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 경영권 분쟁 기업서 의결권 실수한 이스트스프링...회사 측은 묵묵부답
의결권 행사 실수 바로 잡기 위한 행보…자체 의결권 행사 내역 전수조사도
응답없는 KISCO홀딩스에 시장선 의심의 눈초리
행사하지 않았어야 할 의결권을 행사한 자산운용사 이스트스프링이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KISCO홀딩스에 주주총회 결과를 정정 공시하라고 압박하고 있지만, 회사가 꿈쩍 않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스트스프링의 실수로 행사하지 말았어야 할 의결권이 잘못 행사돼 감사위원의 당락이 바뀐 만큼 외부에서는 KISCO홀딩스가 적절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실수한 자산운용사마저 자기 잘못을 인정했는데도 KISCO홀딩스가 ‘적법한 의결권 행사였다’라는 뜻을 굽히지 않자 시장에서는 회사의 태도가 의아하다는 반응이다. 회사 측이 원하는 감사위원이 선임된 만큼 대충 넘어가려는 의도 아니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1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이스트스프링자산운용(이스트스프링)은 KISCO홀딩스에 이날까지 주주총회 결과와 관련해 정정 공시를 내지 않으면 주총 결의 취소의 소를 걸겠다는 내용 증명을 발송했다. KISCO홀딩스 주주연대가 회사에 감사위원 변경 공시를 요구한 데 이은 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3월 24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 열린 KISCO홀딩스 정기주총에서 김월기 후보(우송세무회계 대표)는 심혜섭 후보(심혜섭 법률사무소 대표)를 2만3696표 차이로 누르고 감사위원에 선임됐다. 하지만 이 과정에 절차상 문제가 있었다. 3일 뒤 KISCO홀딩스의 주주인 밸류파트너스자산운용은 집계 오류가 발견됐다며 이스트스프링이 국민연금으로부터 위임받지 않고 의결권을 행사했다고 문제 제기했다.
밸류파트너스에 따르면 이스트스프링이 자체 보유한 주식은 833주, 국민연금으로부터 투자 일임받은 주식은 2만4507주다. 그리고 이스트스프링이 위임장을 통해 최종적으로 행사한 주식은 이 둘을 합한 2만5340주다. 즉 이스트스프링이 국민연금으로부터 투자 일임만 받아 의결권이 없는 주식에 대해서도 의결권을 행사한 것이다. 이스트스프링이 정상적으로 업무를 처리했다면 심 후보가 김 후보를 811표 차로 누르고 감사위원으로 선임되는 것이었다. 즉 이스트스프링의 착오로 후보의 당락이 뒤바뀐 셈이다.
◇ 잘못한 이스트스프링, 실수 인정했는데 조치 없는 KISCO홀딩스
이후 이스트스프링은 실수를 인정하고 부주의한 업무 처리가 있었다며 사과했다. 이스트스프링은 입장문을 통해 “명백히 당사 업무 처리상 의도치 않은 실수”라며 “해당 기관 고객(국민연금)은 의결권 대리 행사에 관해 당사에 위임을 한 바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당사 또한 주주총회에 해당 기관 고객의 의결권 위임장을 제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자산운용업계에서는 이에 대해 ‘있을 수 있는 실수’라는 평이 우세하다. 3월 말 국내 상장사 주총이 집중돼 인턴 등 보조 인력을 일시적으로 고용해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표를 집계하는 KISCO홀딩스가 이스트스프링의 과실을 거르지 못했다는 건 의외라는 평이다. 회사는 표를 세는 과정에서 주주와 주주 명부를 대조하면서 집계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도 상황을 파악한 후 황당하다는 반응을 밝혔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어이없는 실수라 당황스럽다”며 “내부적으로 여러 가지 (대응)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은 이스트스프링의 의결권 행사 과정의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이 과정에서 법률 위반이 있었는지 살피고 있다.
이스트스프링은 주총 이후 본사인 영국 푸르덴셜 그룹과 국민연금에 해당 내용을 소명했다. 또 KISCO홀딩스 주주연대 관계자와 만나 상황을 설명하고 사과의 뜻을 전했다. 이후 약 300건의 의결권 행사 내용을 전수 조사하고 의결 위임을 받지 못한 주식에 대해서는 시스템상으로 거를 수 있는 구조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KISCO홀딩스는 이 사태에도 주총에서 집계 오류는 없었다는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현재 이슈되는 건 이스트스프링에서 행사한 위임장의 효력에 관한 사항인데, 우리 회사는 그게 유효하다는 입장”이라며 “법인인감이 날인된 정식 위임장을 받아 주총을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실수한 이스트스프링은 물론 국민연금, KISCO홀딩스 주주연대가 3월 주총에서 오류가 있었다고 인정했지만 KISCO홀딩스는 모르쇠로 일관하는 상황이다. 사건 관계자는 “회사가 정정 공시를 내면 해결되는 간단한 일”이라며 “(왜 그러지 않고) 소송까지 가려고 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이스트스프링은 바로 입장문을 내고 사과했다”며 “제삼자가 보기에는 ‘(KISCO홀딩스는) 왜 저러나’ 싶을 정도”라고 했다.
◇ 전방위 압박 나서는 KISCO홀딩스 주주연대…의결권 행사 강화 필요성도 제기
KISCO홀딩스 주주연대는 김월기 사외이사가 주총에서 적법하게 선출되지 않았다고 보고 직무집행의 정지를 요구하는 가처분 소송을 검토 중이다. 주주연대는 이스트스프링의 수습 과정으로 지켜보고 향후 대응 방안을 수립한다는 방침이다. 이스트스프링 대응의 진정성을 받아들일 경우 이들과 따로, 또는 같이 갈 수 있는 것이다.
주주연대는 KISCO홀딩스에 대한 주총 결의 취소의 소를 우선적으로 진행하는 데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 소는 주총일로부터 2개월 이내에 제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른 시한은 이달 24일이다. 이후 이사 지위 확인의 소까지 고민 중이다.
다만 이스트스프링에 대해서는 본사 고발하지 않을 방침이다. 당초 주주연대는 영국 푸르덴셜 그룹에 이스트스프링을 고발하려 했지만, 현재는 해당 계획을 접었다. 국민연금에 대한 관리 감독 부실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 역시 사건 초기 검토됐다. 주주연대는 소 제기 기한이 있는 법적 문제부터 처리한 뒤에 다른 대응 방안도 차차 실행할 계획이다.
자산운용사의 의결권 행사 실수를 막기 위해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지만, 실무적으로 쉽지 않다. 금융투자협회가 모든 자산운용사의 펀드에 대해 의결권이 부여된 주식인지 아닌지 파악하기 어려운 이유에서다. 현재 조성된 펀드는 약 1만5000개로, 펀드 하나당 담기는 개별 종목이 100개 수준이다. 또 의결권 행사는 서면과 유선, 전자투표 등의 방법으로 나뉘는데 서면과 유선의 경우 온라인화가 돼 있지 않아 시스템적으로 거르기 힘들다. 전자투표 역시 상장사 시스템과의 연동 이슈가 있어 현실적으로 어렵다.
다만 의결권 행사 과정을 강화해 제2의 이스트스프링을 막을 수 있다는 의견은 나오고 있다. 의결권 행사 프로세스에 컴플라이언스 부서의 확인을 추가하는 안이다. 금투협 관계자는 “실무자가 처리하는 것보다 컴플라이언스 부서를 두고 실무자-컴플라이언스 두 단계를 거치게 하면 (실수가 보다) 필터링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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