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선수→내야 완벽한 퍼즐' 박계범, '그 시절 두산' DNA를 깨웠다
시즌 개막 후 이유찬이 1옵션으로 활용됐지만 문제는 타격이었다. 결국 숨겨왔던 카드를 꺼내들었다. 퓨처스(2군)에서 차근히 준비를 하던 박계범(27)을 불러올린 것. 이후 모든 퍼즐이 맞춰지고 있다.
박계범은 개막 후 한 달이 지난 5월 9일에서야 1군 엔트리에 등록됐다. 이후 6경기에 꾸준히 출전해 타율 0.286에 유격수로서 안정적인 수비를 펼치며 이승엽 감독을 만족시키고 있다.
박계범이 프로 생활을 시작한 건 2014년 삼성 라이온즈였다. 이후 국군체육부대(상무)를 거쳐 2019년부터 1군에서 백업요원으로 활약하다가 2021시즌을 앞두고 자유계약선수(FA) 오재일의 보상 선수로 두산 유니폼을 입었다.
내야 구멍이 컸던 두산에서 118경기를 뛰며 주전급으로 활약했다. 타율도 0.267로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냈다. 가을야구에서도 안정적인 수비로 두산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카드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지난해 타율 0.221로 부침을 겪었고 연봉 또한 33%나 깎인 9700만 원을 받게 됐다. 시즌 개막도 퓨처스에서 맞이했다. 한 달간 퓨처스에서 준비하던 박계범은 5월에서야 이승엽 감독의 부름을 받았다. 이유찬이 유격수 수비에 부담을 느껴 타격까지 하향세를 탄 게 이유였다.
이승엽 감독은 "이유찬이 아무래도 유격수보단 2루수 자리에서 수비 부담을 덜 느끼는 듯싶다"며 "당분간 유격수 박계범, 2루수 이유찬 키스톤 콤비 체제를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 14일 KIA 타이거즈와 홈경기는 박계범이라는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킨 경기였다. 안정적 수비는 물론이고 이날은 공격에서도 가장 빛난 선수 중 하나였다.
결승 희생플라이 포함 4타수 3안타 2타점으로 맹타를 휘둘렀는데 매 타석에서 강렬한 임팩트를 남겼다. 1회초엔 상대 에이스 양현종을 상대로 3루 방면 기습 번트로 1루에 출루했다. 3회엔 깔끔한 좌전안타를 뽑아냈다. 6회엔 흔들리는 KIA 내야진을 붕괴시켰다. 6회 팀이 3-0으로 앞선 1사 1,3루에서 강한 푸시 번트를 시도했다. 이미 수비 실책으로 흔들리던 KIA 수비진이 당황했고 2루수 김선빈의 1루 토스 송구를 황대인이 잡아내지 못했다. 그 사이 3루 주자가 홈을 밟으며 두산은 더 달아났다.
최형우의 스리런포 등으로 4-4 동점 상황에서 다시 타석에 선 박계범은 무사 3루에서 결정적인 중견수 희생플라이로 결승 타점을 올렸다.
두산 왕조 끝자락을 잠시 경험했을 뿐이지만 박계범은 가장 '두산스러운' 야구의 중심에 섰다. 정민철 MBC 야구 해설위원은 "두산이 정말 잘하던 때의 야구가 살아난 것 같다"고 평가했다.
4-0에서 뼈아픈 일격을 맞고도 끈질기게 KIA 투수진과 야수진을 괴롭히며 값진 3연승을 달릴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KIA로부터 3개의 실책과 실책성 플레이를 이끌어내 자멸시켰다.
6회에도 번트로 KIA 내야를 흔들었다. 이날은 그의 과감함과 주루플레이가 가장 돋보인 날이었다. 그는 "캠프 때부터 항상 상대를 압박해야 다른 팀에서 부담감을 느끼고 그 과정에서 실수도 많이 나올 수 있다는 이야기를 코칭스태프에서 자주 강조하셨다"고 말했다. 박계범은 돌격대장으로서 '두산 육상부' 시절의 DNA를 일깨웠다.
오랜 만에 경기의 주인공이 된 것 때문이었을까, 단독 인터뷰의 기회를 잡은 사실이 감격스러워서일까, 인터뷰 내내 박계범의 얼굴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서서히 잊혀지고 있는 이름이었다. 2군에서 어떻게 준비를 했을까. "오히려 좀 마음 편히 더 잘 준비할 수 있었던 것 같다"는 그는 "이정훈 퓨처스 감독님부터 코칭스태프분들이 다 너무 잘 도와주셨다. 스스로도 좀 마음이 편했다"고 말했다.
시즌 초부터 내야진의 부진에도 박계범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일은 거의 없었다. 퓨처스에서도 확실히 자리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퓨처스리그 타율 0.235에 그쳤다.
그렇기 때문일까. 오히려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박계범은 "쫓기기보다는 마음 편히 잘 준비하고 있었다"며 "뭔가를 집중적으로 보완하려 했다기보다는 플레이 하나하나에 다 신경을 많이 썼다. 타격과 주루 수비까지 골고루 완성도를 높이려 했다"고 설명했다.
붙박이 주전으로 뛰어본 경험은 없다. 지금의 평가가 영원하지 않으리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박계범은 "언제 누가 나가도 다 잘할 수 있는 선수들만 있기에 그에 맞춰서 언제 나가도 잘할 수 있게끔만 준비하면 될 것 같다"며 "항상 목표를 세울 때 많은 경기에 나가는 것으로 잡는다. 그 말은 그만큼 잘해주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올 시즌에도 가급적 많은 경기에 나가려고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안호근 기자 oranc317@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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