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두번째 거부권 행사···간호법 ‘공약 파기’ 비판에도 유감 표명 없어

정대연·유설희 기자 2023. 5. 16.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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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간호법 제정안에 대한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하면서 여야 협치 전망은 더욱 어두워졌다. 취임 2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야당 지도부와는 한 차례도 만나지 않은 윤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 행사는 지난달 4일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이어 두 번째다. 특히 윤 대통령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간호법 제정을 약속한 바 있어 공약 스스로 뒤집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간호법안 재의요구안을 심의·의결했다. 이어 회의를 마친 직후인 오후 12시10분쯤 재의요구안을 재가했다.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직역 간 갈등과 여야 간 협의 부족 등을 거부권 행사 이유로 들었다. 윤 대통령은 “간호법안은 유관 직역 간의 과도한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말했다. 법 제정을 두고 간호사 단체와 의사 단체가 충돌하고 있는 상황을 거론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또 “간호 업무의 탈의료기관화는 국민들의 건강에 대한 불안감을 초래하고 있다”고 말했다. 간호법안 내용 중 의사 단체 등이 간호사의 독자 의료행위를 가능케 한다고 주장하는 ‘지역사회’ 단어를 염두에 둔 말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은 “사회적 갈등과 불안감이 직역 간 충분한 협의와 국회의 충분한 숙의 과정에서 해소되지 못한 점이 많이 아쉽다”고 밝혔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특정한 정치세력이 일방적으로 여야 합의 없이 법을 통과시킨다면 그 법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 국민 입장에서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정부와 여당은 지난 14일 고위 당정협의회를 열고 보건의료인 간 신뢰와 협업 저해로 인해 국민 건강에 미칠 부정적 영향, 의료법 체계에 대한 사회적 합의 없이 간호만을 별도 법으로 제정할 경우 의료체계 근간 붕괴, 간호조무사 학력 차별 등을 이유로 윤 대통령에게 간호법안 거부권 행사 건의 방침을 정했다.

간호법안은 현 의료법의 간호 관련 규정을 떼어내 별도 법안으로 만든 것으로, 지난달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등 간호인력의 자격 및 업무 범위, 처우 개선 등 내용을 담았다.

대한간호협회와 더불어민주당 등은 윤 대통령이 대선 공약을 파기했다고 비판한다. 김한규 민주당 원내대변인이 “공약을 이행하지 못한 대통령은 봤어도, 지금껏 공약을 정면으로 부정한 대통령은 처음”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여권은 윤 대통령이 간호법 제정을 약속한 적이 없다고 반박한다. 앞서 대통령실은 “공식적으로 후보가 어떤 협회나 단체에 약속은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고 했고, 국민의힘은 “(간호법 제정 공약 주장은) 명백한 가짜뉴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해 1월11일 대한간호협회와의 간담회에서 신경림 당시 협회장으로부터 간호법 제정 등 내용이 담긴 정책제안서를 전달받으면서 “간호협회의 숙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저도, 의원들도 최선을 다하겠다”며 “제가 차기 정부를 맡게 되면 간호사들의 지위가 명확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간담회장에는 ‘간호법 제정으로 국민 건강 지키겠습니다’라고 적힌 대형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당시 선거대책본부 정책본부장이었던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같은 달 24일 간호협회와의 정책간담회에서 “국민의힘은 누구 못지않게 앞장서서 (간호법안이) 조속히 입법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이것은 (윤석열) 후보가 직접 약속하셨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공약 파기에 대한 유감 표명은 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맞서 민주당 등 야권은 간호법안의 국회 본회의 의결을 다시 시도할 방침이지만 통과 가능성은 희박하다. 법안 재의결은 재적의원 과반 출석과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이 요건이다. 이 경우 법안은 법률로 확정되고, 대통령은 다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다. 부결되면 법안은 폐기된다. 115석을 차지한 국민의힘이 반대하고 있어 간호법안은 최종 폐기될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양곡관리법 개정안도 국회 본회의 재의결 끝에 폐기됐다.

정대연 기자 hoan@kyunghyang.com, 유설희 기자 s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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