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다른 골목에 몰린 시진핑의 '축구 굴기' [와이파일]

김재형 2023. 5. 16.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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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프로축구 산둥 타이산에서 뛰고 있는 우리나라 국가대표 손준호 선수가 중국 공안에 체포됐다는 소식이 큰 충격을 주고있습니다. 현지 매체들은 손 선수 영입 과정의 비리 의혹과 함께 승부 조작 연루설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손준호 선수 개인이 직접 연루됐을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입니다. 다만 이적 과정에서 손준호 선수가 모르는 구단 또는 다른 차원의 비리가 발생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앞서, 지난 3월엔 같은 팀의 조선족 선수 진징다오가 승부 조작 혐의로 체포됐습니다. 여기에 최근엔 하오웨이 감독이 경기장에 나오지 않아 의혹은 커지고 있습니다. 비리와 승부 조작, 최근 중국 축구판에선 이런 표현을 자주 들을 수 있습니다.

한때 엄청난 자금력과 국가 차원의 지원을 앞세워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던 중국 축구는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을까요?

◆ 세계 축구의 권력 이동?

지금으로부터 10년도 안 된 2016년,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 언론은 중국 축구를 주목했습니다. 막대한 자금력을 앞세운 중국 슈퍼리그가 세계 정상급 선수들을 잇따라 영입했기 때문입니다. 메시와 호날두를 넘어서는 최고 연봉 선수도 중국리그에서 나올 거라는 전망까지 나왔습니다.

당시 프리미어리그 첼시를 지휘했던 안토니오 콘테 감독은 "중국 시장은 첼시뿐 아니라 전 세계에 있는 모든 축구 팀들에게 위협이 되고 있다."며 이른바 차이나 머니를 경계했습니다. 실제로 2016년 유럽 겨울 이적 시장에서 중국 슈퍼리그는 상위권을 독식했습니다. 우리 돈 667억 원을 기록했던 테세이라를 시작으로 주요 선수 4명의 이적료만 2천억 원에 육박했습니다. 당시 20대 중반으로 브라질 대표팀의 핵심이었던 오스카 역시 첼시를 떠나 중국으로 이적했을 정도였습니다.

더구나 은퇴를 앞둔 노장 선수가 아니라 전성기에 있는 20~30대 빅스타들이 중국행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충격이 컸습니다. 당시 해외 언론은 파워 시프트(Power Shift) 즉, '권력 이동이 중국으로 향한다' '이적 시장의 새로운 마이더스'라는 표현으로 중국 축구를 주목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김신욱 등 국가대표 출신 선수들과 최강희, 최용수 등 K리그 우승팀 감독들이 거액을 받고 연이어 중국에 진출했고, 가장 최근엔 이탈리아 세리아A 나폴리의 우승을 이끈 김민재 선수도 중국리그에서 유럽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2015~2016년 중국 슈퍼리그가 지출한 이적료는 4억5100만 달러, 우린 돈 6천억 원 규모였습니다. 당시 기준 세계 축구 시장에서 다섯 번째로 많은 규모였습니다.

중국 슈퍼리그 소속 당시 김민재 선수

◆ 축구로 세계 정상에 선다...자신만만했던 '축구 굴기'

당시 중국의 이런 움직임은 축구 애호가인 시진핑 주석이 2015년 발표한 국가 정책에서 시작됐습니다. 2050년까지 중국을 세계적인 축구 강국으로 만들겠다는 '축구 굴기'가 핵심이었습니다. 야심 찬 계획 중 하나가 국가 대표팀의 세계적인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해외에서 선수와 코치를 대규모로 영입하는 전략이었습니다. 당시 CNN은 "중국이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부상한 것과 같은 야망에서 추진된 중국의 꿈"이라며 " 당시 시진핑의 결심을 의심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전했습니다.

