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해 어렵다” 거절에도…강제동원 피해자 불쑥 방문한 외교부

[대일본 굴욕외교]

서민정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장이 14일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씨의 자택에 남긴 쪽지.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제공

외교부 고위관료가 동의도 얻지 않은 채 강제동원 피해자 자택을 방문해 피해자 가족들이 무례하다고 반발하고 있다.

16일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시민모임)은 서민정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장이 14일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94)씨에게 남긴 쪽지를 공개했다. 쪽지에는 ‘최근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걱정되는 마음에 자택을 찾았다. 조속히 쾌차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드리며, 허락해 주신다면 조만간 다시 찾아뵙고 궁금하신 점들을 설명 올리도록 하겠다”고 적혀 있었다.

시민모임은 외교부 관계자가 12일 양씨의 소송대리인에게 “이번 주 일요일(5월14일) 양금덕 할머님 면담을 요청드려도 될까요? 서 국장과 심규선 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이사장이 할머님 직접 뵙고, 이번주 한일 정상회담 내용과 다음주 있을 지세븐(G7) 히로시마 정상회의에 대해 상세히 설명드리고자 한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고 밝혔다.

이에 대리인은 “지금 할머니가 입원 중이어서 만나기 어려운 상황이다. 상의는 해보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국언 시민모임 이사장은 양 할머니 가족들에게 외교부 면담에 응할 것인지 묻자 가족들은 “정작 필요할 때는 외면하더니 인제 와서 나눌 얘기가 있겠느냐. 판결금 받으라고 사인해 달라는 것밖에 남은 일은 없을 것인데 만날 이유가 없다”며 거절했다.

하지만 14일 서 국장 등 3명은 사전 연락도 없이 광주 서구 양동에 있는 양씨 자택을 찾았다. 서 국장의 전화를 받은 양씨 가족은 “병원 입원 중이라 찾아오더라도 면회가 불가능하다”며 “만날 의사가 없다”고 다시 거절했다.

이에 외교부 관계자들은 “지난번에도 찾아왔으나 안 계셔 못 만났는데 지금은 퇴원하셨을까 해서 왔다. 선물이라도 전해 드리고 싶다”며 병원을 찾았고 1층 접수실에 홍삼 선물세트와 쪽지를 남기고 갔다.

같은 날 저녁 서 국장은 광주 광산구 우산동에 사는 강제동원 피해자 이춘식(99)씨 자택도 사전 허락 없이 찾아 이씨를 만나지 못하고 선물과 쪽지를 남기고 간 것으로 나타났다.

시민모임은 “양 할머니는 지난달 14일부터 한 달 넘게 입원 중”이라며 “고령의 피해자가 중요한 의사 결정을 할 때는 대리인이나 지원단체, 가족이 배석해야 하는 것은 상식적인 일이지만 이런 사정을 무시한 채 대낮에 불쑥 피해자 집을 찾아 문을 두드리는 것은 무슨 행패인가”라고 비판했다.

시민모임은 “아태국장이 무작정 지방까지 내려와 홍삼 세트나 들고 거리를 헤맬 만큼 외교부가 그렇게 한가한 부서인가”라며 “이번 행위는 소통이 아니라 기본적인 상식과 예의조차 저버린 피해자 괴롭히기다. 외교부는 무례하고 치졸한 짓을 당장 멈추라”고 강조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