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간호법 거부권 행사…간호협회 “대통령의 약속 파기”(종합)
야권 “거부권 행사에 최소한의 논리도 없어” 질타
간호협회 국회에 간호법 즉각 재의 요구
윤석열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간호법 제정안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윤 대통령은 16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제 20회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간호법에 대한 재의요구권 행사를 의결했다. 간호법 제정안이 지난달 27일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권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지 20일 만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간호법안은 유관 직역 간의 과도한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며 “간호 업무의 탈 의료기관화는 국민들의 건강에 대한 불안감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러한 사회적 갈등과 불안감이 직역 간 충분한 협의와 국회의 충분한 숙의 과정에서 해소되지 못한 점이 많이 아쉽다”며 “국무위원들께서는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 장관의 설명을 듣고 좋은 의견을 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앞서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15일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에게 재의요구권 행사를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조 장관은 간호법에 대한 재의요구를 건의하는 이유로 △전문 의료인 간 신뢰와 협업 저해 △국민 건강권 보장의 심각한 침해 △특정 직역에 대한 차별 조장 △간호조무사 학력 상한에 따른 직업 선택권 제한 △불충분한 돌봄체계 설계 및 이해관계단체 간 의견 수렴 등 5가지를 짚었다.
간호법 제정안은 현행 의료법에서 간호사 업무 규정을 별도 법률로 분리했다. 간호사와 간호조무사의 업무 범위를 정하고 간호사의 근무 환경 및 처우를 개선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2021년 3월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인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서정숙(약사)·최연숙(간호사) 국민의힘 의원(비례대표)이 각각 발의했다. 2022년 5월 여야 합의로 3개 법안을 합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했다.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로 넘겨진 법안은 여당인 국민의힘의 반발로 묵혀지다가 올해 2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법사위를 건너뛰고 본회의 직회부를 추진하면서 여야 간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의료계의 갈등도 격화하고 있다. 의사 단체를 포함한 13개 보건 의료 단체가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간호법 제정이 타 직역 업무를 침해하고 간호사 단독 개원의 단초가 될 수 있다는 게 보건 의료 단체의 주장이다.
대한간호협회(간협)는 정부가 의사 단체의 일방적인 주장을 인용하며 사실을 호도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간협은 간호법 제정 추진 범국민운동본부와 공동으로 이날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윤석열 대통령의 간호법 제정안 거부권 행사에 대해 규탄했다.
이들은 “약속을 파기한 윤 대통령에게 정치적 책임을 묻겠다며 총선기획단 활동을 통해 간호법을 파괴한 정치인과 관료들을 단죄하겠다”고 강조했다. 간호법을 찬성하는 정치인을 지지해 총선에 영향력을 미치겠다는 얘기다. 간호사는 면허 발급 기준 총 45만7000여 명이다.
또 간협은 대통령 거부권이 행사된 간호법 원안의 국회 통과를 재추진한다는 입장이다. 협회는 “지난 2년간 국회에서 적법한 절차에 의해 심의의결된 간호법은 애석하게도 좌초됐지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의 진실과 역사적 맥락은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기에 그 진실의 힘과 지혜를 조직해 다시 국회에서 간호법을 재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전날 예고한 단체행동에 대한 구체적인 입장은 밝히지 않았다. 당시 간협은 거부권이 행사되면 단체행동에 나서겠다고 밝히되 “국민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한 파업은 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와 함께 협회 회원을 대상으로 단체행동에 대한 의견 조사 결과에 대해서도 발표했다. 간협이 지난 8일부터 14일까지 협회에 등록한 전 회원을 대상으로 의견조사를 시행한 결과 참여 인원 10만5191명 중 98.6%(10만3743명)가 ‘적극적인 단체행동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의견 조사에는 전체 회원 19만2963명 중 절반 이상이 참여했다.
한편, 대통령 고유권한인 법률안 거부권 행사는 윤 대통령 취임 이후 두 번째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4일 초과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 매입하도록 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첫 거부권을 행사한 바 있다.
야당은 윤 대통령의 잇단 거부권 행사를 질타했다.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거부권 행사가 반복되면 가뜩이나 꽉 막힌 정국이 더 막힐 것”이라고 말했고, 김민석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거부권 행사에 최소한의 논리는 있어야지, 간호법이 보건 의료인 사이에 신뢰와 협업을 저해한다는 거짓말까지 하나”라고 비판했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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