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or 예스 키즈존’의 기괴한 흐름[플랫]
제주도의회에서 ‘노키즈존 지정 금지’ 조례안 제정을 추진했다. 이 조례안이 제정되기를, ‘노키즈존’이라는 신조어 자체가 사라지길 바라고 있다. 명시적 배제나 혐오는 애초에 만들어져서도, 논쟁의 주제가 되어서도 안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제주도를 중심으로 노키즈존을 내거는 업장들이 늘어났다. 이에 반발해 전국의 노키즈존 업장을 가려내는 리스트가 만들어졌으며, 반작용으로 ‘예스키즈존’도 생겼는데 이 모든 흐름이 기괴하다. 어린이를 두고 ‘NO냐, YES냐’를 나누는 것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더 큰 분열을 낳을 뿐이다. 지리멸렬한 ‘업주의 권리 대 아동차별’이라는 논쟁 구도에 마침표를 찍고 새로운 자리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려면 우선 ‘노키즈존’부터 없애야 한다.
이 단어를 보는 것이 괴로운 것은 ‘어린이’가 문제의 원인제공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아무 잘못이 없다. 문제의 발단은 일부 어른들이다. 이 사안은 애초에 업주의 권리 대 아동차별이라는 담론까지 갈 것도 없었다. 더더군다나 ‘애 있는 사람 대 애 없는 사람’과 같은 대척구도가 될 것도 아니었다. ‘노키즈존’이라는 흉측한 단어는 공공예절을 지키지 않는 일부 보호자들 때문에 생겼다. 소란을 피우는 아이를 방치하거나 아이와 관련한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으면 악의적인 리뷰를 올리거나. “애를 키워본 적이 없으니까….” “그 정도는 좀 봐줘도 되잖아요.” “애가 그럴 수도 있죠.”
육아를 해본 입장에서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그건 보호자가 할 말이 아니다. 편안한 시간을 보내러 갔다가 ‘견뎌야 하는’ 상황을 맞닥뜨린 다른 손님들은 힘들다. 손님들의 항의를 받고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업주도 힘겹다. “우리 모두는 한때 어린이였지 않았냐”는 감성적인 호소는 공허해 보인다. 저출생 시대라 아이들이 더 소중히 우대받아야 한다? 천만에. 다시 말하지만 이건 아이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자칭 어른이라는 사람들의 눈치, 염치, 태도의 문제다. 공공장소에서는 타인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되는 것, 혹은 주변에 불편을 끼치지 않도록 노력하는 시늉이라도 내야 하는 것이 사회적 합의다. 아이가 있든 없든 말이다. 가게나 다른 손님이 내 아이에게 관대하다면 그것은 감사해야 할 일이지 당연한 것은 아니다.
소음을 내는 것은 아이만이 아니다. 다른 지역으로 기차 타고 출장을 갈 때면 돈을 더 내고서도 특실을 이용한다. 어쩐지 특실이면 다들 더 조용히 해줄 거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한데 간혹 특실이기 때문에 제 자리에서 전화 통화를 편히 할 권리가 있다고 착각하는 승객을 본다. KTX의 지침은 ‘통화가 필요할 경우 객실 밖 통로에 나가라’이다. 예전에는 승무원에게 부탁했는데, 그 승객이 승무원에게 짜증내는 것을 본 후로는 그냥 내가 가서 ‘긴 통화는 나가서 해 달라’고 한다. 한 번은 복도 건너편에서 보호자가 아이 앞 테이블에 거치대를 세우고 동영상을 틀어 주기 시작했다. 승객들도 적당히 빠지고 그도 잠시 쉬고 싶었으리라. 마음이 괴로웠지만 이때도 소리 줄여 달라고 부탁했다. 너무 야박한가? 하지만 그런 나도 카페 옆자리 손님들이 시끄럽다고 목소리 낮춰 달라고 하진 않는다. 웃을 때마다 손뼉을 자지러지게 치는 동작이 괴롭지만 제발 좀 그러지 말라고 하진 않는다. 그저 내가 자리를 옮기거나 나가면 될 일이다. 장소마다 합의된 상식에 따르는 것이다.
📌[플랫]‘노키즈존’ 점주에게 아동을 차별할 자유는 없다
📌[플랫]어린이에게 실패할 ‘경험’을 주자…아이는 그렇게 자란다
다른 생각을 가진 이질적인 우리들이 우발적으로 마주치게 되는 공공장소에선 그 장소에 걸맞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고, 그것은 지켜지고 존중받아야 한다. 어린이라는 특정 ‘존재’가 문제가 되기보다 해당 장소에서 여러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특정 ‘행동’이 규제 받아야 한다. 그러나 궁극은 명시적인 배제나 규제 없이도 세련된 어른들끼리 서로 알아서 잘 처신하는 것일 텐데 비록 지금은 요원해 보여도 희망은 가져야 한다. 그렇게 섞이는 어른들을 보며 아이들은 배운다.
▼ 임경선 소설가
플랫팀 기자 areumlee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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