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영 칼럼] 미래를 위한 학교가 없다
세계경제포럼은 2020년에 필요한 미래 핵심 역량을 복잡한 문제해결, 비판적 사고력, 창의력이라고 했고 4C 스킬 등으로 부르며 화제가 되고 토론 주제가 됐다. 같은 기관에서 2025년의 핵심 역량은 분석적 사고와 혁신, 적극적인 학습과 학습 전략, 복잡한 문제해결 능력이라고 발표했다. 세상의 변화는 기술과 과학의 변화뿐 아니라 정치, 경제, 기후 등의 변화가 과거 어느 시절보다 빠르게 변하고 있다. 학교에서 엔진을 배우고 졸업했으나 취직한 회사는 전기차 모터를 만드는 인재를 원한다. 지식의 습득도 중요하지만 어떤 지식이 필요할지 빨리 파악하고 습득하고 활용 전략을 짜고 팀을 만들어 추진할 수 있어야 살아남는 시대가 된 것이다. 회사뿐이 아닌 세상 어떤 조직에서나 이런 인재를 필요로 할 것이고 개인들은 이런 역량을 갖추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것이다. 소말리아 해적에게 어떤 신입 해적이 필요하냐고 하면 분석력과 문제해결력, 창의력이 있는 해적을 찾고 있다고 할 것이다.
이 글은 학교가 미래 인재 양성을 못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챗(Chat)GPT에 물어봐서 얻은 답이다. 기술이 이 정도의 글을 쓰는 시대가 되었다면, 기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인재를 키워내는 학교는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진 것이다. 전 세계는 교육 수요를 공급이 못 따라가고 있다. 좋은 교육 서비스를 디자인한 교육 스타트업에만 투자하는 펀드가 여럿 있을 정도로 자본 시장에서 교육산업의 미래를 좋게 보고 있다. 우리 시각에서는 이상한 일이다. 학교가 정원을 못 채우고 있다는 기사는 하루가 멀다하고 나오고 있고 최근 서울 시내 일반 고등학교 폐교 소식도 들려온다. 이미 비어 있는 대학도 많고 고등학교 졸업생 수보다 대학 정원이 많다는 것도 잘 알려져 있는데 교육 공급이 부족하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가르치고 싶은 것을 가르치는 학교는 많지만 학생들이 배워야 할 것을 가르치는 학교는 없는 것이다. 진공청소기로 유명한 다이슨도 다이슨 대학을 만들었고, 알리바바로 유명한 마윈도 창업대학을 시도했다. 소프트뱅크 역시 온라인으로 기술 대학을 운영 중이다. 픽사는 기존 대학과 협업해 애니메이션 인재를 키우고, 닌텐도는 게임 학교를 만들었다. 학교에서 보내준 인재들로 회사 운영을 해본 사람들의 실망이 쌓여서 교육기관에 대한 기대가 없어졌고 견디다 못해 직접 학교를 만들게 된 것이다. 학교는 많지만 학교는 자기 역할을 못 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학교 교훈에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는 ‘행복’, ‘꿈’, ‘함께’, ‘창의’ 등 미래 역량과 닿아 있는 표현들이 많지만 학교에서 살아남으려면 ‘꿈’과 ‘행복’은 입시 뒤로 미뤄야 하고, 내가 합격하면 다른 사람이 불합격하는 상황에서 ‘함께’는 급식 먹을 때나 쓰는 단어가 되었으며, ‘창의’적인 학생은 학교 밖 청소년이 돼야 하는 것이다. 기존 교육 기관이나 관련된 이들이 이런 상황을 알고 있고 바꿔보려고 하지만 잘 안되고 있다.
다른 나라도 그렇지만 한국 교육계에는 다른 분야에 비교하거나 외국에 비교해도 가장 우수한 인재들이 일하고 있다. 인구 감소로 인기가 감소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사범대, 교대는 문과에서 가장 우수한 인재들이 선발되고 있고 한국 대학 교수들의 수준은 높다. 하지만 이런 학교가 미래 인재를 키우는 교육 기관으로 변신하는 것은 잘 되고 있지 않다. 인재들이 많고 예산이 적다고도 볼 수 없는데 혁신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미네르바 대학은 온라인 대학으로 알려져 있거나 전 세계 7개국을 다니는 점, 또는 하버드보다 경쟁률이 높다는 점 등으로 유명해졌지만 자세히 보면 더 많은 혁신적인 면들이 있다. 대부분 대학이 구조화 되어 있지 않은 강의를 제공하지만 미네르바는 4년간의 과정이 의도적으로 구조화 되어 있다. 전 세계를 다니면서 배운 것이나 관심사를 바탕으로 기업이나 기관들과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70개국 학생들이 모였으니 동료에게 배우고 느끼는 것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다. 또 하나 혁신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지식이 아닌 역량을 체득하게 만들기 위해 고안된 교육 과정이다. 조선 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조선 회사에서 일하던 사람이 드론 만드는 회사로 이직하기 어려운 것은 지식만을 배웠고 조선 공학을 배울 때 갖게 된 역량을 다른 분야에서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역량을 체득하고 전 세계 7개국을 다니며 각 나라의 회사, 지자체, 학교와 프로젝트를 하고 매시간 토론하며 그 토론 결과에 대해 피드백을 받는 학생과 신림동에서 4년간 같은 교수 같은 학생과 시험 준비를 하는 학생의 경쟁력은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
일본의 N고등학교는 민간이 만든 온라인 고등학교이다. 하지만 온라인에서만 수업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 전역에 마련된 오프라인 공간도 제공한다. 온라인에서 수업도 하지만 요리나 유학, 진학 등에 오프라인 수업이 필요하다면 그에 따라 오프라인 공간에서 주는 효과도 같이 가져갈 수 있다. 이런 온 오프라인 맞춤형 수업이 가능하기 때문에 학교가 생긴 지 얼마 안 됐지만 몇 만명의 학생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일본 전국고등학교 e스포츠 챔피언십에서 일본 고등학교 최초로 3연패를 했다. 한국 e스포츠 선수들은 공교육 중퇴자가 많다. 학교와 꿈을 병행할 수 없는 학교 밖 청소년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이는 e스포츠뿐만 이 아니라 많은 한류 분야나 운동 예술 분야에서 지금의 학교는 폭력적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학생들을 담아 주지 못하고 있다. 2006년에 스탠퍼드 대학은 온라인 고등학교를 만들었고 스탠퍼드의 우수한 교수진이 개인 맞춤형의 수업을 진행한다. 대학 수준의 수업도 들을 수 있으며 대부분의 온라인 학교가 그렇듯이 본인의 목표와 학습 여정을 설계할 수 있다. 이 학교의 학비는 100% 온라인이지만 웬만한 사립학교 수준이며 졸업생은 스탠퍼드 대학을 포함한 우수한 상급학교 진학 실적을 보인다.