당시 중국 정부는 프로 축구 클럽에 각종 세금 혜택을 주며 막대한 투자를 유도했습니다. 하지만 축구 굴기를 선언한 지 불과 10년이 지나지 않은 2023년, 중국 축구의 꿈은 결국 막다른 골목에 도달한 것으로 보입니다. 거액의 이적료를 기록했던 빅스타들은 떠났고, 아시아의 신흥 강팀으로 부상했던 클럽팀들은 하나둘 사라지고 있습니다.

국가대표팀 역시 단 한 발짝도 전진하지 못했습니다. 축구 굴기를 한창 추진하던 2016년 5월 중국의 남자 축구 피파 랭킹은 81위, 2023년 5월 피파 랭킹 역시 81위입니다. 지난해 카타르월드컵 최종 예선에서는 박항서 감독이 이끈 베트남에 패하며 더는 희망이 없다는 절망적 평가까지 나왔습니다. 중국 축구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순간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을 정도였습니다.

축구 축구가 실패한 가장 직접적인 원인으로는 중국의 축구 혁명을 이끌어온 주요 관리들의 부패가 꼽히고 있습니다. 여기에 부실한 재정과 방만 경영, 3년간 코로나 팬데믹 봉쇄 조치도 중국 축구의 몰락을 이끌었습니다.

2012년 아이랜드 더블린 방문 당시 축구공을 차는 시진핑 주석

◆ "뿌리까지 썪었다...뭘 했는지 아무도 몰라"

중국에선 지난 2월 학교에서 축구 교육을 담당하던 교육부 공무원이 체포됐고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던 리톄가 "심각한 법률 위반"을 이유로 체포됐습니다.

일선 학교에 무엇을 얼만큼 지원했는지 현황 파악조차 안 될 정도도 비리가 만연했다고 합니다. 여기에 지난 2월에는 중국 공산당 반부패위원회가 중국 축구협회 회장도 비슷한 혐의를 받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정부 차원의 반부패 캠페인이 중국 축구계에 몰아치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이와 관련 중국 스포츠계의 수장인 가오즈단 중국올림픽위원회 주석은 "축구 산업에서의 심각한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다"며 전면적인 개편을 시사했습니다.

여기에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던 프로 팀들은 방만 경영으로 파산을 선언했습니다. 2020년 중국 슈퍼리그 우승팀인 장수 쑤닝이 대표적입니다. 쑤닝의 경우 중국에서 가장 큰 가전 유통업체인 쑤닝 그룹을 모기업으로 둔 팀이라 재정 기반이 탄탄할 것으로 여겨졌지만, 알고 보니 내년 예산을 미리 끌어쓰는 선투자식 전력 보강이었습니다. 사실상의 빚투였던 셈인데 감당하기 힘든 빚이 쌓이면서 결국 파산으로 이어지게 됐습니다.

중국 축구의 총체적 부실은 한 블로거의 글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중국 축구는 막대한 현금을 소비하고 부패 스캔들로 중국인들을 완전히 모욕했다."

파산한 중국 슈퍼리그 장쑤 쑤닝

◆ 국가 차원 스포츠 계획의 한계와 교훈

축구의 성공이나 실패가 중국의 국제적 위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불분명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러한 실패는 국가 차원의 스포츠 계획의 한계와 복잡성을 보여주며, 중국이 이 도전을 극복하려면 더 많은 투명성과 개방성이 필요할 것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축구는 단순한 스포츠 이상의 것이며, 사회, 문화, 그리고 정치의 교차점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그 꿈을 실현하려면, 축구 필드뿐만 아니라 기반이 되는 사회, 문화 등의 영역에서도 변화와 발전을 이루어야 하지 않을까요?

2050년 축구 강국이 되겠다는 '축구 굴기'까지 아직 27년이 남았습니다. 중국에게 필요한 건 시간이 아니라 변화를 향한 간절함과 절박함이 아닌가 싶습니다.

중국 슈퍼리그 엠블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YTN 김재형 (jhkim03@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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