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노조원 분신 순간, 함께 있던 간부는 막지도 불 끄지도 않았다

최훈민 기자 2023. 5. 16.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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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모씨가 시너를 다 뿌리고 불을 붙이기 전의 상황. 기자 2명과 건설노조 간부 A씨가 양씨를 바라만 보고있다. /독자 제공

지난 1일 민노총 건설노조 간부 양모씨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는 건설 공사 현장 5곳에서 공사를 방해하겠다는 취지로 협박해 8000여만원을 받은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던 중이었다. 조선일보와 조선닷컴은 자살보도 권고기준에 입각, 해당 사건에 대한 보도를 최소화해왔다. 그러나 해당 사건에 대한 취재 결과, ‘극단적 선택 그 자체’가 아니라 ‘당시 사건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대처’에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고, 이 부분에 대해서는 보도의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조선닷컴 취재 결과, 양씨는 1일 오전 9시쯤 춘천지법 강릉지원 주차장 내 잔디밭에서 평소 친분이 있던 YTN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기삿거리가 있다”며 자신의 위치를 알렸다.

YTN 기자들이 도착한 직후인 오전 9시36분, 양씨가 미리 준비해온 시너 2L를 자신의 몸에 뿌렸다. 시너는 플라스틱통에 들어있었는데, 이 통은 주둥이 지름이 4cm로, 다 뿌려지기까지 약 10초가 걸렸다.

자기 몸에 시너를 뿌리는 양씨의 약 2m 앞에서, 민노총 건설노조 강원지부 부(副)지부장이자 양씨의 상급자인 A씨가 가만히 선채로 양씨를 지켜봤다. 숨진 양씨는 A씨 아래의 ‘강원지부 제3지대장’이었다. A씨는 오전 9시20분쯤 현장에 도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2L 시너통을 자신의 몸에 붓고 있는 양모씨 /독자 제공

현장을 지켜본 YTN 기자들은 경찰 조사에서 “A씨가 양씨를 말리는 말을 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당시 상황을 본 다수의 목격자에 따르면, A씨는 양씨의 분신 준비 과정을 눈앞에서 지켜보면서도 단 한발짝도 움직이지 않았고, 어떠한 제지의 몸짓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극단 선택을 준비하는 사람에게 다가갔을 때 오히려 자극해 충동적인 행동을 할 가능성을 A씨가 우려했을 가능성은 있다.

양씨는 시너통을 다 비운 뒤 바닥에 내려놨고, 그로부터 다시 약 18초 뒤 양씨의 몸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시너를 뿌리기 시작한 시점’부터 불이 붙는 순간까지는 최소 30초가 걸렸다.

양모씨가 몸에 불을 붙이자 휴대전화를 꺼내며 뒤돌아서는 건설노조 간부 /독자 제공

이 30초간 별다른 움직임이 없던 A씨가 처음으로 움직인 것은, 양씨가 불을 댕긴 순간부터였다. 그런데 그는 양씨 쪽으로 달려가 몸에 붙은 불을 끄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대신, 뒷걸음질을 치며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낸 뒤, 몸을 양씨 반대방향으로 돌렸다. 그리곤 걸어가며 휴대전화를 조작했다. 목격자 B씨는 “불이 붙자마자 봤는데, 곁에 있던 사람(A씨)이 떨어져서 멀리 갔다가 조금 뒤부터 갑자기 오열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불이 붙은 직후 이미 근처에 있던 다른 행인 등은 분신 장면을 목격하고 다급히 도망가거나 소화기를 가지러 뛰어가는 등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고 있었다. YTN 기자 한 사람은 불이 붙는 걸 본 직후 곧장 뛰어가 어디선가 소화기를 들고왔고, 양씨 몸에 뿌리기도 했다.

