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대통령, '간호법 거부권' 즉각 재가…40여일만 巨野에 또 제동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거대 야당의 일방 처리로 국회를 통과한 '간호법 제정안'(이하 간호법)에 대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재가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양곡관리법에 이어 2번째다.
윤 대통령은 간호법에 대해 "유관 직역 간의 과도한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며 첨예한 직역 간 갈등과 국민 건강 불안감을 거부권 행사의 이유로 들었다.
윤 대통령은 16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취임 2년차 첫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오늘 국무회의에서는 간호법안을 심의할 계획"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윤 대통령은 "국민 건강은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정치 외교도, 경제 산업 정책도 모두 국민 건강 앞에는 후순위"라며 "국민 건강은 다양한 의료 전문 직역의 협업에 의해서 제대로 지켜질 수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번 간호법안은 이와 같은 유관 직역 간의 과도한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며 "또 간호 업무의 탈 의료기관화는 국민들의 건강에 대한 불안감을 초래하고 있다"고 말했다.
과반 의석을 무기로 독주하는 더불어민주당도 겨냥했다. 윤 대통령은 "이러한 사회적 갈등과 불안감이 직역 간 충분한 협의와 국회의 충분한 숙의 과정에서 해소되지 못한 점이 많이 아쉽다"며 "국무위원들께서는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 장관의 설명을 듣고 유익한 논의와 함께 좋은 의견을 내주기 바란다"고 밝혔다.
이미 보건복지부와 국민의힘 등 당정은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기로 했고 윤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이를 심의 의결했다. 윤 대통령은 양곡법 거부권 행사 때와 마찬가지로 국무회의가 끝난 직후인 이날 낮 12시10분쯤 즉각 재가했다. 심의 의결된 재의요구안은 주무부처 장관인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과 한덕수 국무총리의 서명에 이어 대통령의 서명으로 재가된다.
윤 대통령은 간호법이 양곡관리법과 사정이 달라 고심을 이어왔다. 양곡관리법은 국가재정에 부담은 물론 농업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아 '전형적 포퓰리즘'이라고 규정했지만 간호법은 이해관계자들 사이에 입장이 충돌하는 법안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간호법은 간호사 역할과 업무를 기존 의료법에서 분리해 새로 규정하고 간호사 처우를 향상하자는 취지다. 그러나 의료의 영역에서 간호를 별도로 구분하는 시도가 의사 등 다른 직역들에게 논란이 되고 있다. 의료 서비스의 주도권이 문제가 될 수 있어서다. 간호법 1조의 '모든 국민이 의료 기관과 지역 사회에서 수준 높은 간호 혜택을 받는다'는 문구도 쟁점이다. 간호사가 의사 없이도 의료 서비스를 위한 '개업'이 가능한 게 아니냐는 해석 등을 낳는다.
단식과 총파업 예고 등 의료계 직역 간에 갈등은 거세게 일었다. 이 때문에 결국 윤 대통령도 거부권 행사로 방향을 잡았다. 앞서 14일 당정은 거부권 행사 건의를 결정했다. 민주당이 간호사 단체를 제외한 13개 보건의료 단체가 거세게 반발하는 법안을 제대로 된 토론 없이 본회의에 직회부했고 이를 단독으로 통과시킨 사실만으로도 거부권 행사의 명분이 충분하다는 게 국민의힘 입장이다.
주무부처인 복지부도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기로 했다. 간호법 때문에 의료계 직역 간 갈등이 너무 심한데다 의료법에서 하나의 의료체계로 의사 한의사 등 모든 직종을 다루면서 협업체계를 만들고 있기 때문에 간호법이 국민 건강에 오히려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판단한다. 간호법이 의료법 체계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다는 얘기다.
대통령 거부권 행사는 2016년 5월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 상임위원회의 상시 청문회 개최를 골자로 한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이후 7년 만에 연이어 이뤄지고 있다. 지난달 4일 양곡관리법에 이어 42일 만에 윤석열 정부 두 번째 거부권 행사다.
야당의 일방 처리와 대통령 거부권의 악순환은 계속될 전망이다. 방송법과 노조 파업 등에 손해배상 청구 요건을 제한하는 일명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개정안) 등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국회를 통과한 법안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헌법 제53조에 근거한다. 대통령은 법률안에 이의가 있을 때 15일 이내에 이의서를 붙여 국회로 환부하고 그 재의를 요구할 수 있다. 재의가 요구된 법안은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하면 법률로서 확정된다. 그러나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이 3분의 1 넘는 의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재의 요구된 법안의 의결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박종진 기자 free2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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