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요구조건 갖춘 전세사기 피해자는 5명 중 1명도 안돼”···피해자들의 호소
서울 중구에 사는 전세사기 피해자 신지원씨는 회사생활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마련한 전세자금 1억원에 추가로 1억원을 대출받아 보증금 2억원에 전세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전세사기였다. 보증금은 돌려받지 못했고 내년으로 예정했던 결혼도 기약 없이 미뤄졌다. 신씨는 “위반건축물인데다 보증보험도 가입돼 있지 않아 아무런 피해회복 보장을 받지 못하고 있다. 집이 경매로 넘어가면 후순위 임차인이라 집에서 쫓겨날 것”이라며 “남 못지않게 열심히 살았는데 집주인 과실로 단 한 푼도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에 두려움과 억울함만 남는다”고 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16일 “정부·여당이 제시한 특별법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피해자는 10명 중 2명도 안 된다”며 특별법 전면수정을 정부에 촉구했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와 시민사회대책위(대책위)는 이날 오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피해자를 걸러내는 법이 아닌 ‘선구제 후회수’ 방안의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들은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지난 7일부터 일주일간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설문조사 참여자 429명 중 정부의 4가지 피해자 인정요건을 모두 충족하는 이들의 비율은 17.5%(75명)에 불과했다. 정부는 전세사기 특별법 지원 요건으로 전세사기 의도, 다수의 피해자 발생 우려 등 4가지를 제시했다.
대항력·확정일자·임차권 등기를 동시에 충족하는 피해자 비율은 35.9%(154명)였다. 정부가 제시한 특별법안에 따르면 확정일자, 임차권 등기부등본 등을 갖춰야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 참여자 중 80%(343명)는 정부의 보증금채권 매입을 통한 보증금 회수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대책위는 “정부안이 제시한 보증금 규모(수도권 3억원 이하)에 해당하지 않는 피해자도 75명에 달한다. 일부 피해자들은 보증금 미반환, 임대인에 대한 수사 개시 및 기망 여부 등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며 “이들은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태로 불안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했다.
전세사기 피해자 A씨는 “전세사기를 친 임대인은 가게를 운영하고, 본인 명의의 집에서 한때 내가 꿈꿔왔던 삶을 살고 있다”며 “이 사실을 알고 공황장애·과호흡으로 정상적 생활이 불가능한 상태에 내몰렸다. 내가 죽어야만 이런 고통이 끝날 것 같다”고 했다.
대책위 관계자들은 기자회견을 마치고 국회 본청으로 진입을 시도했으나 제지당했다. 이들은 이날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의 전세사기 특별법 심사결과를 기다리며 본청 정문 앞에서 농성을 벌였다.
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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