싱크 글로벌 스쿨(Think Global School)은 세계 12개국을 여행하며 국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고등학교다. 학생들은 10, 11, 12학년 중 하나의 학년을 이 학교에서 수료하며, 각 국가에서 3개월씩 총 12개월 동안 교육을 받게 된다. 이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국제 교육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현재 진행 중인 문제들에 대한 이해와 해결 방법에 대한 깊이 있는 고찰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또한 학생들은 국제 교육을 통해 글로벌 시각을 갖추고, 문화적 다양성을 이해하며, 사회 문제에 대한 해결 능력을 함양하는 등 다양한 경험을 쌓게 된다.
스페인 몬드라곤 대학의 MTA-레인(Leinn)과정은 리더십과 기업가정신을 함양하는 유럽경영학사 과정으로, 전통적인 개념의 교수도 캠퍼스도 없이 세계를 여행하며 실제 비즈니스를 경험한다. 특히 이 과정이 중시하는 ‘팀기업가정신’이란 팀과 커뮤니티를 매우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기업가정신 개념과는 조금 다른 독특함이 있다.
제인 구달이 학교 설립에 관여한 발리의 그린 스쿨은 생태와 환경 교육을 하는 곳이고, 바하마의 아일랜드 스쿨은 온갖 해양 스포츠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학교다. 스프링스튜디오포엑셀런스는 미국의 공교육 학교이지만 전체 교육 과정이 민간의 온라인 콘텐츠를 사용하며 오프라인 공간에 있지만 교실이 아닌 실습과 토론을 위한 공간이다. 이 학교는 학생들이 160개 과정 중에서 직접 수업을 선택하고 스케줄을 관리할 수 있는 대학과 같은 환경으로, 교사들이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학생들은 다양한 외부활동을 수행할 수 있도록 스케줄을 조정할 수 있으며, 가상 수업을 통해 시간 관리와 책임감을 배울 수 있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다. 이 학교의 가족적인 분위기와 개인별 맞춤형 교육을 통해, 학생들은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며 성공적인 학습을 할 수 있다고 평가되고 있다. 카이포드 카탈리스트, 액톤 아카데미, 프렌다, 와일드플라워 같은 마이크로 스쿨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통해 전 세계로 확장 중이며 작고 유연성이 있어 희망하는 교육자들에게 교육 과정을 쉽게 제공하고 학교를 만들 수 있게 한다.
MIT는 엑스마이너(xMinor)라는 이름으로 좀 더 효과적인 교육을 다른 여러 대학과 같이 실험하고 있다. MIT가 멘토 대학이 되고 다른 몇몇 대학은 멘티 대학이 된다. 멘토 대학은 멘티 대학이 만들기 어려운 마이크로디그리 과정을 제공하고 멘티 대학은 교육 과정을 만들고 강의를 하는 것이 아니라 멘토 대학의 과정을 학생들에게 제공한다. 멘티 대학의 교수는 학생들에게 강의가 아닌 가이드나 퍼실리테이터가 되고 학교는 실험실이나 도서관 같은 공간을 제공한다.
다행일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다양한 시도가 전 세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은 한국 교육만이 미래 인재를 만드는 데 실패하고 있어서는 아닌 것이다. 모두가 미래 교육 모델을 찾고 있고 우리가 크게 늦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먼저 찾는다면 한국은 진정한 선진 국가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며 전 세계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다양한 교육 시도를 허용할 마음과 제도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미네르바 대학을 도입하려던 많은 총장님이 미네르바가 하는 수많은 장점이 규제로 인해 시도하지 못한다고 한탄했다. 시험 없는 수업, 강의실 없는 학교, 정년 없는 교수 등은 교육부 경고 공문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이 글에서 소개한 미국의 한 공립학교처럼 민간 온라인 교육 과정을 도입하는 것은 바라지도 않지만 지금 시도하려는 고교학점제나 온라인학교 분야에 민간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들어갈 구멍은 너무 작다. 잘못된 교육은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칠 수도 있기 때문에 교육을 가지고 실험을 하거나 경험 없는 자들에게 맡길 수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납득이 된다. 학생을 실험실 쥐로 생각하면 안 된다는 점에 동의한다. 하지만 우리의 모든 학생을 100년 전 교육으로도 미래 인재를 키울 수 있을지 확인하고 있는 현재의 거대한 실험실보다는 덜 위험한 실험은 활발하게 이뤄져야 할 것이다. 우리는 다양한 교육을 규제하지 않고 장려하며 응원해야만 한다.
bons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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