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두번째 거부권 행사···간호법 ‘공약 파기’ 비판에도 유감 표명 없어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간호법 제정안에 대한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하면서 여야 협치 전망은 더욱 어두워졌다. 취임 2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야당 지도부와는 한 차례도 만나지 않은 윤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 행사는 지난달 4일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이어 두 번째다. 특히 윤 대통령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간호법 제정을 약속한 바 있어 공약 스스로 뒤집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간호법안 재의요구안을 심의·의결했다. 이어 회의를 마친 직후인 오후 12시10분쯤 재의요구안을 재가했다.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직역 간 갈등과 여야 간 협의 부족 등을 거부권 행사 이유로 들었다. 윤 대통령은 “간호법안은 유관 직역 간의 과도한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말했다. 법 제정을 두고 간호사 단체와 의사 단체가 충돌하고 있는 상황을 거론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또 “간호 업무의 탈의료기관화는 국민들의 건강에 대한 불안감을 초래하고 있다”고 말했다. 간호법안 내용 중 의사 단체 등이 간호사의 독자 의료행위를 가능케 한다고 주장하는 ‘지역사회’ 단어를 염두에 둔 말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은 “사회적 갈등과 불안감이 직역 간 충분한 협의와 국회의 충분한 숙의 과정에서 해소되지 못한 점이 많이 아쉽다”고 밝혔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특정한 정치세력이 일방적으로 여야 합의 없이 법을 통과시킨다면 그 법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 국민 입장에서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정부와 여당은 지난 14일 고위 당정협의회를 열고 보건의료인 간 신뢰와 협업 저해로 인해 국민 건강에 미칠 부정적 영향, 의료법 체계에 대한 사회적 합의 없이 간호만을 별도 법으로 제정할 경우 의료체계 근간 붕괴, 간호조무사 학력 차별 등을 이유로 윤 대통령에게 간호법안 거부권 행사 건의 방침을 정했다.
간호법안은 현 의료법의 간호 관련 규정을 떼어내 별도 법안으로 만든 것으로, 지난달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등 간호인력의 자격 및 업무 범위, 처우 개선 등 내용을 담았다.
대한간호협회와 더불어민주당 등은 윤 대통령이 대선 공약을 파기했다고 비판한다. 김한규 민주당 원내대변인이 “공약을 이행하지 못한 대통령은 봤어도, 지금껏 공약을 정면으로 부정한 대통령은 처음”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여권은 윤 대통령이 간호법 제정을 약속한 적이 없다고 반박한다. 앞서 대통령실은 “공식적으로 후보가 어떤 협회나 단체에 약속은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고 했고, 국민의힘은 “(간호법 제정 공약 주장은) 명백한 가짜뉴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해 1월11일 대한간호협회와의 간담회에서 신경림 당시 협회장으로부터 간호법 제정 등 내용이 담긴 정책제안서를 전달받으면서 “간호협회의 숙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저도, 의원들도 최선을 다하겠다”며 “제가 차기 정부를 맡게 되면 간호사들의 지위가 명확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간담회장에는 ‘간호법 제정으로 국민 건강 지키겠습니다’라고 적힌 대형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당시 선거대책본부 정책본부장이었던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같은 달 24일 간호협회와의 정책간담회에서 “국민의힘은 누구 못지않게 앞장서서 (간호법안이) 조속히 입법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이것은 (윤석열) 후보가 직접 약속하셨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공약 파기에 대한 유감 표명은 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맞서 민주당 등 야권은 간호법안의 국회 본회의 의결을 다시 시도할 방침이지만 통과 가능성은 희박하다. 법안 재의결은 재적의원 과반 출석과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이 요건이다. 이 경우 법안은 법률로 확정되고, 대통령은 다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다. 부결되면 법안은 폐기된다. 115석을 차지한 국민의힘이 반대하고 있어 간호법안은 최종 폐기될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양곡관리법 개정안도 국회 본회의 재의결 끝에 폐기됐다.
정대연 기자 hoan@kyunghyang.com, 유설희 기자 sorry@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빗속에 모인 시민들···‘윤석열 퇴진·김건희 특검’ 촉구 대규모 집회
- 트럼프에 올라탄 머스크의 ‘우주 질주’…인류에게 약일까 독일까
- 최현욱, 키덜트 소품 자랑하다 ‘전라노출’···빛삭했으나 확산
- 사라진 돌잔치 대신인가?…‘젠더리빌’ 파티 유행
- “나도 있다”…‘이재명 대 한동훈’ 구도 흔드는 경쟁자들
- 제주 제2공항 수천 필지 들여다보니…짙게 드리워진 투기의 그림자
- 말로는 탈북자 위한다며…‘북 가족 송금’은 수사해놓고 왜 나 몰라라
- 경기 안산 6층 상가 건물서 화재…모텔 투숙객 등 52명 구조
- [산업이지] 한국에서 이런 게임이? 지스타에서 읽은 트렌드
- [주간경향이 만난 초선] (10)“이재명 방탄? 민주당은 항상 민생이 최우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