양모씨가 몸에 불을 붙이자 멀찌감치 떨어져 휴대전화를 만지는 건설노조 간부 /독자제공

하지만 정작 코앞에서 분신 준비 과정을 지켜봤던 A씨는 분신이 시작된 뒤로도 약 10초동안 휴대전화만 들여다보며 양씨로부터 멀어지는 쪽으로 걸어간 뒤에야 비로소 몸을 돌려 양씨 쪽을 바라보고는, 두 무릎을 굽히는 등 안타까워하는 것처럼 보이는 몸동작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YTN 기자에 이어 또다른 검찰청 직원이 양씨를 도우러 뛰어올 때까지도, A씨는 양씨를 도우려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A씨가 그 직전 10초간 휴대전화로 뭘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양씨 분신과 관련해 9시35분0초부터 9시37분0초까지 112 신고는 4건, 119 신고는 6건이 들어갔는데, A씨 번호로 접수된 신고는 없었다.

조선닷컴 취재를 종합하면, 앞서 양씨는 이날 새벽 6시쯤 단골이던 속초시내 모 철물점에서 시너 3통을 현금 1만8000원에 구입했다. 철물점 주인은 “양씨가 시너를 살 때에도 공사 미수금 걱정을 했기 때문에, 분신 같은 건은 상상도 못했다”고 했다.

양모씨가 분신에 쓴 시너 /속초=최훈민 기자

양씨가 분신한 날 오후, 간부 A씨는 KBS와 MBC 화면에 모습을 비췄다. 어느 집회에선가 마이크를 잡고 “(양씨가) ‘형님(저)하고 막걸리 먹고 싶다’고 마지막 얘기하고 불을 붙였습니다. 2미터 앞에서… 그래서 제가 새까맣게 탄 걸 봤습니다”라고 울먹였다. 민노총 위원장은 대중들을 향해 “정부를 결코 용서할 수 없다”고 했다.

경찰은 최근 양씨의 극단적 선택 과정 등을 조사하기 위해 A씨를 소환조사했다. A씨는 경찰에서 “내가 도착했을 때 양씨는 이미 온몸에 시너를 뿌린 상태여서 이미 말리기엔 늦어 있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목격자들 이야기와는 다르다. 목격자 C씨는 8일 “양씨가 분신 직전에 A씨 앞에서 시너를 뿌리는 걸 똑똑히 봤다”고 말했다.

양모씨가 분신하던 과정. 이를 바라만 보던 A씨는 양씨를 몸으로 막거나, 불을 끄려고 하지도 않았다. 불이 붙자 A씨는 뒤로 돌아서 휴대전화를 만지작 거렸다. /독자 제공

조선닷컴은 A씨의 해명을 듣기 위해 지난 8일부터 전화와 문자 등으로 여러 차례 연락한 끝에 11일 카카오톡 연결에 성공했다. A씨는 “양OO씨와 함께 계실 때 분신을 왜 막지 않으셨나요”라는 질문에 “양OO 열사라 부르면 답하겠다”고 했다. 기자가 A씨 요구에 따라 다시 질문하자 “경찰에 물어보라”고 하고는 대화를 중단했다. YTN 기자들은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양씨가 숨지자 민노총은 양씨 발인 일정을 잡지 않고 시신은 장례식장인 서울대병원 안치실에 둔채 무기한 장례식을 보름째 진행 중이다. 민노총은 “양씨에게 유족이 있다”고 했지만, 빈소에 적힌 상주(喪主) 명의자는 장옥기, 민노총 건설노조위원장 단 한 명뿐이었다. 민노총 홈페이지에 올라온 조문 안내 속 계좌의 명의자는 ‘전국건설노조’였다.

양모씨 사망 뒤 민노총 홈페이지에 올라온 조문 안내문. 건설노조 계좌가 적혀 있다. /민노총 홈페이지

민노총은 또 “유족의 뜻”이라며 양씨의 실명과 얼굴을 드러낸 포스터, 현수막 등을 제작해 대정부 투쟁을 시작했다. 16일과 17일에는 서울 도심서 대규모 집회를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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