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준칙법 뒤로하고 사회적경제법 밀어붙이는 野… 年 7조인데 비용추계는 ‘깜깜’
2021년에도 공공조달로 2.1조 사회적기업에 돌아가
기재부 “사회적 기업 지원 충분…법안 신중 검토해야”
더불어민주당이 국가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한 ‘재정준칙’과 공급망 위기를 대비하기 위한 ‘공급망기본법’을 볼모로 사회적기업에 정부 조달액의 10%를 몰아주는 ‘사회적경제기본법’(이하 사경법)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16일 열리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경제재정소위원회의 1번 심사 안건은 사경법이다. 대신 나라살림 적자를 적정 규모로 관리하는 재정준칙은 맨 마지막 안건으로 올렸다. 사경법 논의를 마무리한 후, 재정준칙을 논의하겠다는 생각이 읽히는 대목이다. 여야는 전날 재정소위에서도 사경법 축조심사를 진행했으나, 합의하지 못하며 이날까지 회의를 이어가게 됐다.
사경법은 정부 조달의 일정 부분을 사회적기업과 마을기업·생활협동조합에서 구입하도록 하고, 이들에 대한 국유재산 임대 등을 허용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정부 조달액 규모가 연간 70조원 규모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할 때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에 7조원 이상이 투입될 정도로 재정 소요가 큰 법안이다. 하지만 해당 법안을 발의한 야당 의원들은 모두 법안 제출 시 함께 내야 할 ‘비용추계서’를 미첨부해 논란이 일고 있다.
야당 의원들은 비용추계를 첨부하지 않은 것과 관련해 “제정안이 선언적·권고적인 내용으로 기술되어 있어 그 규모를 합리적으로 추정하기 곤란하다”고 했다. 비용추계서에 상대적으로 소액이 들어가는 부분은 예상액을 기재하고, 재정 소요가 큰 부분에 대해선 추계가 어렵다는 이유로 기재하지 않은 것을 두고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현재 국회에는 총 5건의 사경법안이 제출된 상태다. 법안은 민주당 양경숙·김영배·강병원·윤호중 의원과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했다. 이 중 장혜영 의원은 비용추계서를 아예 제출하지 않았고, 4명의 민주당 의원은 추계가 가능한 항목만 담은 비용만 약식으로 넣은 ‘비용추계서 미첨부 사유서’를 법안과 함께 제출했다.
민주당 의원들이 제출한 비용추계서에는 비교적 재정이 적게 소요되는 ‘사회적 경제 발전 기본계획 수립’(연간 2억원) ‘사회적경제 통계조사’(연간 6000만원) 등이 포함됐다. 가장 구체적으로 비용추계서를 작성한 것은 김영배 의원이었다. 그는 사경법이 제정되면 ▲사회적경제발전위원회 설치·운영(연간 40억원) ▲지역별 사회적경제발전위원회 설치·운영(연간 40억원) ▲한국사회적경제원 설치·운영(연간 120억원) 등이 필요하다고 기재했다. 다만 김 의원도 이보다 더 많은 재정을 필요로 하는 ▲사회적 금융기관 설립 ▲사회적 경제 발전기금 설치 ▲시설비 지원 ▲조세감면 및 재정지원 등에 대해선 규모 추정이 곤란하다며 비용을 추계하지 않았다.
사경법안에는 비영리 사회적기업 등에 국유재산을 무상으로 임대하고, 연간 70조원 규모에 달하는 정부 조달액의 5~10%를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마을기업 등 3만5000여곳에 의무 할당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취약계층 일자리를 제공하는 사회적기업과 협동조합 등의 제품 등을 구매하면서 자생력을 키워주기 위한 목적이라는 게 법안을 발의한 야당 의원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여당에서는 ‘운동권 지원법’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 다수의 시민단체가 친환경 제품 등을 생산·유통하며 기업화하고 있는 터라, 이 법이 제정되면 사실상 시민단체 밀어주기 법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전국적으로 설치하는 ‘사회적경제발전위원회’가 사실상 진보정당 선거 조직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소관부처인 기획재정부는 현재 다양한 정책 사업으로 사회적기업에 대한 지원이 이뤄지는 상황에, 사경법까지 제정될 경우 특정 기업 집단에 대한 지원이 과도해진다며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신중 검토는 사실상 반대한다는 뜻이다.
기재부에 따르면, 현재 사회적기업에 대해선 ▲근로자에 대한 인건비(최대 50%) 지원 ▲사업주 부담 사회보험료(인당 약 20만원) 지원 ▲사업개발비 지원(연간 1억원 한도) ▲창업자금 지원(최대 5000만원) ▲세제지원(법인세 3년간 100%, 향후 2년간 50% 감면) 등을 정부가 지원하고 있다.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사회적기업의 제품과 서비스를 우선 구매하도록 권고하는 제도도 시행되고 있다. 정부는 현재 사회적경제기업에 대해 물품·용역 계약 시 가점을 부여하고, 수의계약을 허용하는 특혜를 제공하고 있다. 공공기관 경영평가 시 공기업 등이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의 생산품을 구매할 경우 배점에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의 영향으로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간 공공이 구매한 사회적기업의 제품 규모는 7조6676억원에 이른다. 2021년 한해에만 전체 공공조달의 3.25%에 달하는 2조1261억원 규모의 제품 구매가 사회적기업에서 이뤄졌다.
기재부 관계자는 “현행 제도상으로도 사회적기업에 대한 지원은 충분하다고 본다”면서 “사회적기업 우선 구매 비중을 확대하는 등 지원이 과도할 경우 다른 영세기업과 형평성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했다. 기재부는 문재인정부 때인 2020년에도 해당 법안에 대해 ‘신중 검토 의견’을 밝힌 바 있다.
현재 민주당은 정부·여당에 사경법 처리를 요구하며 소관 상임위인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사경법을 심의하지 않으면 윤석열정부가 입법을 추진 중인 재정준칙법과 공급망 기본법 처리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민주당의 요구에 대해 정부 내에서는 “정부 지원으로 겨우 연명하는 ‘식물 사회적기업’을 양산하게 될 법을 요구하면서, 국가의 지속가능성과 산업 위기를 막기 위한 재정준칙과 공급망기본법을 볼모로 잡는 것은 부당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나라 재정을 건전하게 유지하자는 재정준칙과 공급망 위기 대응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공급망기본법과 사경법은 전혀 관계가 없다”면서 “주고받기할 대상이 전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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