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트, 입양인에 1억 원 배상"…'불법 해외입양' 첫 책임 인정

2023. 5. 16.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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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인 신송혁 일부 승소 판결…"국가 책임 인정하지 않은 것은 유감"

[전홍기혜 기자(onscar@pressian.com)]
친부모가 있지만 기아호적(고아호적)을 만들어 40여년 전 미국으로 입양됐다가 추방된 입양인에게 입양기관인 홀트아동복지회가 1억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8부(박준민 부장판사)는 16일 아담 크랩서(한국 이름 신송혁) 씨가 대한민국과 홀트아동복지회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해외입양된 입양인이 한국의 입양 시스템에 문제를 제기하며 정부와 입양기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은 1953년 해외입양이 시작된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재판부는 이날 홀트가 신 씨에게 1억 원을 지급하고 소송비용도 홀트가 부담하라고 했다. 그러나 국가가 배상할 책임은 없다고 판단해 국가에 대한 청구는 기각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아동인권위원회 소속 김수정 변호사는 선고 직후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홀트의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을 인정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면서도 "법원이 홀트의 불법행위를 주도하고 용인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것에는 심각한 유감을 표시한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국가가 먼저 사과하고 배상을 비롯한 조치를 취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않아 소송까지 올 수 밖에 없었다"며 "이번 소송은 국가와 입양기관의 불법 해외입양을 통한 아동 인권 침해와 이들이 어른이 될 때까지 받고 있는 고통을 확인 받고 책임지게 하기 위해 제기한 소송"이라며 항소 가능성을 시사했다.

홀트 측은 이 재판에서 당시 법과 규정에 따라 절차가 진행됐고 의무를 위반하지 않았다고 반박했었다.

크랩서 씨는 1979년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미국으로 입양됐지만, 양부모로부터 정신적.신체적 학대를 당했으며, 1차 입양 가정 부모의 변심으로 파양 당한 후 시설과 위탁가정을 전전해야 했다. 그는 어렵게 2차 가정에 입양됐으나 또 다시 심각한 정신적.신체적 학대를 경험했다. 이로 인해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지 못했으며, 성인이 된 이후 2016년 한국으로 추방됐다. 크랩서 씨를 변호한 민변은 이번 소송을 통해 다음과 같은 지점에서 입양기관과 국가의 책임을 제기했다. 

1. 입양기관은 입양아동의 국적 취득을 사후 확인할 법적 의무를 저버렸다

크랩서 씨는 1979년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미국으로 입양됐지만, 양부모로부터 정신적.신체적 학대를 당했으며, 1차 입양 가정 부모의 변심으로 파양 당한 후 시설과 위탁가정을 전전해야 했다. 그는 어렵게 2차 가정에 입양되었으나 또 다시 심각한 정신적.신체적 학대를 경험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 정부와 입양기관은 입양아동에 대한 사후 관리를 전혀 하지 않았다. 민변은 "피고는 보다 근본적으로는 원고가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였는지 확인하고 취득하지 못하였다면 국적취득을 위해 조치할 법적 의무도 전혀 이행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입양기관이 입양특례법 등을 통해 강제하고 있는 법적 의무를 저버렸다는 지적이다.

크랩서 씨가 미국 국적을 취득하지 못한 책임이 정부와 입양기관에도 있다는 것. 민변은 "원고는 40여년 만에 살던 곳에서 강제로 가족과 이별 당하고 주거지를 이전당하는 강제추방을 겪어야 했다"며 "원고와 같이 국적을 취득하지 못한 채 국적 불명상태로 불안정하게 방치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해외입양인은 현재 약 2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원고와 같이 한국으로 추방되는 해외입양인 사례 또한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며 지난 2017년 또다른 추방 입양인인 필립 클레이 씨가 자살한 '비극'도 발생했다고 '추방'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강조했다.

2. 입양기관은 '친모'의 존재 알면서도 '고아 호적' 만들어 입양 보냈다

민변이 두 번째로 문제 삼고 있는 지점은 입양 당시 상황이다. 민변은 "A기관은 원고의 해외입양을 추진할 당시 원고에게 친부모가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기관은 원고에 대하여 허위로 '기아'로 호적을 만들어 미국으로 입양 보냈다"고 밝혔다.

민변은 "이는 입양절차를 간소화하고 고아를 선호하는 입양부모들의 선호도에 맞추어 보다 쉽게 미국으로 입양보내기 위해 만연했던 관행으로, 당시 형법 및 입양 관련법을 위반하는 행위"라고 강조했다.

3. 대한민국의 입양 관련법 자체가 위헌·위법한 제도

문제는 이처럼 위법하다고 볼 수 있는 행위가 국가의 '승인' 아래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민변은 "국가는 위와 같은 A기관의 위법행위에 대해 어떠한 관리·감독도 하지 않았다"며 "오히려 대한민국은 A기관이 양부모를 대신하여 입양절차를 전적으로 대행할 수 있도록 하는 이른바 '대리입양제도'를 법적으로 설계․허용했다"고 문제제기 했다.

민변은 "이에 따라 당시 미국에서 한국 아동을 입양하고자 하는 미국인 부부는 한국에 방문할 필요도 없이, 아동을 한 번도 만나지도 않은 채 한국의 입양알선기간의 대행을 통해 국내 모든 입양절차를 진행할 수 있게 했다"며 "대리입양제도는 헌법상 기본권인 인권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을 침해하고, 입양 및 아동 복지 관련 법에서 목표로 삼는 아동의 안전과 복리를 저해하고, 우리 헌법 및 국제인권조약에서 강조하고 있는 아동이익 최우선의 원칙에 반하는 것으로 위헌․위법한 제도"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대한민국은 A기관의 위법한 입양에 조력함으로써 A기관과 함께 원고를 비롯한 해외입양아동들을 아동학대 등 위험에 방치했다"고 말했다.

4. 과도한 입양수수료, 무리한 입양 추진의 원인

민변은 한국의 "위헌.위법한 입양 제도"를 기반으로 해외입양이 국가와 입양기관의 필요에 의해 지나치게 확대됐다고 인식했다. 민변은 "1958년부터 2012년까지 미국으로 입양된 입양인 수는 11만1148명으로 추정된다"며 "위법한 수단까지 동원하여 무리하게 해외입양이 추진된 원인 중 하나로 한 아이 당 상당한 수준의 입양수수료(2009년까지 1인당 국민소득을 상회하는 수준)가 입양알선기관에게 지급되었던 점이 지적되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한국의 해외입양제도가 산업화되었다는 비판이 국내외 학계와 언론에 의해 제기됐다"고 지적했다.

▲입양인 아담 크랩서(신송혁) 씨. ⓒ프레시안 자료사진

[전홍기혜 기자(onscar@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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