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 다시 국회로…간호사들 ‘준법투쟁’ 등 단체행동 준비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간호법 제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했다. 간호법은 다시 국회로 넘어가 재표결에 부쳐진다. 재표결 시엔 야당 주도로 의결이 어려워 부결 후 폐기될 가능성이 크다. 간호사단체는 PA(진료지원인력) 간호사들의 준법투쟁 등 단체행동 방식과 수위를 고심하고 있다. 간호법에 반발하며 총파업을 예고했던 의사·간호조무사 단체는 파업을 재의결 시까지 유보한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1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간호법 제정안 재의요구안을 심의·의결했다. 이어 회의 직후인 낮 12시10분쯤 재의요구안을 재가했다.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이번 간호법안은 유관 직역 간의 과도한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간호 업무의 탈 의료기관화는 국민들의 건강에 대한 불안감도 초래하고 있다”며 “이러한 사회적 갈등과 불안감이 직역 간 충분한 협의와 국회의 충분한 숙의 과정에서 해소되지 못한 점이 많이 아쉽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간호법은 국회 본회의에 재상정된다. 본회의 재표결에선 재적의원 과반 출석과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의결되기 때문에 야당의 힘만으로 통과시킬 수 없다. 부결되면 법안은 자동 폐기된다. 앞서 윤 대통령이 최초로 거부권을 행사한 양곡관리법은 국회 본회의에서 최종 부결됐다. 간호법도 재표결 시엔 부결·폐기될 가능성이 크다. 재표결은 빠르면 오는 25일 본회의에서 이뤄질 전망이다.
정부는 간호인력지원 종합대책을 통해 간호사 처우 개선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간호법안 제정과 무관하게 지난 4월25일 발표한 간호인력지원 종합대책을 착실히 이행해 간호사의 근무환경을 국가가 책임지고 개선하겠다”며 “(의료법 개정이나 중재안 등) 입법 방향과 관련해선 당과 협의해 그 방향을 정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간호협회 “내년 총선기획단 통해 불의한 정치인 단죄”···이날 오후 단체행동 논의
대한간호협회(간협)를 필두로 한 간호법 제정 추진 범국민운동본부는 이날 국무회의 이후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이 후안무치한 탐관오리들이 건의한 간호법 거부권을 수용했다”며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규탄했다.
김영경 간협회장은 “대통령이 간호법을 제정하겠다는 약속은 증거와 기록이 차고 넘치는데도 대통령은 언제 그랬냐는듯이 간호법 제정 약속과 공약을 파기했다”며 “공정하고 상식적이지 못한 불의한 정치인과 관료들을 2023년 총선기획단 활동을 통해 단죄하고 파면하는 투쟁을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거부권이 행사된 간호법은 즉각 국회에서 재의할 것을 정중히 요구한다”고 했다.
김 회장은 “허위사실로 가득한 국민의힘 지도부의 파렴치한 독설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간호사들의 심장에 박혔다”며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재난적 의료위기 상황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볼모로 한 의사단체들의 집단 진료 거부라는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간호사들은 끝까지 환자를 위해 의료현장을 지켰다. 그럼에도 간호법이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한 법인가”라고 말했다.
간협은 이날 밤늦게까지 대표자 회의를 열고 거부권 행사를 규탄하는 단체행동의 수위와 방식을 논의했다. 앞서 간협은 지난 일주일간 회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참여 인원 중 98.6%인 10만3743명이 간호법 거부권이 행사될 경우 “적극적인 단체행동이 필요하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간협은 17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대한간호협회 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향후 대응 방향을 발표한다.
간협은 “의사 집단처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한 집단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라며 파업 가능성에는 선을 그었다. 대신 면허증 반납 운동과 간호사 1인 1정당에 가입하는 ‘클린정치 캠페인’ 참여 등이 거론되고 있다. PA(진료지원인력) 간호사들의 ‘준법투쟁’ 가능성도 있다. 1만여명 규모로 추산되는 PA 간호사는 대학병원에서 전공의 등과 함께 수술·시술 보조를 하는데 이는 의료법상 불법이다. 이에 의료현장에서의 근무는 이어가면서 의료법상 정해진 간호사 업무 범위를 철저하게 지키는 준법투쟁을 하겠다는 것이다.
의료연대 “거부권 환영···재의결 시까지 파업 유보”
간호법에 반발하며 오는 17일 총파업을 예고했던 대한의사협회(의협)와 대한간호조무사협회(간무협) 등 보건복지의료연대(의료연대)는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환영하며 파업을 유보한다고 밝혔다. 의료연대는 이날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 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의 재의요구권 행사에 400만 회원은 환영의 뜻을 밝힌다”며 “17일 계획한 연대 총파업은 국민의 건강권을 지켜야 한다는 깊은 고뇌 끝에 국회 재의결 시까지 유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연대는 간호법 제정안과 함께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던 의료법 개정안에 대해선 거부권이 행사되지 않은 데 대해 아쉬움을 표시했다. 의료법 개정안은 의료인(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간호사, 조산사)이 의료행위 중 발생한 업무상 과실치사상을 제외한 범죄로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면허를 취소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의료연대는 “합리적인 이유 없이 의료인의 평등권과 직업의 자유를 침해하는 ‘의료인 면허박탈법’에 대한 재개정 절차에 국회와 정부가 나서줄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박태근 대한치과의사협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의료인 면허 취소법은 과잉 처벌이자 직업 자유 침해”라며 “(법이 공포되면) 헌법 소원과 개정 촉구 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말했다.
민서영 기자 mins@kyunghyang.com,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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