’는 없고 ‘클러치 상황’만 있을 뿐이라고. 잘 치는 선수는 어떤 상황에서도 잘 친다는 얘기다. 과연 그럴까.
한국야구위원회(KBO) 자료(3000타석 이상 기준·스포츠투아이 제공)를 보면, 통산 타율이 높은 선수가 통산 득점권(주자가 2루 이상에 위치) 타율 또한 높은 경우가 꽤 많다. 은퇴 선수 기준으로 가장 높은 통산 타율(0.330)을 기록 중인 장효조의 경우 통산 득점권 타율이 0.354(역대 2위)에 이른다. 득점권에서 훨씬 더 집중력이 발휘됐다. 김태균이나 유한준도 비슷하다. 김태균은 통산 타율이 0.320인데, 득점권 타율은 0.341였다. 유한준은 통산타율(0.302)은 3할을 겨우 넘겼지만 득점권 타율에 있어서는 0.333에 이르렀다.
이강돈의 경우 통산타율이 2할대(0.284)였지만 득점권 타율은 안정적 3할대(0.316)였다. 1988시즌 때는 득점권 타율이 0.434(96타석 33안타)에 이르기도 했다. 당시 그의 시즌 타율은 0.313. 확실한 클러치 히터였다. 최준석은 통산 타율은 0.275에 불과하지만 득점권 타율은 3할대(0.304)였다. 타율 2~3푼의 격차가 미미하다고 얘기할 수는 없다.
물론 이승엽(통산 타율 0.302/득점권 타율 0.304), 이종범(통산 타율 0.297/득점권 타율 0.294), 박재홍(통산 타율 0.284/득점권 타율 0.289), 홍성흔(통산 타율 0.301/득점권 타율 0.305)처럼 통산 타율과 득점권 타율이 얼추 비슷한 선수도 꽤 있다. 현역 시절 ‘캐넌 히터’로 불린 김재현의 경우는 통산 타율(0.294)보다 득점권 타율(0.282)이 낮았다. 이병규(통산 타율 0.311/득점권 타율 0.299)도 마찬가지. 한화 이글스에서 7년간 뛰었던 제이 데이비스의 경우는 통산 타율이 0.311였지만 득점권 타율은 0.282에 불과했다.
현역 선수 중 득점권 타율이 가장 높은 이는 박민우(NC 다이노스)다. 박민우는 통산 타율이 0.319(5월8일 기준)인데 통산 득점권 타율은 이보다 4푼1리(0.041)가 높은 0.360이다. 그는 2016년 시즌 타율은 0.343였지만 득점권 타율은 0.434에 이르렀다. 엘지(LG) 트윈스 더그아웃 리더 김현수의 경우, 통산 타율이 0.317인데 득점권 타율은 0.341다. 김현수는 2020시즌 때 득점권 타율 0.446(시즌 타율 0.331)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는 올 시즌도 타율은 0.301에 머물지만 득점권(타율 0.448)에서는 누구보다 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참고로 단일 시즌 득점권 타율이 가장 높았던 선수는 프로 원년(1982년) 때 백인천이다. KBO리그 유일한 4할 타자(0.412·250타수 103안타)인 그는 당시 득점권 타율 0.476(90타석 63타수 30안타)를 기록했다.
득점권 타율만으로 해당 선수의 클러치 능력을 평가할 수는 없다. 득점권 타율이 1할대여도 가장 중요한 경기에서 ‘한 방’을 쳤을 때 팀이나 팬에게 각인되는 임팩트는 상당하다. 임팩트는 곧 같은 상황에서의 기대치로 이어진다. 단순히 숫자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 야구는 숫자의 게임이기도 하지만, 멘털의 게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경기 진행 동안 클러치 상황은 빚어지고 그 상황을 마주한 타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기대치, 혹은 압박감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그리고, 기대치가 낮은 선수가 적시타를 터뜨릴 경우 각인 효과가 더 커진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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