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일감 끊겨도 '감각 훈련' 했다"..다시 뛰는 두산 원자력공장
"신한울 3·4호기 제작이 미뤄지면서 보관만 5년째에요. 부식·산화를 막기 위해 페인팅 도포 처리됐어요. 차차 제 역할을 찾게 될 겁니다. 침체했던 공장도 다시 활기를 띠겠죠."
신한울 3·4 주기기 제작 착수식이 열린 지난 15일 이동현 두산에너빌리티 원자력BG 원자력공장 공장장은 수북하게 쌓인 주단 소재를 보며 이같이 말했다. 탈원전 기조 속에서 제 쓰임새를 찾지 못한 소재들이 방치됐던 시간만큼 정체될 수밖에 없었던 우리 원전 산업이 재차 부흥할 것이란 기대감도 한껏 묻어났다.
원자력공장 내부 분위기는 차분했다. 같은 날 착수식이 열렸기 때문에 제작보다는 예열에 치중한 모습이었다. 한때 350명이 근무했던 이곳 공장에서는 현재 200여명이 근무한다. 그나마 최근에서야 충원된 인력이 적잖다. 가장 저조했던 시기 근무 인원은 150명을 밑돌았다. 수 개월간 완전히 일손을 놓은 적도 있었다. 이후 정책 기조가 바뀌면서 부활을 꿈꾸게 됐다.
이 공장장은 "일감이 없어도 각종 모의시험을 통해 감각을 유지하며 훗날을 도모했다"면서 "다른 공장에 배치됐던 인력들이 속속 돌아오고 있고 신규 채용을 통해 공장 인력을 확대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창원공장 내에 추가 공장 설립도 검토 중이기 때문에 연 근무 인원이 호황기 때를 능가할 수도 있다"고 알렸다.
이곳 공장의 핵심은 안전이다. 주기기 시험·실증·제작 과정을 빠짐없이 기록하는 자체 시스템을 도입한다. 이를 바탕으로 볼트 하나라도 기준에 맞지 않는 제품이 쓰이지 않게 한다. 안전을 유지하는 핵심인 추적·관리 체계를 통해 안전을 보증하고, 이렇게 장시간 축적된 노하우는 차기 제작분의 품질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한다.
현장에서는 원전이 정치적 논쟁거리가 되면서 신재생에너지와 대립하는 개념으로 오해되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원전과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모두 탄소중립을 위해 필수적인 에너지원이기 때문이다. 두산에너빌리티도 탈원전의 멍에를 잊고 친환경 사업 포트폴리오를 강화한다. 가스터빈·풍력발전 사업 역량을 키워 새로운 수출 효자로 만들겠단 심산이다.
GT고온부품공장과 터빈공장은 이런 이정표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곳이다. 이곳 공장에서는 고도의 냉각·코팅 기술을 바탕으로 900도가 넘어서면 녹아버리는 소재가 1600도가 넘는 터빈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한다. 이렇게 제작된 소재들이 터빈공장으로 넘겨져 발전·항공용 엔진으로 쓰인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세계에서 5번째로 터빈 원천 기술을 확보했다. 가스터빈 한 세트 가격은 중형차 480대 값이다. 김포·보령 등에서의 실증작업을 통해 K-원전과 같은 차세대 수출 상품으로 키우겠단 구상이다. 수소와 액화천연가스(LNG)를 혼합하지 않고 수소만으로 터빈을 돌리는 기술을 통해 탄소 배출을 원천적으로 차단해 경쟁력도 확보할 방침이다.
황현상 두산에너빌리티 파워서비스BG TM생산 담당(상무)은 "그동안 국내에 적용된 발전터빈 전량은 외국 기업이 제작했다"면서 "설치하면 최소 20년 동안 유지비용이 소요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산화에 성공하면서 국가적으로는 외화 유출을 막고 두산에너빌리티는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있게 했다"면서 "100% 국산화도 가능하지만 수입하는 게 훨씬 경제적인 일부 부품 탓에 90% 수준의 국산화율을 유지하고 있으며, 최대한 많은 부품을 협력사에 맡겨 터빈에 따른 경제효과가 국내에 집중되게 했다"고 설명했다.
2005년부터 집중해온 풍력도 두산에너빌리티의 대표적인 탄소중립 사업 모델이다. 국내에 도입된 풍력발전기 상당수는 유럽 제품이다. 두산이 뛰어들면서 속속 국산화가 이뤄졌다. 한국보다 바람이 거센 현지 풍질에 맞는 유럽 제품과 동일한 용량이라도 블레이드(날개)를 크게 제작해 발전 효율을 높인 것이 두산 풍력 기술의 핵심이다. 한반도에 최적화된 풍력발전기 제작 기술을 자신한다.
신동규 두산에너빌리티 파워서비스BG 풍력·서비스설계 담당(상무)은 "육상보다 풍량이 많은 해상풍력 수요가 높아지고 있어 이에 특화된 제품 개발·공급에 주력한다"면서 "지금은 국내 시장에 집중하고 있지만 지역·지형 등을 고려한 다양한 제품 개발 능력을 함양해 언젠가는 해외시장 공략에도 박차를 가하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창원(경남)=김도현 기자 ok_k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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