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민의 THIS WEEK] "병산서원 매화나무 두 그루가 봄이면 맘을 쥐락펴락 하네요"

서정민 2023. 5. 16.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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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병산서원 서재 들어열개창의 차경. 2011년. 사진 이동춘
차경(借景), 경치를 빌린다는 말이다. 집의 창과 문을 액자처럼 활용해 밖의 경치를 잠시 빌려 감상하며 즐긴다는 이 개념은 전통 한옥이 가진 건축미학의 정수이기도 하다. 창과 문을 통해 살아있는 풍경화가 집 안팎을 자유롭게 오가니 그야말로 자연과 함께하는 삶이요, 소유치 않고 잠시 빌려서 즐긴다니 소박하고 격조 있는 삶이다.

서울 청운동에 위치한 사진위주 류가헌(이하 류가헌) 갤러리에서 5월 21일까지 개최되는 ‘경치를 빌리다-한옥의 차경’전은 사진가 이동춘씨가 우리나라 곳곳의 한옥 고택에서 담아낸 40여 점의 차경을 감상할 수 있는 자리다. 안동 병산서원 서재의 들어열개창 밖으로는 초록 담쟁이와 함께 진분홍 배롱나무꽃이 한창이고, 서애 류성룡의 맏형 경암 류운용의 정자 밖에는 나무 한 그루가 듬직하니 용트림한다. 펄펄 눈발이 날리는 광산김씨 예안파 종가의 사랑채, 흰 창호지를 바른 문 한쪽에서 푸른 그늘을 드리운 설월당 앞 느티나무도 시선을 붙든다.

서애 류성룡의 맏형 경암 류운용의 정자. 2017년. 사진 이동춘
2005년부터 서울과 안동을 오가며 고택, 종가, 서원 등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는 이동춘 사진가는 막내딸이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면서 엄마로서의 역할을 끝냈다고 생각한 5년 전부터 아예 안동 가까이로 거주지를 옮겼다. ‘남의 집 제사에 어디 여자가 끼어드느냐’ 호통을 들으며 약이 올라 머리를 짧게 자르고, 옷도 남자 옷만 입고 다니기를 4~5년. 마을 어르신들은 비로소 그에게 마음을 열었다. 안동의 고택 107곳을 방문해 15년간 찍은 사진을 묶어 2020년에는 사진집 『고택문화유산 안동』을 발간했고, 21년에는 한옥 구석구석을 구성하는 용어들을 사진과 함께 살펴보는 『한옥·보다·읽다』을 발간했다.
담양 소쇄원 제월당 대청마루. 2016년. 사진 이동춘.
대구 광거당 누마루. 2018년. 사진 이동춘
“예전에 갔던 곳도 몇 년 후 다시 가면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날들을 한옥에서 보냈죠. 그냥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한옥이 품고 있는 아름다운 요소들과 특징들을 찾아서 그것을 사진 안에 담아내고자 탐색하고 고민하는 시간들이었죠. 계절을 바꿔가며 무수히 목격했던 그 시간들에서 어느 때고 나를 놀래고 감동케 했던 것은 서원이든 종가든 작고 소박한 고택이든, 한옥채들이 품고 있는 차경이라는 경치였어요. 바깥의 경치를 집안으로 끌어들여 방안에 앉아 마당을 보고 담을 보고 담장 너머의 산과 풍경을 보면서 집안에서도 자연과 교감하는 거죠.”
안동 동곡서사 서쪽 방의 문그림자. 2019년. 사진 이동춘
이 사진가는 한옥의 차경을 찍는 일은 늘 기다리는 일이었다고 했다. 꽃이 필 때까지, 단풍이 들 때까지, 눈이 올 때까지. 그마저도 그냥 기다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 한옥에 문과 창을 만들고 계절마다 누마루에 올랐던 이가 꿈꾸었을 절정의 장면들을 그 또한 기다려야 했다. 그 꽃이 피어서, 단풍이 들어서, 눈이 내려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병산서원 마당 누마루 앞 양쪽에 매화나무가 서 있는데, 이게 도무지 한 번에 같이 피는 적이 없어요. 양쪽의 매화나무가 만개한 풍경을 찍고 싶은데 맘대로 안 되네요. 올해는 어떨까? 해마다 봄이면 아주 사람 마음을 쥐락펴락 합니다.”(웃음)

사진전은 류가헌 1관과 2관에서 나누어 열리는데, 특히 지하 1층 전시장에 가면 실제 창만한 133×63cm 사이즈의 큰 사진들 앞 의자에 앉아 ‘차경’하는 기분을 낼 수 있다. 더욱이 이번 사진들은 전통 한지에 프린트를 한 것이라 그 풍경이 더욱 따뜻하게 다가온다.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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