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 과학용어] 챗GPT가 핵융합 상업 발전 시계 바늘까지 돌렸다

이종현 기자 2023. 5. 16.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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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에너지로 불리는 핵융합...상업 발전 가능할까
샘 알트만이 투자한 美 헬리온 “2028년 상업 발전 목표”
생성형 AI로 막대한 전력 소비… 비용 절감 위한 승부수

태양이 빛과 열을 내는 원리를 모방한 핵융합 발전은 ‘꿈의 에너지’로 불린다. 지구에 무한에 가깝게 존재하는 중수소와 삼중수소를 이용하기 때문에 사실상 무제한으로 전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핵분열을 이용하는 원자력 발전과 달리 아무런 방사성 폐기물도 발생하지 않는다. 핵융합 발전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욕조 한 개 분량의 바닷물만 있으면 가정집이 80년 동안 쓸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상용화만 되면 전력 산업을 떠나 지구 전체를 일변할 수 있는 기술이지만, 말 그대로 아직은 ‘꿈’의 에너지에 불과하다. 태양은 높은 중력 덕분에 1000만도에서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지만, 지구는 중력이 낮기 때문에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려면 온도를 1억도까지 높여야 한다.

헬리온 에너지가 핵융합 발전을 위해 만든 견본장치의 모습. /헬리온 에너지

이렇게 높은 온도의 플라즈마를 자기장에 가두는 방식으로 핵융합 발전을 하는 건 토카막이라고 하는데, 한국형초전도핵융합연구장치(KSTAR)나 세계 35개국이 공동으로 개발하고 있는 국제핵융합실험로(ITER)가 토카막 방식을 채택했다. 아직은 1억도의 온도를 충분히 오래 견딜 수 있도록 실험을 하는 수준이다. 국가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략 2050년 정도를 핵융합 상업 발전 시점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며칠 전 핵융합 발전과 관련된 깜짝 뉴스가 나왔다. 2050년이 아닌 2028년부터 핵융합 상업 발전을 한다는 뉴스였다. 1, 2년도 아니고 무려 22년을 앞당기는 것이다.

뉴스의 주인공은 마이크로소프트(MS)와 미국의 핵융합 발전 스타트업인 헬리온 에너지다. 지난 10일(현지시각) 여러 외신과 헬리온 에너지에 따르면, 마이크로소프트는 헬리온 에너지와 2028년부터 핵융합 발전을 통해 매년 최소 50㎿(메가와트)의 전기를 공급받는 계약을 체결했다. 핵융합 발전을 통한 전력 공급 계약이 정식으로 체결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헬리온 에너지의 최고경영자(CEO)인 데이비드 커틀리는 “핵융합 상용화를 위한 과학적인 연구가 상당 부분 진전이 됐다”고 말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브래드 스미스 부회장 역시 “기술 발전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면 계약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헬리온 에너지에 신뢰를 표시했다.

헬리온 에너지는 다른 국가들이 사용하는 토카막이 아닌 ‘FRC(Field Reversed Configuration)’라는 방식을 선택했다. 아령처럼 생긴 FRC는 장치의 양쪽 끝에서 시속 160만㎞의 빠른 속도로 플라즈마를 쏘고, 장치의 가운데에서 두 개의 플라즈마가 서로 부딪히면서 고온·고압의 플라즈마를 유지하게 하는 식이다. 헬리온 에너지는 이 장치를 통해 내년까지 실제 전기를 만든다는 계획을 세웠다.

헬리온 에너지가 만드는 핵융합 발전 장치의 구조. /헬리온 에너지

하지만 전문가들은 헬리온 에너지의 계획에 대해 의구심을 표시한다. 헬리온 에너지가 구체적인 연구 자료나 기술에 대해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 35개국이 공동으로 개발하고 있는 ITER도 빨라야 2035년은 돼야 상용화 수준의 기술을 구사할 수 있다고 전망하는데, 2028년은 시계를 당겨도 너무 앞당겼다는 것이다.

남용운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헬리온 에너지가 선택한 방식 자체는 새로울 게 없이 이미 실험실 단계에서 논의된 것 중 하나”라며 “KSTAR와 ITER는 그 방식보다 토카막이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는데 갑자기 2028년에 상업 발전을 한다고 하니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남 책임연구원은 “핵융합 발전은 고온의 플라즈마를 가두는 게 핵심인데 이를 위해선 장치가 클수록 유리하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KSTAR는 지름만 10m에 높이는 6m에 달한다. ITER의 토카막 역시 지름과 높이가 각각 28m, 24m다. 이에 비하면 공개된 헬리온 에너지의 장비는 크기가 훨씬 작다.

아직 헬리온 에너지에 의구심을 가진 시선이 많은데 마이크로소프트는 왜 갑자기 이런 계약을 체결한 걸까. 헬리온 에너지와 마이크로소프트를 이어주는 연결 다리가 등장한다. 바로 인공지능(AI) 기업 오픈AI의 샘 알트만 CEO다. 샘 알트만은 AI 혁신을 일으킨 ‘챗GPT’를 만든 인물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오픈AI 초기부터 많은 돈을 투자했고, 챗GPT가 공개된 이후에는 100억달러(약 13조3880억원)를 추가로 투자하며 AI 붐을 일으켰다.

문제는 챗GPT 같은 생성형 AI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전력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생성형 AI는 학습 과정과 사용자의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고도로 복잡한 연산을 수행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엄청난 전력이 사용된다. 샘 알트만도 “챗GPT가 답변 하나를 만들어 내는데 전기료로만 수 달러가 든다”고 말한 바 있다. 챗GPT에 투자할수록, AI 생태계가 넓어질수록 전력 문제는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샘 알트만 오픈AI CEO. /연합뉴스

마이크로소프트는 2030년까지 전력 소비 전체를 무탄소 청정에너지로 바꾼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 계획이 달성되려면 챗GPT의 막대한 전력 사용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그 해결책으로 핵융합을 선택한 것이다.

챗GPT의 아버지인 샘 알트만은 헬리온 에너지의 핵심 투자자이기도 하다. 알트만은 헬리온 에너지에 3억7500만달러(약 4900억원)를 투자했는데, 단순히 투자에 그치지 않고 매주 헬리온 에너지를 직접 방문해 핵융합 개발 과정을 점검하고 있다. 알트만은 CNBC와의 인터뷰에서 “이 기술이 성공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지만 과학적으로 발전이 가능하다는 데에는 매우 큰 자신감을 갖고 있다”며 “AI에 대해서도 6개월 전까지만 해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걸 기억하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실험실에서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이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전력을 판매하기 위해 여기에 있다”며 “풍부하고 저렴하고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를 만드는 것이 오랫동안 이 프로젝트에 열정을 쏟고 있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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