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까지 갈 ‘간호법’ 후폭풍…‘계산기 정치’가 의료계 갈랐다
여야, 서로 향해 “분열 조장”…중재 노력 뒷전 비판
(시사저널=구민주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예상대로 간호법 제정안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면서 그 후폭풍이 길고 거셀 전망이다. 간호법을 두고 의료계의 두 축인 의사협회와 간호협회 간 갈등이 극명했던 만큼, 지난달 4일 양곡관리법 거부권 행사 때보다 분위기는 훨씬 더 악화할 조짐이다. 이를 두고, 수개월의 시간이 있었음에도 끝내 중재와 협치에 실패한 정치의 책임이 가장 크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16일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간호법은 유관 직역 간의 과도한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간호 업무의 탈 의료기관화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국민들의 건강에 대한 불안감을 초래하고 있다"며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로써 간호법은 지난달 27일 야권 주도로 본회의를 통과한 지 20일 만에 다시 국회로 돌아가게 됐다.
20일 전 본회의장에서 두 손을 들며 법안 통과에 환호했던 간협 관계자들은 이날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소식에 눈물을 터뜨렸다.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간협은 "간호법에 대한 약속은 증거가 차고 넘치는데 대통령은 언제 그랬냐는 듯 공약을 파기했다"며 "간호법을 가로막은 정치인을 단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들은 '총선기획단' 활동을 본격화해 내년 총선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것을 예고하기도 했다.
반면 이들과 희비가 엇갈린 의협은 "꺾이지 않는 의지에 정부와 정치권이 응한 것"이라며 거부권 소식에 반색했다. 이어 "이번 대통령의 결단엔 비정상을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한 집행부의 노력이 있었다"며 자축하기도 했다.
이 같은 의협과 간협 간 깊은 분열이 당장 의료 현장에 직간접적인 악영향을 줄 것이란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간협은 국회에서 간호법 제정을 재추진하겠다며 사상 초유의 단체 행동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내부 조사 결과 간호사의 98.6%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시 '적극적 단체행동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것으로도 나타났다.
"정치권의 분열이 의료계 분열 낳아"
하나의 법안을 두고 의료계가 둘로 갈라져 '원수'가 된 데에는 무엇보다 여야 정치권 책임이 크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앞선 양곡관리법에 이어 이번에도 정치권은 '거대 야당의 입법 강행→여당의 거부권 요청→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라는 공식을 따랐다. 법안 논의를 위해 수개월의 시간이 주어졌지만 사실상 중재안 도출을 위한 여야의 끈질긴 노력은 이뤄지지 않았다.
협치가 실종된 정치권엔 '남 탓'이 피어올랐다. 간호법의 요지인 간호사 처우 개선은 코로나19 국면에서 여야가 공통으로 추진하던 정책이었다. 따라서 중재와 협상의 여지가 충분한 사안이란 시각이 우세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은 "논의가 충분히 이뤄졌다"며 입법을 추진했고 국민의힘은 "거대 야당의 입법 독주"라는 주장만 반복하며 맞섰다. 그 과정에서 양당은 서로를 향해 "중재에 협조하지 않았다"며 동일한 비판을 던졌다. 국민의힘은 뒤늦게 간호계 여론을 달랠 중재안을 내놓았지만 그 역시 이들의 핵심 요구 사항은 빠져 있었다.
이러한 정치의 실패 뒤엔 양당 모두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우선 여당의 뒤엔 '100만 표심'이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간호법에 반대하는 의사, 간호조무사, 임상병리사 등 협회 회원수가 100만 명에 육박하기 때문이다. 전국 간호사들이 50만 명으로 추산되는 만큼, 이들의 숫자는 2배에 달한다. 반면 간호협회의 경우 수에선 밀리지만 '결집력'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점이 야당에게는 일정 부분 간호법을 밀어붙일 동력이 되었다는 것이다.
여야의 협치 없는 일방통행에는 서로를 향한 '독단 프레임' 씌우기도 한몫했을 거란 분석도 나온다. 한 마디로 여당은 '거대 야당의 입법 독주'를, 야당은 '거부권을 행사하는 윤 대통령의 입법권 무시 행태'를 내세우려 했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달 간호법 본회의 통과 당시 국민의힘 의원들은 기다렸다는 듯 국회에서 '거대야당 입법폭거 규탄대회'를 여는 등 연일 민주당의 입법 강행을 비판했다. 민주당 역시 본회의 통과 후 윤 대통령의 거부권을 반복 언급하며 "국민과 맞서려 한다"고 맹폭했다.
이 같은 모습에 대해 양당에 속하지 않은 한 정치권 관계자는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계산기 정치'라고 표현했다. 이 관계자는 "사실 여야가 서로를 향해 적대적인, 공격 일색의 태도만 어느 정도 내려놓았다면 간호법은 의료계 분열을 막고 어느 정도는 중재가 가능했을 사안"이라며 "결국 정치권의 분열이 의료계의 분열을 만든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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