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7 앞두고 급했나? 정부, 만남 거부 강제동원 피해자 찾아가 '무리수'
[이재호 기자(jh1128@pressian.com)]
일본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앞두고 정부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 관련 일본 기업 책임을 면해주는 정부 해법안을 거부한 피해자들을 만나기 위해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외교부는 피해자들로부터 이해를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16일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외교부 당국자가 피해자들에 대해 무례하게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는데 외교부 입장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정부는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해법을 발표한 이후 피해자와 유가족분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해법에 대해 충실하게 설명드리고 이해를 구하는 노력을 계속 기울여오고 있다"며 "앞으로도 진정성 있는 자세로 충실히 설명드리고 이해를 구하는 노력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임 대변인은 "다만 피해자와 유가족분들을 개별적으로 접촉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이러한 노력에 피해자와 유가족들의 법률 대리인과 지원단체에서도 적극적으로 협조해주시기를 당부드린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15일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생존 피해자의 법률대리인인 임재성 법무법인 해마루 변호사는 본인의 페이스북 계정에 외교부에서 해당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서민정 아시아태평양국장이 생존 피해자인 이춘식 할아버지를 만나려 했지만, 이 할아버지 측이 거부했다고 전했다.
문제는 외교부가 이 할아버지 측의 거부의사를 확인했음에도 직접 만나기 위해 사전 연락 없이 자택으로 찾아갔다는 점이다.
임 변호사는 "12일 오전 외교부에서 일요일(14일)에 이춘식 어르신을 뵙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이틀을 남겨두고 면담이 가능하냐 묻는 것이 상식적이진 않았지만 어르신 가족분들에게 연락을 드려 면담 요청 사실을 전달했다"며 "이후 거절 의사가 확인됐고 이를 외교부에 전달했다. '잘 알겠다'는 회신도 받았다"고 전했다.
그는 "일요일(14일) 밤 이춘식 어르신 따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서민정 국장의) 메모가 홍삼 선물과 함께 남겨져 있었다는 거다"라며 "외교부가 사전 예고도 없이, 어렵다고 말씀드린 날에 무작정 다녀간 것을 알고 바로 연락을 주신 것"이라고 말했다.
해당 메모에서 서 국장은 "최근에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걱정되는 마음에 자택을 찾아오게 되었다"라며 "조속히 쾌차하시길 진심으로 기원드리며 허락해 주시면 조만간 다시 찾아뵙도록 하겠다"라고 밝혔다.
임 변호사는 이같은 서 국장의 행동에 대해 "이춘식 어르신은 최근 입원한 사실 자체가 없다. 입원을 했으면 집으로 왜 방문하나"라며 "면담이 어렵다고 회신했는데 부득불 거절한 날짜에 통지 없이 와서 불쑥 문을 두드리나"라고 지적했다.
그는 "강제동원 확정판결 원고 중 제3자 변제안에 찬성하신 분들도 있고 반대하신 분들도 있다. 정부로서는 반대하신 분들을 설득해야 한다. 이걸 목표로 삼을 수는 있다. 일본이 가장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는 사안일 것"이라며 "그래도 우리 예의는 지켜야 하지 않나"라고 반발했다.
외교부는 정부의 제3자 변제안을 거부하고 있는 또 다른 생존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에 대해서도 12일 만남을 요청했다. 이에 피해자를 지원하고 있는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은 양 할머니 가족들에게 외교부 요청을 전달하고 의사를 물었으나 거절하겠다는 답을 들었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서 국장은 이춘식 할아버지에게 한 것과 마찬가지로 사전 약속 없이 양금덕 할머니의 자택을 찾았다. 당시 양 할머니는 병원에 입원 중이라 면회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양 할머니의 현재 상황조차 확인이 안 된 상태에서 무작정 자택으로 간 셈이다.
이후 서 국장은 병원에 찾아가 이번에도 홍삼과 메모를 남기고 돌아갔다. 메모 내용 역시 이 할아버지에게 썼던 것과 거의 유사했다.
그런데 서 국장이 남긴 두 메모의 필체가 다른 것이 피해자들 및 대리인들을 자극하는 또 다른 이유가 됐다. "피해자와 유가족 한 분, 한 분을 직접 뵙고 진정성 있는 자세로 충실히 설명드리고 이해를 구하는 노력"을 하겠다고 공언했던 외교부의 태도와는 다른 행태이기 때문이다.
임 변호사는 "외교부 고위급 관료이니 다른 사람이 국장 명의로 메모를 작성했을 수 있다. 다만 필요에 의해 이틀 전에 면담을 요청하고 거부의사를 전달하니 일방적으로 찾아와 문 두드리고, (문이) 안 열리니 메모 남기고 떠나면서 '친필로 메모 남겼다, 진정성을 가지고 설득하고 있다' 뭐 이런 생색은 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꼬집었다.
외교부가 피해자들의 현재 상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피해자들의 거절에도 이들을 찾아가 필체가 다른 메모를 남기면서까지 다급하게 움직인 데에는 오는 19일부터 일본에서 열릴 G7 회의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외교부가 피해자들의 소송 대리인에게 지난 12일 전달한 문자 메시지에는 "서민정 아태국장과 심규선(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이사장이 할머님을 직접 뵙고 다음주 있을 G7 히로시마 정상회의에 대해 상세히 설명드리고자 한다"라는 내용이 있었다.
이에 대해 임수석 대변인은 "G7 정상회의나 그런 것과 전혀 무관하게 정부의 해법 발표에 대해서 직접 찾아뵙고 먼저 설명드리려 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재호 기자(jh1128@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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