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 0%’ 전환사채도 무리없이 소화되는 요즘 증시...한쪽은 발행 못해 발동동
메자닌 운용사 늘어 CB 수요 커진 탓
깐깐한 회계 감사에 일부 바이오기업은 유증으로 돌아서
이자율이 ‘0%’인 전환사채(CB) 발행이 늘고 있다. 이자 수익 없이 주식 전환 매각 차익만 노리겠다는 셈인데 해당 종목에 대한 확신이 반영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회사가 망하지만 않으면 원금은 보장받을 수 있기에 원금보장형 주식 상품으로 볼 수 있다. 업계에서는 메자닌(주식과 채권 중간 성격을 띠는 상품) 전문 자산운용사가 늘어나고 수요 또한 늘어 어느 정도 검증된 기업은 이자 지급 없이 CB를 발행할 수 있는 분위기라고 설명한다.
CB(Convertible Bond)는 주식으로 전환 가능한 채권을 말한다. 채권 형태로 일정 기간마다 투자자에게 이자를 지급하고, 만기 시에도 약속된 이자가 지급된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투자자는 미리 약속한 가격에 CB를 주식으로 바꿔 매각 차익을 노릴 수 있다. 주가가 전환 가격보다 낮을 때는 발행 당시 조건에 따라 전환 가격을 낮추거나, 아니면 만기 때까지 보유하고 이자를 받을 수 있다.
16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이달에만 벌써 3개 상장사(글로벌텍스프리·상아프론테크·이앤코퍼레이션)가 표면금리(쿠폰 프리미엄) 0%, 만기이자율(YTM) 0% 전환사채 발행을 결정했다. 아직 5월이 절반밖에 지나지 않은 만큼 이자율 0% 발행사는 더 늘어날 수 있다. 코스닥 대장주 에코프로 또한 0% 조건에 CB 발행을 추진 중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이자율 0% CB를 발행한 회사는 2곳에 그쳤다. 올해만 봐도 1월에는 이자율 없는 CB가 발행되지 않았고, 2월(2곳)과 3월(2곳)은 물론 지난달에도 1곳에 그쳤다.
이달 글로벌텍스프리는 50억원 규모 자금을 CB로 조달하는데 이자율은 0%를 내걸었다. 주식회사 위지트와 파워넷이 각각 25억원씩 물량을 소화했다. 전환가액은 3969원으로 전환청구 기간인 1년 1개월 뒤 주가가 이보다 올라야 차익 실현이 가능하다. 이날 기준 글로벌텍스프리 종가는 4050원이다.
투자자들이 이자 없는 CB를 사들인 이유는 주가 상승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최근 국내 증시는 경기침체 우려와 미국 부채한도 상향 협상이 난항을 보이는 등의 영향으로 박스권을 이어가고 있다. 기업 가치 대비 주가가 저렴한 상황이라고 판단한 이들이 늘어났을 가능성이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투자자는 주가가 오를 것이란 믿음이 없지 않은 이상 이자 없는 CB에 투자하기 어렵다”며 “리픽싱(전환가액 조정) 조항으로 위험이 줄어든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계약에 따라 다르지만, CB의 경우 대개 전환가액 조정 조항이 삽입된다. 주가가 과도하게 하락하면 향후 주식으로 바꿔줄 단가를 하향 조정해 준다. 예컨대 글로벌텍스프리 주가가 전환가액인 주당 3969원보다 과도하게 하락하면, 전환가액은 이보다 더 낮게 조정된다. 일종의 투자자 보호 장치다.
메자닌 전문 자산운용사가 꾸준히 증가한 점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메자닌 운용사가 많아지면서 0% CB도 시장에서 소화가 가능해졌다”며 “CB를 발행하는 회사 입장에서 이자를 주지 않아도 물량이 소화되는데 굳이 이자를 지급하지 않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코스닥벤처펀드를 운용하는 운용사들은 절반을 코스닥기업에 투자해야 하는데, 이들 입장에서는 원금만 보장되면 땡큐”라며 “나머지 절반으로 공모주에 투자하는 식으로 초과 수익을 달성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물론 이 시장 또한 양극화되고 있다. 지난달 감사 시즌 때 바이오 기업을 대상으로 감사의견 거절이 속출하면서 대다수 바이오기업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CB 발행을 추진하다가 기관의 매정한 눈초리에 유상증자로 돌아서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최근 바이오기업 L사는 12일 공시를 통해 366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2거래일간 37.89% 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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