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남극과 북극이 이 시점에 주목받는 이유는

심영구 기자 2023. 5. 16.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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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지가 지닌 역사와 사회 문화적 가치
지구상에서 가장 북쪽과 남쪽 끝 극단적인 곳에서 극한 체험하면서 연구하는 '극적인 사람들'. 보통 사람들은 일생에 한 번 가기도 힘든 남극과 북극을 수시로 오가며 연구 활동을 펼치는 극지연구소 사람들과 스프의 콜라보 프로젝트! 기후 변화의 최전선에 있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글: 김예동 남극연구과학위원회(SCAR) 의장)
 


고대 이래 인류는 탐험을 통해 발전해 왔으며, 인류의 역사는 곧 탐험의 역사이다. 또한 인류 탐험의 역사는 끝없는 투쟁의 역사였다. 인류는 대자연을 정복하기 위한 끝없는 도전을 거듭했다. 탐험가들은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는 바다와 만년설이 뒤덮인 혹한의 산, 황량한 사막, 위험한 정글과 빙원을 향해 끝없이 몸을 내던졌다. 현재도 인류는 극지, 심해저, 우주에 대한 탐험과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극지 탐험은 언제 시작됐나

남극대륙은 타 대륙에 비해 늦은 18세기에 와서야 발견되었지만, 그 존재는 이미 그리스 시대에 예견되었다. 그리스인들은 지구가 둥글기 때문에 북쪽의 대륙과 균형을 맞추기 위해 남쪽에도 거대한 대륙이 있을 것이라고 상상했다. 19세기 남극탐험 '영웅의 시대'를 거쳐 마침내 1911년 노르웨이 아문젠은 인류 최초로 남극점에 첫발을 디뎠다. 아시아인으로는 1912년 일본인 노부 시라세가 처음 남극대륙 남위 80도까지 진출하고 일본령을 선포한 바 있다. 북극은 타 대륙으로부터 접근이 가능했기 때문에 16세기경 일찍부터 많은 탐험이 이루어졌지만, 실제 북극점에 인간이 도달한 것은 1909년으로 남극과 불과 2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 후 남극에 대한 관심은 뜸하다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발전된 과학기술에 힘입어 남극대륙에 대한 과학적 조사가 이루어지면서 탐험의 대상에서 과학연구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국제 정치적으로는 1959년 남극조약이 체결되어 국제 공동 관리체제가 성립되었다. 이후 남극에 많은 과학기지들이 건설되고 정기적으로 과학자들이 파견되기 시작했다.

21세기에 들어서도 남극이나 북극은 여전히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임에 틀림없다. 남극은 관광객이 점차 늘어 연간 10만 명 정도까지 증가했지만 대부분 관광선을 타고 대륙 주변을 항해하는 정도에 그치고 내륙으로의 접근은 불가능하다. 북극도 여름철 쇄빙선을 이용해 극히 제한적으로만 접근 가능하다.

우리나라에 남극이나 북극이란 단어가 처음 등장한 시기는 20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 강점기인 1914년 국어학자이자 소설가인 이상춘이 출간한 단행본 신소설 '서해풍파'에서 남극탐험이 처음 언급되었다. 심청전이나 구운몽과 같은 고전소설은 용궁이나 저승 등 비현실적 소재를 다루는 것과 달리 신소설은 현실 소재를 다루고 있고, 문어체가 아닌 언문일치로 쓰여 있어 우리가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서해풍파'의 스토리는 서해에서 고기잡이 어부인 리해운, 해동 형제 이야기이다. 리해운과 리해동은 서해바다를 넘어 대양으로 나가려는 꿈을 갖고 바다로 나갔다가 풍랑을 만나 배가 침몰하고 바다에 빠지게 된다. 그 후 각자 가까스로 살아남아 일본을 거쳐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가 다시 상봉하게 되고, 미국 대학에서 항해술을 공부해 배를 타고 남태평양 무인도를 거쳐 남극대륙을 발견하였다는 다소 싱겁게 끝나는 소설이다. 남극탐험은 마지막 한 페이지 정도에서 '발견했다' 정도로만 간단하게 언급되었다.

그러나 그 당시를 생각해 보면 서해풍파는 우리나라 최초의 해양 소설이었으며, 뜻밖에 남극이 언급된 것 자체가 매우 흥미롭다. 소설이 쓰였던 1914년을 돌이켜 보면, 아마도 1911년 아문젠 탐험과 이어 1912년 일본의 시라세에 대한 뉴스를 듣고, 남극탐험을 주인공들이 꿈에 도전하는 상징으로 삼은 듯하다. 소설의 끝부분에 주인공들이 남극탐험을 선택한 이유가 기술되어 있다. 즉 주인공인 리해운이 말하길 '다른 데 없는 동물들이 호주, 남아공, 남아메리카에만 있는 것으로 미루어, 몇만 년 전에는 세 대륙들이 연결되어 있었을 것이므로 남극에 대륙이 있을 확증이 있다'. 남극이 섬이 아닌 대륙이라는 사실은 1950년대 중반에 와서야 확인되었으며, 남반구 대륙들이 연결되었을 것이라는 가설은 오스트리아 지질학자 'Suess'가 1885년 발표하였다. 당시 이러한 최신 과학들이 소설을 통해 전해졌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점이다.
 

'남극일기' '어린' 등장…극지 관심 높아져

우리나라에 극지가 본격적으로 소개되고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88년 남극 킹조지섬에 세종과학기지가 건설되면서부터이다. 그 후 남극의 기지와 연구활동에 대한 언론 보도를 통해 남극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높아졌다. 2002년 북극다산과학기지 설립 이후 북극도 알려지게 되었다. 그때까지도 극지에 대한 관심은 과학연구에 한정되었고, 극지는 일반인에게는 접근 불가능한 미지의 세계였다. 다산과학기지 개소 후 극지연구소에서는 학생,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극지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높이기 위해 극지체험단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북극다산과학기지 청소년 체험단 파견, 남극세종과학기지 예술인 체험단 파견이 이루어지면서, 일반 국민들을 대상으로 극지의 중요성이 과학연구 이외에 청소년 교육 및 사회 문화적 차원에서 소개되기 시작했다.


그 후 2005년 남극을 주제로 한 송강호 주연의 '남극일기'라는 영화가 소개되었다. '남극 도달 불가능점'을 향해 내륙으로 가던 한국의 남극 탐사대가 80년 전 행방불명된 영국 탐사대의 일기장을 발견하고, 연이어 일어나는 미스터리한 사건으로 모두 사망하게 된다는 스토리이다. 남극일기는 남극대륙의 기후, 탐사의 어려움, 극한의 도전, 희망 등을 소재로 남극을 주제로 다룬 최초의 한국 영화이다.

이후에도 남극 체험단에 참여했던 사진작가, 화가들의 작품전 등을 통해 남극과 북극의 순수한 자연의 아름다움이 소개되면서 극지는 좀 더 일반인들에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청소년 체험단에 참여했던 청소년들은 SNS 활동 등을 통해 또래들에게 이제 극지는 막연한 동경이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도전하고 극복해야 할 미래 가치라는 점을 알려 주고 있다. 2020년에는 남극 체험단에 참여한 작가 윤태호에 의해 『어린』이라는 웹툰 소설이 소개되어 남극의 생생한 현장감을 젊은 세대에 보다 가깝게 소개하는 계기가 되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심영구 기자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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